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래미'가 선정한 최고의 아티스트들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2.02.2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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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후보 단평

사진출처=한대음 홈페이지 화면 캡처사진출처=한대음 홈페이지 화면 캡처


오는 3월 1일 열리는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시상식 장르별 후보들이 발표됐다. 한대음은 음악의 상업성보단 음악가의 음악성에 주목하는 국내 거의 유일한 시상식으로, 이번에 눈에 띄는 건 '팝' 부문에서 '케이팝'이 따로 떨어져 나와 홀로 선 부분이다. 아무래도 날이 갈 수록 커지고 또 깊이까지 갖추어 가고 있는 아이돌을 따로 다루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혹자가 말한 "케이팝은 음악 장르가 아닌 한국의 팝 아티스트들에게 붙는 레이블"이라는, 즉 작금 "한국의 팝"을 대표하는 아이돌 음악이 곧 케이팝이라는 진단을 한대음 측에서도 숙고한 셈이다. 이번엔 그런 한대음에서 발표한 첫 케이팝 부문 후보(음반과 노래)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각자만의 '수상작'을 점쳐봐도 좋겠다.

최우수 음반 후보



에스파,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에스파,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 'Savage - The 1st Mini Album'



알려진대로 에스파는 SM엔터테인먼트의 미래 핵심 가치이자 비전인 'SMCU(SM CULTURE UNIVERSE)'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BTS의 'Lie', 태민의 'Shadow'와 코드가 닮았고 티아라의 'Day By Day'처럼 트로트 요소(Ppong Element)까지 지니고 있다 평가된 트랩 곡 'Savage'를 대중문화 웹진 팝매터스는 "잘 짜여진 고예산 사이버펑크 영화 같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또한 'Savage'가 수록된 에스파의 데뷔 EP 전체를 "일렉트로닉으로 들려주는 디스토피아"라고 했는데, 영국 음악 주간지 NME도 "활기차고 펀치한 일렉트로닉 팝 브랜드"라는 말을 보태며 에스파의 출발을 긍정했다. 가상과 현실의 소통을 전제하는 이 당차고 환각적인 걸그룹의 첫발은 마치 1995년 'Army Of Me'라는 곡으로 자신이 "함부로 대하면 큰코 다칠" 뮤지션임을 천명한 비요크의 일면을 닮기도 했다.

씨엘, 사진제공=베리체리씨엘, 사진제공=베리체리
씨엘 'Alpha'


2020년 10월 29일, 씨엘은 새 더블 싱글 '화'와 '5STAR' 발매를 기념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4명이 같이 있다 혼자가 됐다. 나눠 하던 역할을 혼자 해야 하니 모든 걸 다시 배우는 느낌이다. 예전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때 가만히 있거나 노래에 관한 말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기필코 내가 다 해야 한다."

이날은 씨엘이 YG엔터테인먼트 시절 '나쁜 기집애'와 'Hello Bitches'로 예고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본격적으로 펼치겠다고 선언한 날이었다. 그 첫 결과물인 'Alpha'는 실제 씨엘이 기획과 제작을 지휘했고 수록된 모든 곡들의 작사, 작곡에까지 참여한 '온전한 씨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YG로부터도 투애니원에서도 홀로 선 씨엘은 솔로로서 초조함보단 "독립 아티스트가 누리는 '럭셔리'"를 먼저 얘기했다. 함께 있으면 일을 덜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온전히 누릴 수는 없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던 씨엘. 그는 자신의 데뷔작 'Alpha'를 자신의 "음악적, 예술적 청사진"으로 분명히 못박았다.

샤이니,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샤이니,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샤이니 'Atlantis - The 7th Album Repackage'

샤이니의 일곱 번째 작품 'Don't Call Me'는 사실 이 앨범보다 1달 여 먼저 공개됐다. 하지만 한대음 후보군에는 기존 7집 수록곡들에 'Atlantis' , '같은 자리 (Area)', 'Days and Years'라는 신곡 세 곡을 보탠 리패키지 음반이 올라 있다. 올해로 데뷔 13년차. 아이돌 음악의 '수준'에 삐딱한 시선을 던지던 자들을 먼산 바라보게 만든 그 양질의 커리어가 이 앨범에서도 여전하다는 건 일종의 반전이다. 아이돌은 분명 '보는' 음악이기도 하지만 샤이니는 확실히 믿고 '듣는' 아이돌이라는 걸 이 작품은 새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온유는 한 인터뷰에서 이 앨범이 "샤이니의 미래를 준비한 앨범"이라고 했고, 태민은 같은 인터뷰에서 샤이니다움을 "진정성 있는 음악"이라고 했다. 이들이 오래 버틸 수 있었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보아,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보아,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보아 'Better - The 10th Album'

"어린 시절 내 꿈은 단순했어요. 춤. 춤에 호기심이 많던 아이. 무대 위에서 춤추는 내 모습을 꿈꾸던 아이. 그 꿈을 이룬 거죠."

