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원자력硏, 경주 분원 '설계설명서' 유출…내부조사 착수

머니투데이 김인한 기자 2021.12.2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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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장 A씨 건축업계 지인에 넘겨
"내부 조사 착수, 후속 조치 예정"

총 145페이지에 달하는 '혁신원자력연구단지 구축공사 설계설명서'가 한국원자력연구원 외부로 유출됐다. / 사진=김인한 기자총 145페이지에 달하는 '혁신원자력연구단지 구축공사 설계설명서'가 한국원자력연구원 외부로 유출됐다. / 사진=김인한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서장 한 명이 경주시 감포읍에 조성 중인 '혁신원자력연구단지 구축공사 설계설명서'를 외부에 유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문건은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작성한 설계설명서로, 향후 당사자의 유출 경위가 파악되면 후속 조치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원자력연은 지난 6월 북한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커의 해킹사건이 드러난 데 이어 불과 반년만에 또다시 유출사고가 불거짐에 따라 허술한 보안체계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20일 원자력연에 따르면, 부서장 A씨가 내부 문건을 유출한 정황을 파악하고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 A씨 진술과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연구원은 원전·핵원료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국책연구기관이다.



A씨는 원자력연이 경주시 감포읍에 구축 중인 '혁신원자력연구단지 구축공사 설계설명서'를 지난 8월 말 건축업계 지인에게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원자력연에 따르면 A씨는 지인에게 단순 참고용으로 문건을 넘겼다고 한다.

총 145페이지 분량의 설계설명서에는 기계·소방·전기·통신·토목·환경 등 원자력 설비 시스템 계획이 모두 담겼다. 다만 원자력발전소 핵심 시설인 실험용 원자로 설계설명서와 같은 S급 핵심자료는 포함되지 않았다.



원자력 설비 시스템 건설계획 모두 담겨..원자로 시설 콘크리트 강도, 내구연한 구조계획 등 민감설계도 포함

원자력연은 지난 7월 경주시 감포읍 일원에 220만㎡(67만평) 규모의 분원 착공을 시작했다. 대전 본원 142만㎡(43만평)보다 1.5배 큰 규모로 약 6500억원이 투입된다. 경주 분원에는 2025년까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미래 혁신형 원자로를 개발할 첨단연구동을 포함, 16개 인프라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5월 포스코건설·대우건설 등과 3파전 끝에 '혁신원자력연구단지' 구축 사업을 따냈다. 지난해 10월 원자력연은 나라장터를 통해 공사 입찰공고를 내고 두달 뒤 입찰에 참여할 기업을 대상으로 현장 상세설명을 진행했다.

당시 공사 세부내용이 담긴 '입찰안내서는 현장 설명 시 열람 및 배부 받을 수 있다'고 명시했다. 입찰 참여 기업에게만 공개하는 보안 문서인 셈이다.


그러나 A씨는 원자력연 지침에 따라 현대건설이 작성한 보안성 문서를 외부 유출했다. 원자력연은 A씨가 문건을 넘긴 건 입찰 관련한 내용과는 무관하고, 지인을 위한 단순 공유용이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문건에는 첨단연구행정시설과 원자력시설, 오폐수처리시설 등 위치가 담겨있다. 또 원자로 시설에 대한 콘크리트 강도나 내구연한을 고려한 구조계획 등 민감한 기술 설계도 포함됐다. 원자력연은 가급(최상위) 국가 보안시설로 내부 문건이 밖으로 나갈 땐 엄격한 통제가 이뤄진다.

원자력연 관계자는 "A씨 진술과 사실관계를 파악해 조사에 착수했다"면서 "보안성이나 자료 경중을 떠나 내부 자료가 외부로 유출된 점에 대해 A씨도 불찰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후속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구축공사 설계설명서인 점을 감안하면 보안성 문제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혁신원자력연구단지 시공사인 현대건설 조차 당혹감을 내비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내부 설계설명서는 지적재산권이기 때문에 외부로 유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건축 기술에 대한 보안 내용이 담겨 있어서 유출이 어디로 됐느냐에 따라 문제 경중이 달라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도 "국가 보안시설 자료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이기 때문에 보안성 문제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자체 조사를 통해 보안성과 외부 유출에 대한 경중을 파악해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6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커 조직인 '킴수키'(Kimsuky)로 추정되는 미승인 IP 13개가 원자력연 내부 시스템에 무단 접속했다고 밝혔다. 원자력연 내부시스템이 해커에 뚫린 것은 처음으로 국가정보원이 유출정보 등 피해규모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며, 정부는 이후 랜섬웨어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왼쪽은 첨단연구행정시설과 원자력시설, 오폐수처리시설 등 보안 구역 위치가 나타난 사진. 오른쪽은 원자로 시설에 대한 콘크리트 강도나 내구 연한을 고려한 구조 계획 등이 담겨 있다. / 사진=김인한 기자왼쪽은 첨단연구행정시설과 원자력시설, 오폐수처리시설 등 보안 구역 위치가 나타난 사진. 오른쪽은 원자로 시설에 대한 콘크리트 강도나 내구 연한을 고려한 구조 계획 등이 담겨 있다. / 사진=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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