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심으로 택한 세계인의 BYC" 한영대 회장 별세…향년 100세](https://thumb.mt.co.kr/06/2022/01/2022011712471856801_1.jpg/dims/optimize/)
한영대 회장은 1923년 전북 정읍에서 5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나 북면 소재 4년제 소학교와 정읍에 있는 6년제 정읍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든 한 회장은 광복 1주년이 되던 1946년 8월 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해 내의 산업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한 회장은 양말 편직기의 몸통을 키우면 내의도 생산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를 탄생시켰다. 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기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내의 생산을 위한 강인한 의지와 집념, 노력으로 편직기의 성능과 수를 증설했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한영대 BYC 회장/사진=BYC](https://thumb.mt.co.kr/06/2022/01/2022011712471856801_2.jpg/dims/optimize/)
한 회장이 가장 강조했던 원칙은 '속옷 외길', '품질 제일주의' 정신이었다. 이는 BYC 기업의 경영 방침이 됐으며 76년동안 한 눈 팔지 않고 달려온 한 회장은 BYC를 국민이 사랑하는 브랜드로 만들며 내의 산업을 선도했다. 과거 미쓰비시 상사가 국내 시장에서 은밀히 샘플을 수거, 검토 후 BYC 제품의 품질을 높이 사 일본 수출을 제안했지만 한 회장이 '아직 수출할 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1985년 한 회장은 주식회사 백양(現 BYC)의 간부 회의에서 기업의 명운을 가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한영대 회장은 고심 끝에 수출을 결정했다. 큰 어려움이 예견되지만 독자 브랜드 개발을 통해 백양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고난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오늘날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브랜드 'BYC'의 탄생이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국내 및 해외 시장에 진출한 BYC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상표를 넣은 로고와 '세계인은 BYC를 입는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성장해 나갔다. 전성기에는 세계 78개국에 8000만달러 어치 메리야스를 수출했으며 꾸준히 상승한 인기와 인지도에 한회장은 1996년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로 변경했다.
이후 BYC는 1998년 한국투신이 선정한 '생존능력이 뛰어난 상장회사 28개사' 10위 안에 선정됐으며 2000년에는 대한상의와 중앙일보가 공동제정한 제1회 새천년새기업상 부가가치 창출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또한 능률협회가 주는 '최우량 기업상', '최우수중견기업상', '한국섬유대상' 등을 수상하며 지금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