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 잡고 타던 '백화점 셔틀버스', 아직도 운행하는 곳이 있다고?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22.02.05 07:05
글자크기

[이재은의 '똑소리'] 재래시장 활성화 위해 2001년 6월 말, 유통업체들 셔틀버스 운행 전면 중단…현대백화점 본점은 예외적 운행 중

편집자주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 '똑소리'는 소비자의 눈과 귀, 입이 되어 유통가 구석구석을 톺아보는 코너입니다. 유통분야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똑소리 나는 소비생활, 시작해볼까요.

4일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앞 셔틀버스에 한 고객이 올라타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4일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앞 셔틀버스에 한 고객이 올라타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엄마 손 잡고 타던 '백화점 셔틀버스', 아직도 운행하는 곳이 있다고?
어릴 적 엄마를 따라 백화점 가는 날은 늘 들떴다. 그날은 백화점에서 새 옷을 사고, 백화점 내 푸드코트로 입점한 피자헛에서 피자도 먹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을 가는 날은 곧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는 날이기도 했다. 백화점 셔틀버스 시간표를 따라 집 앞에 나가있으면, 때맞춰 백화점 셔틀버스가 왔다. 큰 대형버스였는데 늘 고객들로 가득해 운이 없으면 다음 차를 기다려야할 때도 있었다. 집 근처에 위치한 아울렛도 셔틀버스를 운행했기에 엄마의 구미에 따라 가끔은 아울렛을 향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이 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1년 6월까지 백화점, 아울렛, 대형마트, SSM(기업형슈퍼마켓)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운영한 셔틀버스에 대한 추억이다.

당초 분당 등 신도시에 위치한 유통업체들이 마케팅 수단으로 셔틀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한 게 명동, 압구정 등 도심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로 뻗어나가면서 거의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이 운영하게 된 것이다. 당시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등 백화점은 물론이고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도 셔틀버스를 운영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셔틀버스 노선의 수가 곧 집객력이 됐고, 점포 당 수십개 노선을 운영하다 보니 각 업체들은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을 셔틀버스 운행에 쏟아부을 정도였다.
4일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앞 셔틀버스가 고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해있다. /사진=이재은 기자4일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앞 셔틀버스가 고객을 태우기 위해 정차해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이토록 활성화 됐던 유통업체 셔틀버스는 2001년 6월 말 운행이 모두 중단됐다. 2000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유통업체의 셔틀버스 운행을 전면 금지하는 '여객자동차운수법' 개정안(일명 셔틀버스 금지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버스 업체들의 반발과 재래시장 등 중소 유통업체의 경영난, 재래시장 활성화 등을 이유로 도입됐다.



법안 통과 직후 7개 백화점이 모인 셔틀버스공동대책위원회가 "셔틀버스 운행금지 조치를 담은 개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은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지만, 2001년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안이 합헌이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따라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는 2001년 6월30일부로 셔틀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유통업체 셔틀버스 폐지는 여러 가지 파장을 일으켰다. 온라인에 익숙지 않던 가정주부들이 2000년대 초반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막 발을 내딛던 e커머스를 통해 장보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TV홈쇼핑이 크게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안타깝게도 본래의 취지와 달리 재래시장 활성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백화점을 비롯해 각 유통업체들은 셔틀버스 운행 중지 이후 여성 주차 공간, VIP 주차 공간을 늘리고 주차 도우미를 추가 고용하는 등 자가용을 끌고 온 고객들을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주말이나 세일 기간이 되면 매번 주차 전쟁으로 각 유통업체 근방의 도로까지 마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늘어난 자가용 때문에 도심 교통난이 심해지자 2008년 서울시는 유통업체 셔틀버스를 다시 허용하는 쪽으로 추진하다가 재래시장 상인들의 반발에 포기한 바 있다.


4일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근방에서 셔틀버스가 운행 중인 모습. /사진=이재은 기자4일 서울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 근방에서 셔틀버스가 운행 중인 모습. /사진=이재은 기자
가끔씩 옛날에 타던 백화점 셔틀버스의 추억에 잠기곤 하는데, 현재도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에서는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이곳은 2001년 6월말 셔틀버스 금지 이후 5개월 후 다시 서울시와 강남구의 허가를 받아 재운행 중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의 예외 조항, 즉 '대중교통수단이 없는 지역 등으로서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는 셔틀을 운행할 수 있다'는 구절에 따른 것이다. 해당 3개 노선은 각각 △구 현대아파트 △신 현대·미성아파트 △한양아파트 등을 10~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이 지역은 아파트 단지가 대단지로 내부에는 마을버스 등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다.

실제 4일 운행 중인 셔틀버스를 살펴보니 주로 장년층이 셔틀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쇼핑 후 짐을 한가득 들고 백화점 후문으로 나와 곧바로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강남구청에서 주민 의견을 수렴해 3개 노선을 운영할 것을 제안·허가해 운영하고 있다"며 "해당 지역은 대단지로 이곳에서부터 백화점까지의 거리가 운전할 수준은 아니지만 걷기에는 무리가 있는 거리인 만큼 나이가 있는 고객들이 주로 셔틀버스를 애용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