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 맞은 韓 인터넷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2.02.1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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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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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생인 한국 인터넷이 올해 마흔, 불혹(不惑)의 나이를 맞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1982년 5월 15일, 대한민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 연결에 성공한 국가가 된 후 40년이 흘렀다.

"수출용 컴퓨터를 만들어 주시오." 미국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 연구원으로 일하던 컴퓨터 전문가 전길남 박사가 국가의 이 같은 요청을 받아 귀국길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네트워크 구축'이었다.



불혹 맞은 韓 인터넷


이에 생소했던 한국 정부는 무관심했지만, 전 박사는 뚝심으로 밀어붙여 1982년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를 연결하는 원거리 네트워크 교신에 성공한다. 아시아 최초, 전세계 두 번째 인터넷 구축이란 새역사를 쓴 것이다. 이 공로로 전 박사에겐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따라 붙었다.

전 박사는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IT산업계 유명 창업가들을 다수 배출했다.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대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한 넥슨 창업주 김정주 전 NXC 의장, 한국 최초의 인터넷 회사인 아이네트를 창업하고, 4대~8대 인터넷기업협회장을 역임한 허진호 박사,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원클릭 서비스'를 만든 네오위즈 창업자 나성균 네오위즈홀딩스 이사회 의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인터넷은 오늘의 '창업 옥토'를 일궜다. 1990년대 인터넷을 이용한 신사업을 필두로 한 스타트업이 본격 등장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직한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기업가정신)가 뭐냐"고 묻던 시절이었다. 현재 재계 순위에 오른 네이버는 그 당시만해도 작은 스타트업이었다. '한국 스타트업의 성지' 테헤란로가 본격 조성된 것도 이때부터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유니콘( 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수가 18개로 집계돼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중엔 가상자산(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빗썸코리아를 비롯해 인터넷 부동산 중개플랫폼 '직방', 온라인 중고거래플랫폼 '당근마켓' , 온라인 신선식품 주문배송 플랫폼 '마켓컬리', 전자책 기업 '리디', 인테리어 커머스 운영사 '버킷플레이스' 등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대부분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정보의 디지털화)에 성공한 혁신 기업이다.

인터넷은 지금 또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메타버스'다. 가상과 현실이 융합된 공간에서 사람·사물이 상호작용하며 경제·사회·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세계를 일컫는다.


메타버스는 네트워크, 데이터, 인공지능(AI), 가상융합기술(XR) 등 ICT(정보통신기술) 기반 위에서 완성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5G(5세대) 네트워크 고도화, 클라우드·빅데이터 등 컴퓨팅 성능을 향상시킬 반도체 칩셋 설계 기술 및 생산설비 확보, 첨단 기술을 민첩하게 흡수하는 시장과 이를 엄밀히 평가할 엔드유저까지, 메타 생태계 구축과 관련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고 평가한다. 한국 스타트업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또 하나의 무대이자 시장을 만들어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지난 산업 역사를 되돌아보건대 반도체·스마트폰·가전 등의 제품 기술을 빠르게 차용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뒤쫓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미국 등 기술 선진국도 우리와 같은 출발선상에 있다. 어쩌면 단군 이래 최초로 우리가 선점한 첫 업종이 이곳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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