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길, 사진제공=SBS
하지만 ‘살인의 추억’은 결론이 없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따르는 실제 사건이 결론이 없기 때문이다. 뚜껑을 연 ‘살인의 추억’은 결국 한국형 스릴러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지만 그 안에 많은 함의를 담았기 때문이다. 시대의 모순 때문에 일그러졌던 수사나 범인을 잡고 싶었던 형사들의 집념 그리고 살아 움직이는 여러 캐릭터들 덕이다.
김소진, 사진제공=SBS
드라마에는 우리가 그동안 익히 알고 있는 사건들이 다수 등장한다. 1회부터 등장해 극의 긴장감을 높였던 빨간모자 사건을 비롯해 3회부터 등장한 여아 토막 살인사건은 최인구가 실제 범인이었던 서울 성동구 여아 토막 살인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4회부터 등장한 부유층 대상 둔기살인사건은 유영철의 살인행각을 다루고 있으며, 6회 잠깐 등장해 경악을 안겼던 살인사건의 모티프는 서울 서남부를 2000년대 초반 공포로 가뒀던 살인범 정남규의 행적을 쫓았다.
우리는 이들의 과정과 결말을 모두 알고 있다. 드라마가 출발하는 지점은 바로 시작과 끝이 보이는, 어쩌면 ‘살인의 추억’과 같은 지점이었다. 드라마는 ‘살인의 추억’과 마찬가지로 사건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의 수사물과 다른 지점에 다다른다.
주인공 송하영 형사(김남길)는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형사가 되서도 마찬가지라, 다른 형사들이 환멸하는 범죄자들의 심리 속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 같은 기질을 알고 있던 범죄행동분석팀 국영수 팀장(진선규)의 추천을 받아 송하영은 범죄행동분석팀에 합류하고, ‘프로파일링’이라는 기법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다.
드라마는 사건의 양상도 양상이지만 프로파일링이라는, 당시로서는 낯선 수사기법이 어떻게 경찰 안에서 안착하게 됐는지의 과정을 전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심리테스트’라고 폄훼하는 시선도 있었고, 수감자를 만나 수법을 묻는 행위가 경찰로서의 도리를 저버리는 큰 잘못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파일링을 하는 형사들의 집념 속에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고 이를 통해 시대가 갖고 있던 편견들이 조금씩 깨져나가는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 드라마의 주요 전개 포인트다.
진선규, 사진제공=SBS
줄거리의 중심을 이루는 사건들은 다시 한 번 섬뜩한 기억들을 소환한다. 하지만 극의 장치로는 이미 패가 드러났기 때문에 진부할 수 있다. 결국 드라마는 이 과정 속에서 성장하는 프로파일러들과 프로파일링 기법 그리고 프로파일링을 접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를 차근차근 섭렵하고 있다. 범인이 등장하고 그의 행보가 보이고, 형사가 어떤 작업을 통해 이들을 잡게 되는지에 집중하는 기존 수사물과는 접근 자체가 다른 셈이다.
연출을 맡은 박보람PD나 대본을 쓰는 설이나 작가 모두 경력이 길지 않지만 뚝심을 갖고 드라마의 톤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덕분에 드라마는 그 흔한 러브라인 하나 없이도 계속 시청자의 눈을 붙들고 있다. 하지만 극중 김남길의 차나 ‘조흥은행’ 등 소품으로 등장하는 소재들이 시대가 맞지 않는 소소한 실수는 눈에 띈다.
우리는 수사물을 앞으로 어떻게 봐야할까. 범죄를 저지르고 잡는 단순한 틀거리에만 만족해야 할까.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수사물의 새로운 지평이 보일 수 있음을 조금씩 증명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