김혜수ㅣ그가 있기에 가능했던 '소년심판'①

머니투데이 박현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02.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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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넘치는 연기로 시청자 마음 사로잡아

'소년심판', 사진제공=넷플릭스'소년심판', 사진제공=넷플릭스


"드라마적 재미와 완성도는 물론, 영상매체가 할 수 있는 순기능을 내포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 출연하게 됐다."(김혜수)

'소년법', '촉법소년'은 잊을 만하면 뉴스 사회면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다. 때문에 해당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올 때마다, 이미 누구나 한 번쯤 그 필요와 효용성을 고민해 봤을 터다. 우리 사회의 면면을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미디어이기에,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해당 소재를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하지만 '소년심판'은 이전 작품들에 비하여 보다 더 적극적이고 본격적으로 해당 내용에 대해 목소리를 낸 시리즈다.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올해 첫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를 글로벌 흥행으로 일궈낸 전적이 있는 넷플릭스의 2022년 두 번째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라는 점, 그리고 무려 '김혜수 배우'가 주인공으로 나서 극의 중심에 선다는 것만으로 '소년심판'은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됐다. 방영을 앞두고 스틸이나 예고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그 기대는 높아졌고,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소년범죄'라는 소재를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치솟았다.



지난 25일 베일을 벗은 '소년심판'은 예상대로 김혜수로 시작해 김혜수로 끝난 드라마였다. 스토리 설정상 김혜수 배우가 맡았던 연화지방법원 소년형사합의부 '심은석 판사'가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기도 했거니와, 김혜수가 지닌 본연의 아우라와 진정성이 무게 중심을 '심은석 판사'로 한껏 쏠리게 이끌었다. '소년심판'은 김혜수라 가능했던 작품이 아닐까 싶을 만큼, 김혜수 외 '심은석 판사'를 상상할 수 없었다.

'소년심판', 사진제공=넷플릭스'소년심판', 사진제공=넷플릭스


이는 김혜수가 배역을 맡을 때마다 반복됐던 일이다. 드라마 '스타일'의 박기자, '직장의 신'의 미스김, '시그널'의 차수현, '하이에나'의 정금자, 영화 '타짜'의 정마담, '차이나타운'의 엄마 등 김혜수는 늘 자신이 맡은 배역을 '연기'하지 않고, 해당 인물로 '변신'했다. 특히 이번 '소년심판'이 품고 있는 묵직한 스토리는, 배우의 평소 행실이나 이미지가 자칫 발목을 붙들 수도 있는 노릇. 하지만 평소 사회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내비쳤던 김혜수의 실제 모습 역시, 그가 '심은석'으로 변신하는 것에 도리어 힘을 보탰다.

다만 심은석 판사를 제외한 다른 주요 인물의 존재감이나 활용도는 아쉬운 지점이다.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설정한 주요 캐릭터의 매력이 도무지 살아나질 못했다. 작품 자체가 사랑받고 유기적으로 힘을 받으려면 캐릭터 각자의 매력이 곳곳에 갖춰져야 하는데, '소년심판'은 그렇지 못했다.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다. 그리고 4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공들인 취재와 집필이 혹시라도 무지나 실수로 인한 문제에 휩싸이는 우를 범하지 않고자 신중하고 또 신중했던 작가의 촘촘한 노력은, 작품 자체의 재미요소와 콘텐츠적 매력을 상대적으로 미흡하게 만들었다. '소년심판'이 김민석 작가의 데뷔작이기도 한 탓에, 상대적으로 부족한 경험과 내공이 이런 상황 극복을 하지 못한 모양새다.


'소년심판', 사진제공=넷플릭스'소년심판', 사진제공=넷플릭스
극 초반 미성년 살해 사건이 보여준 긴박감 넘치는 연출, 반전을 곁들인 스피디한 전개로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던 것에 비하면 후반부로 갈수록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흩어지고 느슨해졌다. 이는 실시간에 가깝게 제작되던 기존 방송 드라마에서 종종 마주했던 용두사미형 특징으로, '사전 제작'을 주요 형태로 하는 OTT 플랫폼 콘텐츠에게 대중이 바라는 기대치와 완성도에 닿지 못한 분위기다.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시험지 유출 사건, 무면허 렌터카 절도 추돌사고, 아파트 벽돌 투척 사망사건,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등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소년 범죄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는 이미 이를 접했던 사람들에게 충분히 익숙한 서사다. 그로 인해 몇 차례나 사회 전반에 불거졌던 고민과 담론을 답습한 것 이상의 무언가는 부재한 점이 안타깝다. 다행인 점은, 미성년 가해자를 옹호하려 시도하거나 과도한 신파를 욱여넣지 않은 정도다.

'소년심판'은 '오징어 게임', '지옥', 그리고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흥행을 일궈낸 K-오리지널 콘텐츠의 색을 다양화하는데 역할을 했고, 한국적 특색이 묻어나는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또한 이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소년범죄'라는 사회적 합의와 해결이 필요한 중요한 소재로 이와 같은 콘텐츠를 탄생시킴으로써 문제의식 전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소년심판'의 묵직한 메시지를 제대로 건네 받은 관객들 스스로의 몫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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