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강화 논란 법정으로…'실미도' '그때그사람들''김광석'은 어땠나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1.12.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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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포스터/사진제공=JTBC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포스터/사진제공=JTBC


JTBC 드라마 '설강화'가 방영금지 갈림길에 섰다. 역사를 왜곡했다며 한 청년단체가 법원에 방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방영금지가 안 될 것'이라는 예상이 주를 이룬다. '역사 왜곡'의 명확한 근거를 찾기 어렵고 '표현의 자유'를 위해 창작물에 한해선 어느 정도 각색도 허용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도 종종 의견 갈리는데…판사가 '역사 왜곡' 판단하긴 어려워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 포스터.2003년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 포스터.
청년단체 세계시민선언은 22일 법원에 설강화 방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설강화는 1987년 6월 항쟁을 소재로 삼고서 '남파 간첩'(정해인 분)을 등장시켜 과거에 민주화 운동가들이 받은 '간첩 누명'이 일부 사실인 양 묘사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창작물이라도 역사를 왜곡했다면 방영이 금지될 수 있다. 2004년 서울고법은 영화 '실미도' 상영금지 신청 사건을 심리하며 "영화가 역사를 왜곡해 누군가의 인격권을 침해하면 금지처분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실미도'가 부대원을 전부 범죄자로 묘사해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관건은 역사 왜곡의 '확실한 근거'를 찾는 데 있다. 당시 법원은 실미도 사건( 1971년)이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역사적 진실을 확인할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며 "창작과 예술의 자유 보호가 중시되는 사안"이라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일부 광고물 게시는 금지됐지만 상영금지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설강화 방영금지 신청도 "인용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역사 왜곡'의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작물 관련 분쟁을 많이 다룬 정동근 법무법인 조율 변호사는 "모두가 인정하는 역사적 사실이 있어야 역사가 왜곡됐는지 판단하지 않겠나"라며 "역사학자들도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판사가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 말처럼 설강화도 옹호론자가 있다. 이지성 작가는 "간첩이 운동권 학생들을 교육한 건 팩트"라고 글을 썼다. 비판받지만 이런 의견 차는 법원의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정 변호사는 "비전문가들도 '이건 왜곡'이라 할 정도로 사실과 벗어나야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실존 인물 정반대로 묘사해도..."역사 사실 각색할 자유 있다"
이설아 세계시민선언 대표는 22일 오후 2시쯤 서울서부지법을 찾아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사진=양윤우 기자이설아 세계시민선언 대표는 22일 오후 2시쯤 서울서부지법을 찾아 JTBC 토일드라마 '설강화'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사진=양윤우 기자
역사적 사실 각색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될 수 있다. 물리학자 이휘소가 평소에 핵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는 것은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소설가 김진명은 1993년 출간된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이휘소를 핵무기를 개발하는 정반대의 인물로 묘사한다. 정 변호사는 "사실을 어느 정도 각색할 창작자의 자유도 인정된다"고 말했다.

법원이 2004년 '실미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심리할 때도 "영화를 찍을 때 흥행과 감동을 고양시키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각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용인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광석 타살설 등을 다룬 영화 '김광석'도 법원은 "과장된 면이 있지만 사실 관계 판단을 관객에 맡겼다"며 상영금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각색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창작물이라도 실존 인물의 명예를 훼손하면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2005년 서울중앙지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블랙코미디 영화 '그때 그 사람'에 "처음과 마지막 3곳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라"고 결정했다. 해당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을 문란하고 일본어를 자주 쓰는 인물로 묘사했다. 법원은 "영화의 일부분이 모델이 된 인물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설강화가 누군가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볼지는 미지수다. 정 변호사는 "통계적으로 방영(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100건 중 인용되는 건 1~2건밖에 안된다"며 "결론만 말하면 방영금지가 인용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설강화를 둘러싼 논란은 점차 거세진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며 "무슨 권리로 그 권리를 침해해도 된다고 믿는가"라 물었다. 반대로 이현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최근 MBC라디오에서 "(민주화 항쟁 당시 고문) 피해자들에 고통을 줬다"고 말했다.

JTBC는 설강화 방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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