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자 없이 배달 못하는 배달로봇"…반쪽 규제특례에 "시장 뺏길라"

머니투데이 고석용 기자 2022.01.02 07:30
글자크기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실외 자율주행 배달 서비스 시범운영을 앞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세븐일레븐 서초아이파크점에서 배달로봇 '뉴비'를 개발한 뉴빌리티 직원이 배달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편의점 세븐일레븐의 실외 자율주행 배달 서비스 시범운영을 앞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세븐일레븐 서초아이파크점에서 배달로봇 '뉴비'를 개발한 뉴빌리티 직원이 배달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운영하는 A사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인도주행을 허가받았지만 서비스를 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로봇이 이동할 때마다 1대당 1명의 직원이 로봇의 주변에 있어야만 한다는 특례 조건 때문이다. 사람이 걷는 5~6km/h 속도 수준으로 이동하지만 아직 로봇만의 단독주행은 허용되지 않았다. A사는 5년 전부터 자율주행 배달로봇 법제화와 함께 기술력을 쌓아온 외국계 기업이 언제 국내시장에 진입할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개발·제조하는 스타트업 업계가 더딘 규제완화로 시름하고 있다. 2019년부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자율주행 배달로봇의 통행 관련 특례를 부여하기 시작했지만 허용된 특례 내용이 업계 눈높이에는 맞지 않아서다. 정부는 2025년까지 자율주행 배달로봇 관련법을 정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국이 2016년부터 배달로봇을 법제화한 데 비하면 시기가 10여년이나 늦다는 지적이 나온다.



50조 자율주행 배달로봇 시장…규제샌드박스로 겨우 통행허용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활용한 배송시장은 온라인 상거래 활성화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소비 증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배송의 마지막 구간을 뜻하는 '라스트마일' 배송에 로봇활용이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럭스리서치는 자율주행 기반 라스트마일 배송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480억달러(5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경제포럼(WEF)도 탄소배출량 감소,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자율주행 배달로봇 도입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뉴빌리티, 로보티즈, 언맨드솔루션, 배달의민족 등이 시장 공략에 뛰어들었다. 다만 국내는 자율주행 배달로봇을 이용한 라스트마일 배송이 불법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자율주행 배송로봇을 차로 분류해 인도 통행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서다. 공원녹지법도 30kg 이상 배달로봇의 공원 내 통행을 불허하고 있다.



이에 관련 스타트업들은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한시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019년 12월부터 이달까지 관련 특례를 받은 기업·기관은 14개다. 특례를 받은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서비스 시행 전 코스를 확정하고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 관계부처 담당자들의 실사를 통과하면 특례가 부여된다"고 말했다.

'현장요원 동행'·'관할청 허가'…부대조건에 반쪽 된 샌드박스
"동행자 없이 배달 못하는 배달로봇"…반쪽 규제특례에 "시장 뺏길라"
문제는 특례가 업계의 요구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율주행 배달로봇 주행 시 현장요원이 항상 동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대표적이다. 규제샌드박스를 통한 특례의 부가조건에는 '현장요원 운전자'가 명시돼 있어 특례를 부여받은 기간 내내 현장요원이 함께해야 한다. 여기에 배달로봇이 보행자와 부딪히기라도 하면 피해규모와 관계없이 '자동차가 도로를 침범해 일으킨 사고'로 분류돼 현장요원에 대한 형사처벌도 이뤄질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 배달로봇은 주행속도가 7km/h 이하로 보행자와 비슷하고 크기·무게·모양은 보행자와 부딪혀도 크게 다치지 않게 설계돼 있다"며 "그럼에도 실증서비스를 할 때마다 직원을 동행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한강공원이나 여의도공원 등 공원 배달도 특례는 부여됐지만 활용하는 게 쉽지 않다. 해당 특례는 한강공원관리사무소 등 도시공원 관할청과 협의하에 허용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관할청들이 통행 허용에 소극적이어서다. 업계는 "규제특례를 받아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2025년까지 법제화"…업계 "그 사이 시장잠식 노심초사"
정부도 업계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4월 관계부처합동 로봇산업 규제혁신 로드맵을 통해 2025년까지 보행속도로 주행하는 자율주행 배달로봇의 보도 통행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미 일부 주가 2016년부터 규제특례를 넘어 보도통행을 법으로 허용한 것과 비교하면 10여년이 뒤처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사이 아마존, 알리바바, 뉴로 등 해외 빅테크 기업들은 현지에서 자율주행 관련 데이터를 쌓아가며 기술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구글로 불리는 얀덱스는 한국법인을 설립하면서 국내 자율주행 배달로봇시장 공략 움직임을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업계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해외에서 기술력을 쌓은 뒤 국내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게자는 "해외에서 기술력을 쌓은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내 스타트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샌드박스 등 규제특례는 물론 법제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로보티즈의 실외 자율주행 로봇 ‘일개미’가 1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직장인들이 주문한 점심 식사를 배달하고 있다./사진=뉴스1로보티즈의 실외 자율주행 로봇 ‘일개미’가 1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직장인들이 주문한 점심 식사를 배달하고 있다./사진=뉴스1
[머니투데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미디어 플랫폼 '유니콘팩토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