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의 미소, 시간이 멈춘 곳에서 사유…"가르침은 필요없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2.01.2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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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3-①'사유의 방'을 만든 사람들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사유의 방'의 모습.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사진=최경민 기자'사유의 방'의 모습.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사진=최경민 기자


계피향이 난다. 어두컴컴한 동굴과 같은 복도가 눈 앞에 있다. 걸으며 어둠과 계피향에 익숙해질수록 외부와의 단절감이 커진다. 복도의 끝에는 소극장(439㎡) 크기의 공간. 천장에 박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금속봉은 별처럼 반짝인다. 이곳이 우주와 다름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 끝에 보이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 그 미소.

지난해 11월부터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마련된 '사유의 방'을 방문하면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이곳은 6~7세기에 만들어진 국보 78호·83호(옛 지정번호 기준) 반가사유상을 전시한 장소. 입구에는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반가사유상을 감상하며 사색할 수 있는 공간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사유의 방'을 찾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젊은 층에서도 '힙하다'는 호평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관람객 10만명을 연초쯤 돌파한 것으로 박물관은 추산하고 있다. 단순 '국보급 유물'을 전시해놓은 곳이라면 불가능했을 반응이다. 서로 같은 듯 다른 반가사유상 2점을 나란히 유리장 없이 공개한 파격, 그리고 유물을 뒷받침하는 특별한 건축 기법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추진한 사람을 '찐터뷰'를 통해 만났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그리고 최욱 건축가(원오원아키텍츠 대표). 민병찬 관장과는 지난 1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직접 만났고, 최욱 건축가와는 지난 4일 서면 인터뷰를 했다.



"시간이 멈춘 공간…과거 아닌 현재와 미래 보여주는 전시"
"1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시간이 좀 멈춰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시간이 멈춰서, 오로지 반가사유상의 웃는 모습만 보고 동화되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지금까지의 박물관에서는 주로 과거를 봤다. 하지만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현재'를, 나아가 '미래'까지 보여주는 그런 전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민병찬 관장은 '사유의 방'의 콘셉트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첫 질문을 받자마자 15분 동안 답을 끊지 않고 했다.

2020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되자마자 '사유의 방'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했던 사람, 명함에도 반가사유상 그림이 있을 정도로 이 유물에 진심인 남자. 1989년부터 30년 넘게 근무한 '국립중앙박물관맨'이고, 동시에 국내 최고의 불교미술 전문가로 꼽힌다.


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그런 그가 관객들이 반가사유상을 통해 '현재'와 '미래'까지 보길 바라는 마음에 '사유의 방'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민 관장은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연출한 신라 혹은 백제의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번뇌가 현대인의 그것과 거의 같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가사유상은 '깨달음의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1500년 전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얻은 마음의 치유를, 현대인들도 받을 수 있다는 게 민 관장의 생각이다.

민 관장은 "물질문명은 엄청나게 변해왔다. 배고픔에서도 많이 벗어나게 됐고, 삶도 편해졌다"며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고뇌하고, 힘들어하고, 번뇌하는 존재다. 1500년 전 사람들의 내일 아침 끼니가 없을 수 있다는 고민과, 요즘 사람들이 겪는 업무·대인관계 스트레스는 그 종류만 다르지 거의 같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반가사유상이 갖고 있는 저 미소는 1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똑같다. 그 미소 자체가 갖고 있는 인간에게 주는 행복감은 변함없이 계속 갈 것"이라며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 반가사유상의 자세와 표정은 완벽하게 마음의 평온을 준다"고 강조했다.

반드시 뒷면까지, 유리장 없이…'조명'과 '공간감'
그렇다면 언제부터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놓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반가사유상과 특별한 건축 기법의 만남은 어떻게 구상한 것일까.

-반가사유상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을 설명해달라.

▷"대학교 3학년때인가 처음봤다. '조각품이 어떻게 저렇게 웃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감동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이 반가사유상은 뒷면도 봐야 한다고 했다. 뒷 모습이 앞 모습과 달라 감동이 확 밀려왔다. 그 자세가 그렇게 유려하면서 아름다울 수 없었다. 반가사유상은 반드시 뒷면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때부터 '반가사유상 뒷면까지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꿈꾼 것인가.

▷"반가사유상을 감상할 때 1도씩 돌아보면 얼굴 표정이 다 바뀐다. 전체 상의 곡선도 다 바뀐다. 돌면서 바뀌는 표정, 자세, 선을 감상하면 계속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관객들도 당연히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유의 방' 반가사유상의 뒷모습. 직접 봐야 그 감동을 100% 느낄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사유의 방' 반가사유상의 뒷모습. 직접 봐야 그 감동을 100% 느낄 수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전시하는 방식은 처음이 아니다. 1986년, 2004년, 2015년에 시도됐던 바 있다. 민 관장은 별다른 효과를 주지 않고 넓은 공간에서만 진행됐던 2004년 전시를 두고 '훵했다'고 표현했다.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는 것.

그러면서 2015년 전시를 통해 반가사유상 두 점이 가진 시너지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해가 뜬 후 넘어가는 콘셉트의 조명, 벽에 곡선을 준 공간감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해줬다. 이런 효과를 적용한 결과 반가사유상 두 점의 같은 듯 다른 미묘한 차이가 상승효과를 만들었다. 그가 반가사유상과 건축의 만남을 생각했던 이유다.

