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시청자 설득 못한 극한의 설렘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1.12.28 10:27
글자크기
'극한데뷔 야생돌', 사진제공=MBC'극한데뷔 야생돌', 사진제공=MBC


Mnet을 시작으로 SBS, KBS2, JTBC 여러 방송사들이 아이돌 오디션에 집중하던 때가 있다. 이때 MBC도 '언더나인틴'(2018)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열풍에 가세했다. 허나 당시 줄줄이 방영됐던 Mnet의 후발 프로그램들은 하나같이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새로울 것 없이 기존의 것을 답사한 기시감이 대중의 흥미를 이끌지 못했던 탓이다.

2019년 Mnet '프로듀스' 시리즈가 조작 사태로 영원히 퇴출된 후에는, 아이돌 오디션 자체가 침체기에 맞닥뜨렸다. 조작 사태를 비롯해 JTBC '믹스나인'의 최종 선발 인원 데뷔 불발 등의 부정 이슈가 컸기 때문이다. 허나 아이돌 오디션의 퇴보와 달리 K-팝 시장은 계속해서 진일보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아이돌 시장의 생리다. 이는 오디션도 같다. 위험은 크지만, 성공한다면 엄청난 가치를 창출한다. 아이오아이 ,워너원, 아이즈원 등이 방송사에 벌어다 준 수익은 중기업급이다. 2년 동안의 침체기는 단순히 타이밍을 엿본 것에 불과했다.



드디어 올해 SBS와 Mnet이 '라우드'와 '걸스플래닛999'를 방영하며 아이돌 오디션을 재개했다. 그리고 이들처럼 타이밍 엿본 또 다른 방송사 MBC는 무려 두 편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내놨다. 보이그룹을 뽑는 '극한데뷔 야생돌'과 걸그룹을 뽑는 '방과후 설렘'이다. 특히 MBC는 지난 과오의 반전 도모를 위해 콘셉트의 유니크함으로 새롭게 승부수를 띄웠다. 기시감을 상쇄한 독특한 콘셉팅으로 말이다.

'극한데뷔 야생돌', 사진제공=MBC'극한데뷔 야생돌', 사진제공=MBC


이름만으로 퍽 신선한 충격을 준 '극한데뷔 야생돌'은 정말 야생을 배경으로 연습생들의 치열한 서바이벌을 그렸다. 참가자들은 거울이 놓인 연습실이 아닌 흙에서 나뒹굴고, 잘 꾸며진 세트장 대신 자연을 배경 삼아 무대를 펼쳤다. 아이돌 오디션에 군대 예능 식의 극한 상황을 녹여 매운맛의 강도를 높인 전략이었다. 연출을 맡은 최민근 PD가 MBC '진짜 사나이'의 연출자였다는 점만으로 이 프로그램의 성질을 알 수 있다.

허나 어디까지나 아이돌 멤버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야외에서 팔굽혀펴기를 하고 나무를 옮기며 악착을 떠는 모습들은 대체 뭔 의미인가 싶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청자들도 설득하지 못하며 처참한 마지막을 맞이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조건에 통나무를 거뜬히 옮겨내는 강철 체력 따윈 필요없다. 이를 보여주는 과정도 당연히 출연진들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아이돌 주소비층인 Z세대가 군대 식의 악다구니를 보고 매력을 느낄 리가 만무하다. '걸스플래닛999'가 소아청소년정신과 상담의와 정기 상담을 진행했던 것에 빈해, 정신건강을 중요시하는 시대 감성 또한 배반한다. 그렇게 초반 2%대였던 시청률은 마지막에 이르러 집계조차 어려운 0%대로 추락했다.

'방과후 설렘', 사진출처=MBC 방송화면'방과후 설렘', 사진출처=MBC 방송화면

'극한데뷔 야생돌'의 끝무렵에 '방과후 설렘'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방과후 설렘'은 본편을 방송하기 전 프리퀄로 짧게 '오은영의 등교전 망설임' 4부작을 편성했다. '걸스플래닛999'와 마찬가지로 출연진의 심리적 건강을 책임진다는 취지였다. 여기에 오은영 박사라는 방송가의 가장 핫한 인물을 데려다가, 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긍정적 방향의 화제성을 모았다. 허나 본편에 돌입하자 갑자기 매운맛을 표방하고 나선 제작진은 아이러니한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방과후 설렘' 출연진은 평균나이가 어리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학년별 대항으로 경연을 치르는데, 4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은 미성년자다. 그중 최연소 참가자는 12살로, 1학년 평균나이가 13세다. 제작진이 매운맛을 표방하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은 이유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대놓고 "심사위원들의 냉정한 평가를 더해 매운맛 가득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만날 예정"이라며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청소년기에 마주하는 어른의 무서운 얼굴은, 체벌과 같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긍정적 방향으로 해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선생들은 이 같은 역할에 역행하고 있다. 학년별 대항에서 꼭 이겨야 한다며 아이들을 압박하거나, 상처가 되는 직설적인 어법도 서슴치 않는다. 그렇게 '방과후 설렘'은 아이들에게 긍정보다 투쟁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보여주는 아이들의 공격성은 스트레스를 운반한 부작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학년별 기싸움을 두고 "일진놀이를 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 시청자 반응이 바로 이때문이다. 물론 서바이벌이기에 치열한 경쟁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를 부각하려 했으면 너무 어린나이의 출연진은 배제했어야 한다.

'방과후 설렘', 사진출처=MBC 방송화면'방과후 설렘', 사진출처=MBC 방송화면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방과후 설렘' 출연진의 앳된 얼굴은 응원은 부르지만 매력을 느끼기가 어렵다. 이는 출중함을 갖춘 출연진의 실력에 비해, 화제성을 유인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아이돌 오디션의 흥행 당락은 결국 출연진의 매력으로 결정된다. '방과후 설렘'엔 전소미 강다니엘 장원영으로 이어진 오디션 스타의 얼굴이 부재한다. TV화제성 분석 기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 매주 발표하는 출연자 화제성 부문에서도 참가자 중 단 한명의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시청률도 1%대를 고전 중이다.

MBC는 결과적으로 두 오디션 프로그램 흥행에 참패했다. 더욱이 아이돌 오디션은 방송이 끝난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최종 선발 인원을 아이돌로 데뷔 시켜 추후 활동까지 이행해야 한다. 지금 MBC는 매니지먼트사로서 초기 능력을 상실했다. 아직 방영분이 여럿 남아있는 '방과후 설렘'도 회생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땀흘리며 분투한 참가자들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그저 약속한 것을 이행하는 어른의 책임을 다하길 바랄 따름이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