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과 소니의 부활이 의미하는 것들

머니투데이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2022.01.0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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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의 컬처 리포트]‘콘텐츠+플랫폼’ 집중하는 소니, K컬처 주목해야

▲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김동하 한성대학교 자율교양학부 교수


2021년 극장가의 최대 히트작은 소니픽처스의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Spider-Man: No Way Home)>으로 결정됐다.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 <모가디슈>는 물론 <블랙위도우>, <샹치>, <이터널스> 등 쟁쟁한 마블의 영화들을 모두 제쳤다.

연말 세계 1, 2위 엔터테인먼트 그룹 디즈니와 워너미디어가 배급하는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와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개봉했지만, 아랑곳없이 1위를 지키며 2022년 벽두까지 흥행을 이어갈 태세다.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해외 박스오피스에서도 같은 시기 1위를 차지한 걸 보면, 2021년 연말 세계 극장가는 <스파이더맨> 천하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일본 소니그룹이 메인으로 제작, 배급하는 영화다. 스파이더맨은 미국 마블코믹스의 캐릭터이자, 마블스튜디오와 영화를 공동제작하고 있지만, 소니가 1999년부터 영화판권을 소유한 대표적 캐릭터다. 메인 제작사는 컬럼비아픽처스를 거느린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이며, 배급 역시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가 직접 하고 있다.
스파이더맨과 소니의 부활이 의미하는 것들
<스파이더맨>의 흥행은 ‘몰락한 왕조’로 불리던 소니그룹의 부활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소니는 IT분야에서 한국에 크게 밀렸지만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한국의 위상에 위협이 될 만한 아성을 다시금 구축해나가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20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으며 애니메이션 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쓴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도 소니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애니플렉스의 작품이다.

소니는 이미 게임과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수직계열화’를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고, 주춤하던 영화사업 부문에서도 다양한 OTT와의 결합으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개봉 첫 주 만에 제작비를 웃도는 매출을 올리며 히트를 친 <스파이더맨> 시리즈 파이널의 성공은 순풍의 돛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의 산업 지형과 주요 기업들의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목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파이널作의 大흥행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톰 홀랜드’ 주연의 3세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자, 20년간 이어온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 총 8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개봉 첫날 63만 명으로 최근 유례없는 기록을 세우더니 이틀 만에 100만을 넘어섰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상영관이 10시 전에 문을 닫으면서 상영 회차가 크게 줄었지만 <스파이더맨>은 개봉 13일 만에 5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21년 1위 영화에 우뚝 섰다.

앞서 2002년부터 시작된 <스파이더맨 1, 2, 3>는 237만~494만 명까지 관객을 모았고, 2012년부터 시작된 두 번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400만 명대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2017년과 2019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은 각각 726만 명과 80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2021년 크리스마스 연휴인 26일까지 관객 수는 482만5000여 명. 극장 외 디지털 판권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최종 극장 스코어와 상관없이 무난하게 <스파이더맨> 시리즈 최대 흥행작에 등극할 전망이다.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의 총제작비는 2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개봉 첫 주 미국에서만 2억6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개봉 11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9억 달러 가까운 매출을 거뒀다. 한국 극장에서의 매출만 같은 기간 500억원에 육박한다.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는 소니와 마블의 주도권 경쟁 탓에 여러 번 좌초될 뻔했었다. 실제 소니가 만들었던 스파이더맨 영화는 <아이언맨>, <어벤저스>와 같은 마블스튜디오 영화들에 비해 흥행도 저조한 편이었다. 하지만 시리즈 최종화에서 큰 히트를 치면서 향후 스파이더맨 영화제작에 있어서 소니의 협상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아울러 최종화에서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우주)’라는 여러 갈래로 세계관을 넓히는 데 성공하면서, 향후 마블의 멀티버스 내에서도 <스파이더맨>의 위상은 높아질 수 있다.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Spider-Man: No Way Home)>▲<스파이더맨: 노웨이 홈(Spider-Man: No Way Home)>
거미줄처럼 엮인 ‘스파이더맨’ IP의 역사
스파이더맨은 1962년 처음 등장한 마블코믹스의 만화 캐릭터다. 2018년 작고한 마블 명예회장 ‘스탠 리’가 직접 만들어낸 캐릭터 중 하나로 아이언맨과 함께 가장 아끼고 공을 들인 캐릭터라고 한다. 21세기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로 꼽히기 때문일까. 스파이더맨 지적재산권(IP) 역사는 거미줄처럼 복잡하다.