민 관장은 "언젠가는 반가사유상 두 점을 나란히 놔서 박물관의 대표로 삼아야겠다 생각했다"며 "박물관에서의 대표물이 중요하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하면 '모나리자'를 떠올리잖나. 두 반가사유상은 예술적으로, 미술사적으로 한국을 대표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표를 하려면 그 대표로서 존중해주는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조명을 잘 쓰고, 공간감을 만드는 게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공간 자체를 하나의 예술작품이라 생각했다"며 "하지만 반가사유상 두 작품이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에 공간 자체가 장식적이거나 너무 화려하면 오히려 작품을 해친다. 그 공간 자체도 예술적이면서도, 반가사유상 두 점을 잘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고 밝혔다.

유리 진열장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도 확고했다. 그는 "유리 진열장에 유물을 집어넣으면 잘 안 보인다. 사각의 진열장 프레임 쪽에 그림자가 생긴다. 진열장 안에다 조명을 넣기에는 공간이 협소하고, 밖에다 조명을 넣으면 유리에 빛이 반사가 된다"며 "유리 진열장 없이 그대로 놔야 유물 본연의 모습이 더 잘 보인다"고 힘을 줬다.

별, 계피, 황토, 경사…우주 속 반가사유상
'사유의 방'을 만들어줄 이로는 최욱 건축가가 낙점됐다. 물성의 특징, 사물이 갖고 있는 특성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건축가를 물색한 결과다. 최욱 건축가의 경우 2004년 미국 LA에 반가사유상 한 점이 출품됐을 때 전시공간 작업을 한 경험이 있기도 했다. 민 관장은 △국보 78호와 83호를 함께 전시하는 공간 △반가사유상의 뒷모습도 볼 수 있는 공간 △유리 진열장이 없는 공간을 주문했다고 한다. 최욱 건축가의 생각은 어땠을까.

최욱 건축가/사진=원오원아키텍츠 홈페이지최욱 건축가/사진=원오원아키텍츠 홈페이지
- 박물관 측의 요구를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풀기 어려운 과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과거에 가두어진 시간을 현재로 연결하여 동시대성을 표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물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 반가사유상을 마주했을 때 받은 느낌은 어떠했나.

▷"서양의 입체 조각물과는 다른 종류의 실체였다. 조각은 시각적 대상물로서 비례와 균형이 중요하지만 반가사유상은 육체가 아닌 정신의 구현이었다. 그 오묘한 미소를 보았을 때 주변과 함께하는 위안이었다. '분위기'를 만든다 라고 달리 표현 할 수 있다."

최욱 건축가의 설계 아래 '사유의 방'이 제작됐다. 2만여개의 금속봉을 천장에 박아 별이 떠 있는 우주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바닥과 벽에 미세한 경사를 줘서 관객의 포커스가 반가사유상에 맞춰지도록 유도했다. 벽은 황토로 만들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벽에는 계피향을 섞어 '후각'으로 속세와의 차별점을 줬다. '사유의 방'이 더없이 신비로워 보이는 이유였다.

최욱 건축가는 "실체가 모호한 천장과 기울어진 바닥과 벽은 시각적 소점을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반가사유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배경"이라며 "천장의 별은 하늘의 추상적 표현이다. 반가사유상은 지상에 내려오기 전의 사유하는 존재, 추상적인 실체다. 억만 겁 떨어진 천상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가르침의 공간 아냐…스스로 느끼고 대화하는 공간"
민병찬 관장은 '사유의 방'이 만들어졌을 때 '완벽'이라 생각했다 한다. 자신이 그동안 감동받아온 반가사유상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평가했다.

- '사유의 방'을 처음 봤을 때 감정을 설명해달라.
▷"가슴이 뭉클하다 해야 하나. 오로지 반가사유상 두개만 멀리 보이는데 우주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간 자체가 튀지 않고 상을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다가갔더니 반가사유상이 점점 커졌다. 상 자체가 갖고 있는 아우라, 미소가 잘 보이더라. 이전에 진짜 고생했던 게 조명의 그림자였는데, 그림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림자 없이 상 두 개가 있으니까 정말 신처럼 보였다."
우주를 형상화한 '사유의 방'/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우주를 형상화한 '사유의 방'/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
- 이런 걸 두고 우주의 진리가 담겼다고 해야 하나.
▷"시간은 무한대이기 때문에 너무 시간의 흐름에 대해 초조해하지 말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은 잊어버리고, 이 공간에, 현재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 기쁨부터 쓸쓸함까지, 복합적인 감정이 내재된 공간 같다.
▷"정답이 없다. 그 미소를 한 마디로 규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절대로 누구를 가르칠 필요도 없다. 최욱 건축가도 '건축에서 가르치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요즘은 더 그런 시대다. 가르치고, 배우고…그런 공간으로 만들지 않았다."

실제 '사유의 방'에는 아무런 설명판이 없다. 몇 세기 어디서 만든 작품인지 등도 적혀있는 곳이 없다. 궁금한 게 있는 사람은 각자가 QR코드로 찾아보면 된다.

반가사유상의 알듯말듯한 '미소'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현장에서 만난 다른 관람객들도 비슷했다. 저 미소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민 관장이 답했다.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은 미륵이라고 본다. 중생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깨닫는 그 순간의 희열이 미소로 나타난 것이다. 해탈의 순간, 그 최고의 기쁨을 희열이라 하잖나. 그게 얼굴의 미소로 나타난 게 아닐까.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자유다. 철학적 사고를 해도 되고, 멍 때려도 된다. '사유의 방'은 스스로 느끼고 대화하는 공간이다."
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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