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계획 말하니 최종 탈락…이대녀 "이래도 차별이 없나요?"

머니투데이 유효송 기자 2022.02.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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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④

편집자주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입장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표심 사냥을 위해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대선을 아름답다고 할 순 없다. 공공기관 등 취업시장에서 서로를 차별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대녀(20대 여성), 이대남(20대 남성)들의 생각을 들어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임신 계획 있으면 합격하기 어려울 거예요."

20대 후반 여성 조모씨는 지난해 말 이직 면접을 앞두고 해당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던 중 이런 말을 들었다. 실제로 조씨는 면접 과정에서 직무 경력보다는 임신과 출산 계획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받았다. 올해 말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조씨는 솔직하게 말했고 결국 최종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는 "이렇게 경력이 단절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토로했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여성가족부 폐지 등 '역차별'을 호소하는 남성에 편향적인 공약들이 쏟아지는 데 대해 '이대녀'(20대여성)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이들은 정부와 민간의 성평등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여전히 국내 취업시장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성토한다. 지난해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문제가 공론화된 후 1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취업시장에서는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여성 취업준비생 임씨(27)는 "서류와 필기에서 합격해도 면접에서 떨어진 게 여러차례"라며 "1차 서류(블라인드)와 2차 필기, 3차 면접 순으로 성별을 보고 평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고차 전형으로 갈수록 합격률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임씨의 주장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고용노동부가 2017년 신규채용 인원이 10명 이상이고 최종합격자 중 여성비율이 30% 미만인 91개 공공기관의 채용 단계별(지원→서류→필기→면접→최종) 합격자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지원자 중 서류전형에 합격한 비율은 여성이 남성의 101%로 보다 근소하게 높았지만, 면접 뒤에는 여성 합격자 비율이 남성의 69%로 대폭 낮아졌다.



민간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7월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기업 473개사를 대상으로 '채용시 선호 성별'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2.8%가 '상대적으로 더 선호하는 성별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남성(74.2%)을 여성(25.8%)보다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인턴을 하며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여성 박씨(27)는 "기업에서 아예 남성만 채용하는 경우도 꽤 있다"며 "형식적으로는 군 가산점제가 페지됐지만 여전히 기업에서도 남성, 거기다 해병대 등 힘든 군 생활을 하고 나왔다고 하면 더 쳐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학교 근로장학생 자리도 여자는 비서 업무나 보조 업무, 군필 남자는 행정 업무 등으로 제한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채용절차법이 개정된 2019년 7월부터 노동부에 접수된 법 위반 559건 가운데 338건(60.5%)이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와 키 등 신체적 조건, 혼인 여부와 출신지역 등 기초심사자료를 요구해 신고됐다. 이마저도 수사기관에 통보된 경우는 없었고 절반에 못미치는 건수들이 과태료와 시정명령에 그쳤다. 조씨는 "업계가 좁아 평판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차별을 당한 사실을 알리길 꺼려했다"며 "신고를 해도 권고 정도에 그친다면 나같이 신고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험난한 취업 문턱을 넘어선 이후도 문제다. 아직도 승진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더 적은 기회를 누린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법인 2246곳의 전체 임원 3만2205명 중 여성은 5.2%(1668명) 뿐이었다.

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장씨(29)는 "입사할 때는 모두 같은 직무로 들어왔는데도 여자와 남자 동기들이 맡는 일이 다르다"며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이 있어도 창구에 앉아 손님을 맞는 업무는 거의 여자 동기들 위주로 발령이 나고, 승진과 업무를 배울 기회가 많은 직무는 남자 동기들에게 먼저 간다"고 말했다.



장씨가 다니는 은행은 학력과 성별에 따라 정해진 초봉을 출발점으로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가 차등으로 올라가는 호봉제를 선택하고 있는데, 군대를 다녀온 남자 사원들은 같은 해 입사자임에도 2년을 더 대우받는다고 장씨는 전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20대 남성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이는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라며 "사기업 연봉이 직무역량이 아닌 단순히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결정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 대학원생 박씨는"친구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태어났으니 '이번 생은 틀렸다'라는 자조적인 소리가 나온다"라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후보들의 공약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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