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 달의 눈빛을 가진 태양의 얼굴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02.2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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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스물 하나'로 시청자 가슴에 직진

사진제공=tvN사진제공=tvN


펜싱이라는 스포츠는 즐겨보는 이는 알겠지만 참으로 ‘직선적’이다. 플뢰레가 14m, 에페가 18m, 사브르가 24m 등 경기장 길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략 경기장의 너비는 1.8~2m다. 그 좁은 폭의 경기장 안에서 옆으로 비킬 자리는 없다. 비키는 일은 즉 실점, 패배를 의미한다. 오로지 선수들은 자신과 마주선 상대에게 다가서거나 피하거나 둘 중 하나다. 3D, 4D도 유행하는 시대에 펜싱은 참으로 2D인 직선적인 스포츠다.

배우 김태리는 이러한 직선적인 스포츠인 펜싱을 들고 안방극장에 다시 찾아왔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tvN의 주말극 ‘스물 다섯 스물 하나’(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가 그의 차기작이다. 1998년 IMF 구제금융으로 격변을 치르던 대한민국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시대 때문에 꿈을 뺏길 위기에 처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심지를 갖고 단단하게 나아가는 고교생 나희도를 연기한다.



김태리가 한 역할은 그 장르와 캐릭터를 떠나서 참으로 시원하고 분명하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나희도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꿈이었던 펜싱을 다니고 있던 학교의 폐부로 잃게 될 위기에 처하지만 굉장히 우직하고 어쩌면 바보스러운 설득과정을 통해 전학에 성공해 다시 매달린다. 그에게는 시대가 준 시련도 잠시 고개를 떨굴 정도의 좌절일 뿐, 금세 단행본 ‘풀하우스’ 빌리기 등 자신이 몰두해야 할 일들이 찾아온다. 나희도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텐션을 회복하고 이는 마음 만 복잡한 백이진(남주혁)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김태리는 이 펜싱을 연마하기 위해서 드라마 방송 6개월 정도 전부터 펜싱에 매달렸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국가대표 출신 선생님에게 매일 펜싱을 배웠고 함께 출연한 고유림 역의 보나(김지연)와도 매일 맞섰다. 유독 김태리가 많이 졌는데 승부욕 때문에 훈련을 멈출 수 없었다. “매일 같이 연습장에 와 있었다”는 보나의 혀를 내두르는 반응이 그의 끈기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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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도 있었다. 극중 태양고의 펜싱부 선생님의 조언으로 온몸에 10㎏ 가량의 모래주머니를 차고 훈련하는 설정이 있었는데 김태리는 이를 미리부터 실천했다. 집 근처인 보나의 집을 찾으면서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는 모습도 보나를 놀라게 했다. 김태리는 그렇게 배역을 설정하고 목표로 하면 직선적으로 무섭게 달려든다.

따지고 보면 그의 행보가 그러했다.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의 숙희를 시작으로 2017년 ‘1987’의 연희, 2018년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 그리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은 장르와 시대가 달랐지만 재지 않고 무언가를 향해 ‘죽’ 직선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맛이 있었다. 그 성향이 ‘아가씨’의 히데코를 사로잡았고 ‘1987’ 연희가 마지막 장면 시위대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원동력이 됐으며, 하던 일을 쿨하게 접고 고향으로 오는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 그리고 양반가 규수로 총잡이가 되는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에서 투영됐다.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승리호’에서는 리더십을 갖춘 여선장 캐릭터로 그러한 ‘직선성’을 배가했다.


스크린이든 안방이든 터전을 가리지 않고 그는 배역을 놓고 재지 않았으며 극중의 상황에도 재지 않고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우리가 김태리를 떠올릴 때 받는 큰 에너지의 근원은 비키지 않고, 퇴로를 만들어 놓지 않고 관객이나 시청자의 가슴 속으로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통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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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 특유의 직선성의 원천은 태양과 같은 그의 에너지다.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연극을 마음에 품었지만 자신의 길에 두려움이 없었다. 많은 인터뷰를 통해 그는 도전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여정에 대해 두려움과 고민도 털어놓지만 한 번 열기를 발화하면 태양처럼 그 모든 근심과 걱정을 모두 사르는 에너지가 있다. 이것은 하얀 피부로 까만 하늘에 보름달을 연상하게 하는 깊이 있는 눈빛과 연계하면서 더욱 시너지를 낸다. 서늘한 밤하늘 같은 그의 피부와 눈빛을 파고 들어가면 태양과 같은 거대한 에너지가 존재한다.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아직 채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스물 다섯 스물 하나’에서 맏언니, 누나가 됐다. 1990년생 우리 나이로 33세가 됐지만 18세의 나희도를 그려내기에 그 에너지와 청량함에는 부족함이 없다. 좀 더 10대답게 자신의 답에 두려움이 없는 나희도의 모습은 평소 우리가 알아왔던 김태리의 모습이 더욱 오버랩되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데뷔시절 누군가는 그를 ‘괴물 신인’이라 불렀고 ‘겁 없는 신인’이라고도 불렀다. 신인이 겁이 없는 이유는 뭘 잘 모르기 때문일 수 있다. 나이가 먹을수록 경험으로 알게되는 걱정과 고민은 누구든 그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김태리는 비록 그 발걸음이 조금 느릴지라도 내면에 가진 태양과 같은 에너지로 계속 작품과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공전시키는 큰 은하계를 만들어갈 것 같다. 달의 눈빛을 거치면 만날 수 있는 태양의 얼굴. 김태리가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통해 또 한 번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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