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 주범이 '수소경제 심장'으로…함부르크의 역발상

머니투데이 함부르크(독일)=이강준 기자 2022.01.25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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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에너지대전환-탄소중립 로드를 가다: 독일편③

무어부르크 석탄 화력 발전소/사진제공=바텐팔무어부르크 석탄 화력 발전소/사진제공=바텐팔


함부르크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선정 '수소경제'를 실현할 최적의 도시다. 수소만으로 도시 전체를 운영하는 수소경제는 '돈'과 '지리적 요건'이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한다. 초기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에, 풍력 등 친환경 에너지가 그린수소를 충분히 생산할만큼 잠재력이 큰 지역이어야 한다는 것.

역설적이게도 친환경 에너지 비중이 독일 내에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 함부르크 지역의 한 화력 발전소가 이러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무어부르크(Moorburg) 석탄 화력 발전소다. 이미 이곳은 2020년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지난달 2일 오후 3시 독일 함부르크 주(州)정부 사무실에서 만난 옌스 케르스탄 환경·기후·에너지·농업부 장관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이강준 기자지난달 2일 오후 3시 독일 함부르크 주(州)정부 사무실에서 만난 옌스 케르스탄 환경·기후·에너지·농업부 장관이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이강준 기자
지난달 2일 오후 3시 독일 함부르크 주(州)정부 사무실에서 만난 옌스 케르스탄 환경·기후·에너지·농업부 장관은 "(그린수소 생산 최적지에 있는) 무어부르크 발전소를 재건축해 수소허브의 중심지로 만들 것"이라며 "함부르크를 독일을 넘어 유럽 최대 규모 그린수소 생산지로 탄생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어부르크 발전소는 2007년 해상풍력 등 재생 에너지 기업 바텐팔이 부지를 매입해 건설했다. 2015년 가동이 시작돼 800MW(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량은 연간 850만톤에 이를 정도로 함부르크 지역 공해의 주범이었다.

'그린수소'만이 탄소중립 실현 가능…獨 정부가 해외 국가도 수소 인프라 건설 지원
무어부르크를 품은 함부르크가 수소경제 핵심 도시로 부상한 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0년 6월 독일 연방정부는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 수소경제 리더로 발돋움하기 위해 '독일 국가 수소전략(Die Nationale Wasserstoffstrategie)'를 발표했다.

독일 국가 수소전략/사진제공=독일 연방정부독일 국가 수소전략/사진제공=독일 연방정부

이 전략에는 크게 △독일 수소 시장 확대를 위해 70억 유로(약 9조4660억원) △유럽연합(EU) 내 수소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 20억 유로(약 2조7046억원) 지원 △2030년까지 독일 내 5GW(기가와트) 규모 수소 생산 설비 설치 △2035~2040년까지 5GW 규모 추가 설치 등이 담겼다.

흥미로운 점은 독일 뿐 아니라 수소 파트너십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의 사업이라도 독일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수소경제가 탄소 배출 제로(0)인 '그린수소'로만 돌아가야 진정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정부의 판단 때문이다.

그린수소는 풍력·수력발전 등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특정 지역·국가에서만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독일 내에서 최대한 생산기반을 마련하되, 부족한 수소는 이웃국가에게서 수입을 해서라도 오로지 그린수소로만 수소경제를 운영하겠다는 복안인 것. 그러기 위해선 독일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까지 수소 인프라가 어느정도 발전해야 한다.

시간당 수소 2만톤 내뿜는 '함부르크 그린수소 허브'…세계 최대 규모
환경파괴 주범이 '수소경제 심장'으로…함부르크의 역발상
유럽 전체의 수소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독일 연방 정부는 2020년 12월 연방경제에너지부 주도로 수소 관련 IPCEI(유럽 공동 관심 분야 주요 사업)을 발족했다. 총 23개 회원국 약 200개사로부터 사업안을 접수받았는데, 이중 함부르크 소재 12개 기업이 구성한 '함부르크 수소 연합(Wasserstoffverbund Hamburg)'의 프로젝트가 8개나 선정됐다.

8개 프로젝트 중 가장 핵심 사업은 그린수소 생산 시설을 마련하는 '함부르크 그린수소 허브' 사업이다. 무어부르크 발전소 인프라를 활용하는 게 골자다. 무어부르크는 독일 전역에 38만 볼트, 함부르크에 11만 볼트의 송전망이 이미 구축돼 있다. 또 함부르크 항구와 인접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데 쓰이는 바이오매스를 배를 통해 들여올 수 있다.

또 수소 연합 가입사 바텐팔의 육상·해상풍력 발전소도 가까워 무어부르크 발전소 자리에 들어설 예정인 그린수소 수전해시설에 전력을 직접 공급할 수 있다.

함부르크 그린 수소 허브 예상도/사진제공=Warme Hamburg함부르크 그린 수소 허브 예상도/사진제공=Warme Hamburg
무어부르크 수전해시설(가칭)은 100MW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설치용량을 갖출 예정이다. 세계 최대 규모로 시간당 2만톤의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자동차 한 대가 2만㎞를 주행할 수 있는 양이다.

여기서 나온 수소는 총 길이 50㎞에 달하는 도시 파이프를 통해서 철강·구리·알루미늄·석유화학 등 중공업 공장에 전달된다. 수전해과정서 발생한 산소는 선(先) 장기 구매 계약인 오프테이크(off-take) 방식으로 판매한다. 이외에도 모빌리티·난방 에너지로 수소가 쓰이면 매년 9만2000톤의 탄소가 감축될 전망이다.

다만 무어부르크 수전해시설은 세계 최대 규모인데도 도시 전체를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용량이다. 철강 공장만 해도 연간 450MW의 수소가 필요한데, 부족분은 모두 수입하겠다는 계획이다.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케르스탄 장관은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반드시 산업분야에 그린수소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함부르크 그린 수소 허브'를 중심으로 도시가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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