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시에 거주하는 A씨(35)가 지난 24일 자칭 부동산 경매회사 과장 B씨와 나눈 대화 내용. /사진=독자 제공
솔깃한 내용이지만 뭔가 이상했다. 회사명도 없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데다 면접도 없이 현금을 받아오라고 해서다. A씨는 "카카오톡으로 개인정보를 요구해서 보이스피싱임을 확신했다"며 "취업이 절실한 청년들을 범죄에 끌어들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25일 주요 포털사이트에서 '초보가능', '당일지급', '일 20만원 이상' 등 키워드를 검색하자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모집하는 광고가 다수 검색됐다. 이들은 업종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성별, 나이, 학력, 지역 무관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단순한 외근 업무를 하면서 하루에 최소 10만원에서 30만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홍보했다.
과거 보이스피싱 조직은 인출책을 모집할 때 주로 '대부업체'를 표방했지만 이제는 형태를 다양화했다. 법률사무소부터 대출중개업체, 구매대행업체, 부동산 경매회사 등으로 위장한다. 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단순 사무보조 등으로 공고를 올려두고 연락이 오면 인출책 역할을 맡기는 곳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출금 혹은 거래처 대금을 회수하는 일이라면서 사람을 모집했다면 요즘은 사무보조나 심부름이라고 공고를 올려두고 일을 시키다가 업무를 바꾸기도 한다"며 "공고를 보고 연락하면 '해당 업무는 모집 완료됐으니 다른 일을 해보라'고 말하기도 해서 공고만 봐서는 (인출책 모집인지) 알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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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단순한 재택알바라고 생각해 가담했다는 경우도 있었다. A씨는 "지난해 5월에도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기계를 방에 설치만하고 있으면 한 달에 50만원씩 준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설치했다"며 "어느날 경찰관이 집에 와서 기계를 압수해갔고 결국 법원에서 벌금형과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중계기 설치는 거액의 보이스피싱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해 11월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일당 14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단속을 피해 한 달 주기로 장소를 옮기면서 모텔·고시원·오피스텔을 빌린 뒤 중계기를 설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범행에 피해자 55명이 약 17억원을 편취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금을 받아오라고 하거나 면접 절차 없이 비대면으로 업무 지시를 한다면 보이스피싱"이라며 "결국 편법이라고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되는데 공범이 되고 수입이 많아지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범행에 가담해 얻는 푼돈에 비해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려지면 전과자가 되는 등 너무나 큰 피해를 입게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