보아의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만든 미니 다큐멘터리 '202020'의 시작에서 보아가 한 말이다. 그리고 앨범 'Better'는 그 보아가 열 번째로 내놓은 정규작이다. 'Better'는 보아의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인 셈이다. 말이 쉽지, '20년'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가령 90년대와 2010년대를 같은 선상에 놓고 얘기한다 생각해보라. 당장 걸그룹에서만 따져봐도 베이비복스와 에프엑스 음악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아득하다. 그런 보아의 지난 20년은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가수"라는 그의 자평을 맹렬히 실천해온 결과였고, 켄지의 진심 어린 증언("성실이란 단어가 인간으로 태어나면 권보아가 아닐까")이 현실에 반영된 일이었다. 춤을 넘어 그 춤을 출 수 있는 자리까지 직접 만들며(자작곡 및 작사 참여) 심혈을 기울인 이 작품 'Better'가 각별한 이유다.

청하, 사진제공=MNH엔터테인먼트청하, 사진제공=MNH엔터테인먼트
청하 'Querencia'

앞서 발표한 "흠 잡을 데 없는 싱글과 미니 앨범"으로 높은 기대감을 안긴 이 앨범에 별 다섯 만점을 준 NME는 "디스코 원더랜드로 우리를 데려간" 두아 리파의 'Future Nostalgia'에 청하의 데뷔작을 비교했다. "꿈이 없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현실주의자. 라틴 장르를 비롯해 미국식 EDM, 아프로비트, 유럽 신스팝, 그리고 한국형 발라드(예컨대 '별하랑' 같은 곡) 느낌까지 두루 갖춘 이 음반에서 그런 청하는 "많은 소리를 누비고 다양한 감정들을 횡단한다." 이례적으로 펼쳐 놓은 네 가지 범주에서 특히 "강하고 우아하고 유혹적인" 두 번째 카테고리의 타이틀 곡 'Stay Tonight'이 상징한 변화무쌍 21 트랙이 끝난 뒤 청하는 마치 '이런 게 팝 아냐?'라고 얘기하는 듯 하다. 자신의 안식처(Querencia)를 앨범 'Querencia'에서 찾은 청하는 그렇게 세계 음악 팬들이 미니 앨범 4장 분량의 트랙리스트를 보며 '언제 다 들어' 걱정한 대신 '벌써 끝났어?' 감탄을 쏟아낸 (케이)팝 마스터피스 한 장을 남겼다.

최우수 노래 후보

방탄소년단, 사진제공=빅히트뮤직방탄소년단, 사진제공=빅히트뮤직
방탄소년단 'Butter'

사람들은 과거 잘나가는 뮤지션의 영향력을 가리켜 "변기 물 내리는 소리만 녹음해도 100만 장은 팔아치울 것"이라는 반농담을 하곤 했다. 지금 방탄소년단(BTS)의 영향력이 딱 그렇다. 그들은 정말 멤버들 코푸는 소리만으로도 100만장을 팔아치울 기세로 전성기를 만끽 중이다. 두 번째 영어 싱글 'Butter'도 마찬가지였다. RM이 '롤링 스톤'에 말한 것처럼 "에너지 넘치는 여름 노래"인 'Butter'는 BTS라는 이름을 빌보드 핫100 정상에 올린 싱글들 중 가장 오래 1위에 머문 노래다. 마이클 잭슨과 브루노 마스, 어셔라는 BTS 멤버들의 애정 아이콘들이 알게 모르게 오마주 되고 있는 이 완벽한 팝 트랙은 그래서 앞으로도 당분간 그들 아성을 무너뜨릴 보이밴드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처럼 들린다.

위클리, 사진제공=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위클리, 사진제공=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
위클리 'After School'

"레게와 트랩 비트로 버무린 팝. 곡 전반에 나오는 808베이스와 역동적 신시사이저 사운드."

