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줄어도 계속 오르는 원유가격…하얗게 질린 우유 'ㅠㅠ'

머니투데이 정혁수 기자 2022.02.24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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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의 '낙농산업 구조개선' 작업이 한창이다. 달라진 우유 소비패턴 등 주변 환경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골자지만 생산농민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사진은 충남 공주시 한 젖소농장 풍경 /사진=정혁수농식품부의 '낙농산업 구조개선' 작업이 한창이다. 달라진 우유 소비패턴 등 주변 환경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산업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골자지만 생산농민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사진은 충남 공주시 한 젖소농장 풍경 /사진=정혁수


한때 국내 섬유시장을 장악했던 한일그룹이 있었다. 대규모 경제 개발계획과 맞물리면서 한일그룹은 1970년대 단일품목 최초 1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며 그야말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당시 국내 섬유 생산 40%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 지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1987년 이후 노동운동이 급성장하면서 크게 오른 임금은 노동력 위주의 섬유업에는 큰 타격이 됐다. 특히 정부의 산업정책 비중이 섬유업에서 중화학 부문으로 확대되면서 한일그룹은 성장동력을 잃고 말았다. 시장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리더십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이기도 했다.



2022년 국내 낙농업계도 비슷한 처지다. 제조업과 차이는 있지만 달라진 소비패턴을 수용하지 못하고, 메가 FTA시대 급변하고 있는 무역환경을 외면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2001년 77.3%를 기록했던 우유 자급률은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며 2020년 48.1%로 크게 줄어든 상태다. 원유 생산량은 2001년 230만톤에서 2020년 209만톤으로 감소했다. 또 우유를 사먹는 사람은 줄어드는 데 우유를 만드는 원재료인 원유(原乳) 가격은 계속 오르는 아이러니가 수년 째 반복되고 있다.



줄어든 생산량과 달리 소비는 유제품을 중심으로 증가 추세다. 치즈,버터,아이스크림 등과 같은 유제품이 2001년 1인당 63.9kg에서 같은 기간 83.9kg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냥 마시는 우유인 음용유는 출생 감소, 기호 변화 등으로 국민 1인당 36.5kg(2001년)에서 31.8kg(2020년)으로 12.9% 포인트 감소했다.

유제품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 원유 생산구조도 이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음용유 중심의 생산구조를 고집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요가 급증한 유제품 시장은 사실상 가격이 싼 수입산 원유에 내준 상태다. 2021년 멸균유 수입은 2만3284톤을 기록, 한 해 전인 2020년 1만1476톤보다 2배이상 늘었다.

"고비용 구조의 국내 낙농산업이 이대로 간다면 갈수록 시장 경쟁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낙농산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낙농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합니다. 원유 생산구조의 변화는 '적절한 가격'의 제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목소리이기도 하구요"(박범수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
소비 줄어도 계속 오르는 원유가격…하얗게 질린 우유 'ㅠㅠ'
소비 줄어도 계속 오르는 원유가격…하얗게 질린 우유 'ㅠㅠ'
소비 줄어도 계속 오르는 원유가격…하얗게 질린 우유 'ㅠㅠ'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낙농산업 정책방향은 △생산비 연동제→용도별 차등 가격제 도입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낙농진흥회 의사결정 구조 개선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생산비 연동제는 과거 우유가 부족하던 시절 우유 생산을 늘리고 낙농가와 유업체간 매년 실시하는 원유 가격 협상을 원할히 하자는 취지에서 2013년 도입됐다. 하지만 음용유 소비가 계속 줄고있는 상황에서 생산비 연동제는 공급 측면의 가격 인상 요인만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재화가 실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가격이 결정되고 있음에도, 원유만 생산비가 오른만큼 가격이 올라가는 구조로 돼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유 가격 결정 주체인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생산농가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폭넓은 의견수렴이 어렵다는 점도 해결 과제다. 낙농진흥회 이사회는 이사 15명으로 구성돼 있고 이사 2/3 이상이 참석해야 개의할 수 있다. 이사 15명중 7명이 생산자 단체 몫인 상황에서 이들이 반대하는 안건이면 이사회를 열수 조차 없는 구조다.

또 정관 개정안을 다루는 총회 요건도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은 4인(낙농육우협회장, 축산경제대표이사, 유가공협회장, 낙농진흥회장)의 만장일치로 모든 사안을 처리하도록 돼 있어 생산자측 2인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통과될 수 없는 상태다.

박범수 축산정책국장은 "총회도 어느 한 분만 반대하면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구조다. 낙농산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발전하려면 이사회도, 총회도 어느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된다. 합리적 의견이 논의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며 "만약 낙농산업 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면 미래 낙농인들은 정말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다. 서둘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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