1980년대부터 마블이 경영난에 허덕이면서 스파이더맨 캐릭터의 영화화 권리는 1985년 매각됐고, 캐논, 21세기, 캐롤코 등 여러 영화사로 떠돌게 된다. 이 밖에도 MGM과 컬럼비아픽처스, 21세기 폭스 등 여러 기업이 스파이더맨 영화를 놓고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엄청난 규모의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 터미네이터와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이 영화화를 시도하기도 했고,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 톰 크루즈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스파이더맨 후보로 일찌감치 거론되기도 했다. 마블코믹스는 1989년 로널드 페럴먼에게 매각됐다가 1991년 상장했지만, 1996년 파산을 신청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결론적으로 1985년부터 팔렸던 스파이더맨의 영화화 판권은 숱한 손바뀜을 거쳐 1999년에야 비로소 소니가 소유하는 형태로 매듭이 지어졌다. 물론 마블코믹스는 스파이더맨의 상품기획(MD) 권리는 줄곧 가지고 있으며, 영화 역시 마블스튜디오가 공동제작사지만 말이다. 아울러 스파이더맨이 중심인 세계관 스파이더-버스(verse) 속에도, 베놈을 포함해 900개에 육박하는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스파이더맨과 소니의 부활이 의미하는 것들
소니, ‘게임-엔터테인먼트’로 부활의 날갯짓
‘워크맨, CD, 블루레이를 만들어낸 기업, 디지털카메라, 리튬이온 배터리의 선도기업’ 등 소니는 일본IT의 선구자이자 일본 가전제품 세계화의 상징과도 같은 기업이다.

하지만 소니의 IT신화는 한국의 삼성, LG 등에 밀려나면서 ‘옛 일’이 된 지 오래고, 역사에서도 잊혀지는 듯했다.
2000년 143조4412억원을 기록했던 소니 주가는 2003년 이른바 ‘소니 쇼크’로 불리는 주가 폭락을 기록하면서 20년간 20조원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21년이 지난 올해, 소니는 사상 최고 주가를 기록하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2021년 말 현재 시가총액은 약 184조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 2020년 매출액과 순이익도 92조원과 12조원으로 최대치로 올라섰다.

소니는 장기간에 걸친 폭넓은 구조조정을 통해 70%를 차지하던 전자사업의 비중을 크게 줄이면서 케미컬과 PC, TV, 배터리 사업부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전자가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던 지배구조도, 소니그룹이 게임, 영화, 음악, 금융, 반도체를 전자와 같이 평행하게 지배하는 구조로 개편했다. 그 결과 2020년 소니는 게임과 영화,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가 매출의 50%를 차지하는 그룹으로 변모했다. 매출 순위는 게임이 가장 많은 31%, 금융 28%, 전자 22%, 영화 음악 19% 순이다.

‘콘텐츠+커뮤니티’ 제국으로 확장하는 소니
소니의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소니의 게임 콘솔 ‘플레이스테이션(PS)’ 판매대수는 누적 5억 대를 넘었고, MS의 X박스와의 콘솔게임 분야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커뮤니티 전략’으로 ‘구독’ 모델을 확산시키고 있는 점이다. 연간 약 60달러를 내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유료 회원 수는 전 세계 5000만 명에 육박, MS X박스 구독자의 3배를 넘는다. 포트나이트 게임과 언리얼 엔진으로 유명한 에픽게임즈에도 지난해 2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에픽게임즈는 애플과 결제시스템을 놓고 전쟁을 치를 만큼, 탄탄하고 방대한 사용자 커뮤니티를 보유한 기업이다.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도 올해 <귀멸의 칼날>의 흥행과 함께 커뮤니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소니는 지난해 말 200개 이상 국가와 지역에 9000만 명에 달하는 이용자를 보유한 애니메이션 전문 OTT ‘크런치롤(Crunchyroll)’을 75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컬럼비아레코드와 RCA, 에픽레코드를 보유한 음악부문에서도 지난 2018년 세계 2위 EMI를 인수하면서 총 480만 곡의 저작권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비교적 부진했던 영화부문에서는 자체 플랫폼보다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스파이더맨, 베놈 등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수익화를 꾀하고 있다.

<스파이더맨>의 흥행과 ‘콘텐츠 기반의 플랫폼 기업’으로 부활한 소니. ‘강남스타일’,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 세계 최강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분명 기회이자 위협이 될 수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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