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먼저 인사말을 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김부겸 국무총리와 양당대표 등 내외빈들의 관례적인 인사말과 축사 동영상 등이 끝난 후 갑자기 다시 단상에 올라왔다. 미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인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처럼 대형스크린을 뒤에 두고 약 10분간 대중 연설을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재계 서열 3위 기업의 총수가 인사말 정도의 내용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따른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장시간 정치권 인사와 주한외국대사들, 그리고 재계 총수들 앞에서 TED식 강연을 한 것은 한국 기업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그는 자신의 캐리커쳐에 이어 실물 사진을 띄우면서 "아무래도 캐리커쳐보다는 실물이 낫지 않느냐"며 "사진이 제 자신이 본 저라면 캐리커쳐는 다른 사람들이 본 저이고, 우리 기업을 보는 시민들의 생각일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제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보는 자신이 다를 수 있음을 약간 희화된 캐리커쳐를 통해 설명해 나갔다.
최 회장은 국민들이 바로보는 기업에 대한 인식 설문 내용과 기업 스스로가 이를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국민들의 54%가 기업에 'B' 학점을 주고 있는데 기업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과거에는 기업이 '돈만' 벌면 됐다면, 이제는 '돈도' 버는 기업이 돼야 하는 시대적 변화가 왔다"는 점을 얘기하고, 기업들이 그동안 놓쳤던 노사문제나 환경, 안전 등에 대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가 기업이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실물사진과 같은 기업도 있음을 잊지 말아달라며 캐리커쳐와 실물의 간격을 줄이기 위한 소통플랫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이날 강연도 이런 소통의 한 방편이었다.

구 회장은 행사 시작 전에도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기업인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주변 경제계 인사들과 명함을 나누고 다가가서 인사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24년차 회장인 최 회장의 이날 강연은 이제 막 LS 그룹의 키를 쥔 그에게는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의 TED 강연을 신중하게 관찰하는 모습에서 이를 읽을 수 있었다.
최 회장의 이날 신년인사회는 기업이 변해야 산다는 것을 직접 나서 연초부터 이야기했다는 측면에서 재계에선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1962년부터 대한상의 주최로 열리는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주요 기업인과 정부 각료, 국회의원 및 주한 외교사절, 사회단체·학계 대표 등이 대거 참석하는 경제계 최대 신년행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