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품 사지 마세요" 밀어내니 더 끌리네…'유통의 비밀'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22.0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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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똑소리'] 고객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마케팅 기법 '디마케팅'

편집자주 똑똑한 소비자 리포트, '똑소리'는 소비자의 눈과 귀, 입이 되어 유통가 구석구석을 톺아보는 코너입니다. 유통분야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 재미있게 전달하겠습니다. 똑소리 나는 소비생활, 시작해볼까요.

명품 브랜드 샤넬 제품의 '가격 인상설'이 도는 가운데 2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고객들이 매장 입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명품 브랜드 샤넬 제품의 '가격 인상설'이 도는 가운데 2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고객들이 매장 입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우리 제품 사지 마세요" 밀어내니 더 끌리네…'유통의 비밀'
"와 오늘도 줄이 정말 기네요." 점심 약속이 있어 한 백화점을 지나는데 이날도 긴 줄이 보였다. 3대 명품이라 불리는 에르메스, 샤넬, 루이비통(에·루·샤) 명품 브랜드 매장 앞 '오픈런(Open Run·매장 문을 열자마자 달려가 구매하는 것)'을 위한 줄이었다. 이들 3대 명품은 꾸준히 가격 인상을 하고 있지만 구매를 원하는 고객들이 꾸준히 늘며 매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찾는 이들이 많은 만큼 많이 팔면 명품 브랜드 입장에서도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텐데, 도무지 공급을 늘리지 않는다. 매장엔 늘 재고가 없다. 오픈런을 위해 줄 선 이들은 원하는 상품을 찾지 못해 허탕치는 일이 다반사다. 일주일이나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줄을 서는 일도 있을 정도다. 이에 대해 한 백화점 관계자는 "본래 밀어내면 더 끌리는 법이잖아요"라며 마케팅 전략 중 '디마케팅'을 떠올리면 된다고 설명했다.



'디마케팅'이란 1971년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업인 필립 코틀러 교수가 고안한 개념으로 감소를 뜻하는 'decrease'의 'de(디)'와 마케팅을 합친 말이다. 기업이 고객의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는 마케팅 기법으로, 모든 고객이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국백화점협회와 한국유통학회에 따르면 디마케팅은 수익성이 낮은 고객에 대한 수요를 억제함으로써 기존의 서비스 수준을 유지해 우량 고객에 더 많은 신경을 써 우량 고객의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이며 수익을 극대화한다. 이 같은 방식은 고객의 자유를 억제하기 때문에 고객이 해당 제품을 다시는 살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때 고객은 더 강렬하게 상품을 소유하고 싶어진다. 수요를 억제하기에 이미 제품을 차지한 구매자나 사용자는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은 디마케팅을 통해 공익 이미지를 구축할 수도 있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다.  2021.11.2/뉴스1  2일 오전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시민들이 입장을 위해 줄 서 있다. 2021.11.2/뉴스1
'콧대 높은 명품 브랜드' 에·루·샤는 디마케팅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구매 이력이 있는 소비자들에게만 제품을 소개하고 판매하기로 유명하다. 샤넬도 '클래식 플랩백', '코코핸들 핸드백' 등 일부 상품에 대해 1년에 제품을 딱 1개씩만 살 수 있도록 구매 수량 제한을 하고 있다. 루이비통은 프랑스 파리 본점에서 관광객이 제품을 구입하면 여권번호를 등록해 1년 내에 다시 구매할 수 없도록 한다. 아울러 버버리도 공급을 제한해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재고를 소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8년 BBC에 따르면 5년간 버버리가 시장에서 팔리지 않은 의류와 액세서리, 향수 등 제품을 소각한 규모는 모두 9000만 파운드(약 1465억원)에 달했다.



명품 브랜드만 디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건 아니다.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전 세계적으로 큰 소비가 이뤄지는 '블랙프라이데이'에 문을 닫거나 할인을 하지 않는 정책으로 유명하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때는 뉴욕타임스에 인기 제품 중 하나인 R2 재킷을 전면에 내세운 광고로 화제를 모았다. 광고 문구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문구를 걸었기 때문이다.

당시 파타고니아는 자사의 R2 재킷에 대해 60% 재활용 폴리에스터를 활용해 만들었고 오랜 기간 착용해 닳더라도 수선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친환경 제품이라고 소개하면서도 이 재킷 하나를 만들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환경적인 대가가 재킷 가격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판매량이 급증하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역설적으로 소비를 지양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파타고니아는 대중에게 친환경 패션 브랜드를 추구한다는 걸 제대로 각인시켰다.

2011년 파타고니아의 뉴욕타임스 광고.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문구가 눈에 띈다. 2011년 파타고니아의 뉴욕타임스 광고.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문구가 눈에 띈다.
식품 업계도 디마케팅 전략을 자주 활용한다. 2002년 프랑스 맥도날드는 "어린이들은 일주일에 한번만 맥도날드에 오세요"라는 문구를 통해 광고했다. 햄버거 주 소비층인 어린이들의 수요를 제한하는 광고인 만큼 파격적이었다. 이는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원인이 된다는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취한 전략이었다. 효과는 톡톡했다. 그해 프랑스 맥도날드는 유럽지사 중 최고의 영업실적을 올리는 성과를 냈다. 프랑스 맥도날드가 이 광고를 통해 '프랑스 맥도날드는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회사구나'하는 공익적인 이미지를 심으면서 동시에 일주일에 한번은 먹어도 괜찮은 음식으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이다.


네슬레 광고 중 일부. 'Nothing else is breast milk'(아이에게 모유보다 좋은 건 없습니다) 문구가 눈에 띈다.  네슬레 광고 중 일부. 'Nothing else is breast milk'(아이에게 모유보다 좋은 건 없습니다) 문구가 눈에 띈다.
네슬레도 표면적으로 디마케팅을 하면서 오히려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한 사례로 꼽힌다. 네슬레는 모유 대체품인 분유를 판매하면서 "아이에게 모유보다 좋은 건 없습니다"라거나 "모유에서 배웁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이를 통해 분유를 만드는 자사의 상품도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만들었다는 걸 드러낸 것이다.

다만 기업들은 디마케팅을 할 때 주의해야한다. 자칫 고객들이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한국백화점협회와 한국유통학회가 엮어낸 책 '꼭 알아야 할 유통'은 디마케팅에 대해 "다만 비우량 고객에 대한 어설픈 차별은 오히려 기업 이미지의 손상 및 브랜드 관리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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