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차 최태원 회장이 구자은 신임회장에게 전한 이야기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2.01.0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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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4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시대변화에 따른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4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시대변화에 따른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매년 초 대통령(최근 몇년은 불참)과 국내외 정재계 인사 등 1000여명이 참석했던 대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가 달라졌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지만 내외빈 인사와 신년 인사 영상·공연을 보고 악수하고 끝내던 방식에서 탈피했다.

4일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먼저 인사말을 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김부겸 국무총리와 양당대표 등 내외빈들의 관례적인 인사말과 축사 동영상 등이 끝난 후 갑자기 다시 단상에 올라왔다. 미국의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인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처럼 대형스크린을 뒤에 두고 약 10분간 대중 연설을 위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재계 서열 3위 기업의 총수가 인사말 정도의 내용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따른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장시간 정치권 인사와 주한외국대사들, 그리고 재계 총수들 앞에서 TED식 강연을 한 것은 한국 기업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자리에는 김 총리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대표 등 양당 대표는 물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다른 기업 총수들까지 자리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4일 신년인사회에서 자신의 캐리커쳐와 사진을 비교하며 실제 자신과 타인이 보는 자신의 차이를 설명했다. 왼쪽은 하카소로 불리는 개그맨 하준수가 그린 최 회장의 캐리커쳐./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4일 신년인사회에서 자신의 캐리커쳐와 사진을 비교하며 실제 자신과 타인이 보는 자신의 차이를 설명했다. 왼쪽은 하카소로 불리는 개그맨 하준수가 그린 최 회장의 캐리커쳐./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이 자리에서 최회장은 강연 초반 모 개그맨이 그렸다는 자신의 캐리커쳐를 화면에 띄우고 스스로를 소재화하면서까지 좌중의 시선을 잡았다.

그는 자신의 캐리커쳐에 이어 실물 사진을 띄우면서 "아무래도 캐리커쳐보다는 실물이 낫지 않느냐"며 "사진이 제 자신이 본 저라면 캐리커쳐는 다른 사람들이 본 저이고, 우리 기업을 보는 시민들의 생각일 수 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제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 보는 자신이 다를 수 있음을 약간 희화된 캐리커쳐를 통해 설명해 나갔다.


최 회장은 국민들이 바로보는 기업에 대한 인식 설문 내용과 기업 스스로가 이를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가 분명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국민들의 54%가 기업에 'B' 학점을 주고 있는데 기업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그는 "과거에는 기업이 '돈만' 벌면 됐다면, 이제는 '돈도' 버는 기업이 돼야 하는 시대적 변화가 왔다"는 점을 얘기하고, 기업들이 그동안 놓쳤던 노사문제나 환경, 안전 등에 대해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가 기업이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실물사진과 같은 기업도 있음을 잊지 말아달라며 캐리커쳐와 실물의 간격을 줄이기 위한 소통플랫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이날 강연도 이런 소통의 한 방편이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4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시대변화에 따른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4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시대변화에 따른 기업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이런 모습에 앤드류 헤럽 주한미국대사관 대사관차석대행이나 제임스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주한외국계대사들과 외국계 기업인들도 진지하게 지켜보고 박수를 보냈다. 지난 3일 LS 그룹 회장에 취임한 후 이날 처음 대외 활동에 나선 구자은 회장도 최 회장의 강연을 유심히 지켜봤다.

구 회장은 행사 시작 전에도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기업인들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주변 경제계 인사들과 명함을 나누고 다가가서 인사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

24년차 회장인 최 회장의 이날 강연은 이제 막 LS 그룹의 키를 쥔 그에게는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의 TED 강연을 신중하게 관찰하는 모습에서 이를 읽을 수 있었다.

최 회장의 이날 신년인사회는 기업이 변해야 산다는 것을 직접 나서 연초부터 이야기했다는 측면에서 재계에선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편 1962년부터 대한상의 주최로 열리는 '경제계 신년인사회'는 주요 기업인과 정부 각료, 국회의원 및 주한 외교사절, 사회단체·학계 대표 등이 대거 참석하는 경제계 최대 신년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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