소속사 측에서 내보낸 이 음악적 자신감은 "10대들이 활기 넘치는 일상 속에서 소중한 자유를 찾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지윤의 설명과 그 설명을 완벽히 재연한 곡의 가사와 후렴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의식한 듯 지윤은 "2020년 시국을 반영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그린 앨범"이라고 이 노래가 담긴 자신들의 세 번째 앨범이 지닌 의미까지 덧붙였는데, 과연 그 말의 감동 역시 감동적인 가사와 멜로딕 코러스를 탑재한 이 노래 안에 똑같이 담겨 있다. 'After School'은 위클리의 앤썸을 넘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낸 모든 10대 '여학생'들의 송가로 남을 확률이 높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사진제공=빅히트뮤직투모로우바이투게더, 사진제공=빅히트뮤직
투모로우바이투게더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 (Feat. Seori)'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시작하기 전 화면엔 이런 글이 뜬다.

"성장기는 어떤 점에서 누구나의 삶에 놓여있는 보편적 구멍이라고 할 수 있다. 작게든, 크게든,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며 영혼의 허기와 빈 구멍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어떤 소년들에게 구멍은 너무나 자주 복잡한 형태를 띤 채로 삶을 침범하곤 한다."

강유정 문학평론가가 소설가 박지리의 '맨홀'을 읽고 쓴 비평글의 일부다. 그리고 이 글은 그대로 TXT의 노래에 전면적인 도킹을 시도한다. 왜냐하면 '0X1=LOVESONG (I Know I Love You)'라는 로맨틱한 제목은 "모든 것이 제로(0)인 세계에서 영혼에 구멍(0)이 뚫린 소년이 한 명(1)의 소녀를 만난 이야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바로 강 평론가가 쓴 "성장기의 보편적 구멍"과 "영혼의 허기와 빈 구멍", 그리고 "삶을 침범하는 복잡한 형태의 구멍"이란 아리송한 말들이 이 노래 뮤비의 정면을 장식한 이유다. 잠비나이 같은 크로스오버 밴드에게만 어울릴 법한 '무저갱(無底坑)'이라는 단어가 이매진 드래곤스를 닮은 TXT의 하이브리드 팝록에도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건 역시 음악을 듣는 재미 중 하나일 터. 연준, 수빈, 범규가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왜 울컥하고 또 벅차했는지 곡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에스파,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에스파,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 'Next Level'

에스파는 '현실 세계'의 아티스트 멤버와 '가상 세계'의 아바타 멤버가 그 중간 세계인 '디지털 세계'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성장한다는 서사를 전제한 팀이다. 그리고 이 곡 'Next Level'의 무드와 가사, 이미지(뮤직비디오)는 그 서사를 시청각 상으로 정확히 대중에게 전달한다. 'Next Level'의 원곡은 호주 뮤지션 애스톤 와일드(A$ton Wyld)가 불러 영화 '분노의 질주: 홉스&쇼'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것이었지만, 그루브의 맥락에 설득력을 더하고 에스파의 세계관을 압축한 우리말 가사와 재지(Jazzy) 브릿지를 곁들인 유영진의 존재는 이 곡을 완전한 에스파의 것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Next Level'이 없는 2021년 케이팝 신을 상상할 수 없듯, 이제 우린 이 노래가 없는 에스파도 상상할 수 없게 됐다.

스테이씨, 사진제공=하이업엔터테인먼트스테이씨, 사진제공=하이업엔터테인먼트
스테이씨 'ASAP'

잊을만 하면 불어오는 우드윈드 신시사이저의 산들바람 같은 멜로디 라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쉴 새 없이 쪼개면서도 체계를 지닌 비트는 저 아래 굳건히 잠복한 신스 베이스와 어울려 노래, 랩, 춤에서 모두 안정감을 지닌 이 "중소" 걸그룹의 대표곡 요소로 일찌감치 자리매김 한 눈치다. "가슴속에 완벽하게 그려 놓은 이상형이 에이셉(As Soon As Possible)하게 나타나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이 싱글은 스테이씨가 데뷔하고 내놓은 두 번째 것이었다. 아직 미니 앨범 1, 2집은 나오기도 전이다. 이 말은 곧 블랙핑크에 약간의 자비와 천진함을 불어넣으면 나올 만한 스테이씨의 음악이 이전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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