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사진제공=소니픽쳐스코리아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19년간 이어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충실한 팬이 아니었다고 해도, 소니와 마블의 세계관에 따라 애정도가 달랐다고 해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본다면 스파이더맨 시리즈 전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솟아난다. 이번 영화는 전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 마지막에 빌런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할)가 스파이더맨의 정체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장면과 곧바로 이어진다. 자경단원으로 몰린 스파이더맨이 닥터 스트레인지를 찾아가는 도입부까지만 해도 철없는 ‘소년이 마법을 쓰는 ‘박사님’에게 철없는 부탁을 하는 간편한 설정이 아닌가 싶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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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빌런들이 총출동한다는 전략은 두 가지 의도로 파악할 수 있다. 소니가 제작한 스파이더맨 시리즈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극 중 피터 파커의 나이대인 2000년대생 관객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것. 과거 빌런들의 등장은 결과적으로 두 관객층을 모두 사로잡는다. '스파이더맨 1'에 등장한 빌런 그린 고블린, '스파이더맨 2'의 닥터 옥토퍼스, '스파이더맨 3'의 샌드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의 리저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일렉트로 등 한자리에 모인 각양각색 빌런 캐릭터들의 능력치가 한데 모여 가공할 위력과 볼거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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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이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에서 최고 순위에 오를 만한 합당한 이유와 기존 히어로 영화와 다른 길을 택해 얻는 성취 중 하나가 빌런의 효용에 있다. 익히 알려진 안전한 캐릭터들을 불러 모아 힘자랑만 하는 빌런 올스타전에 그쳤다면 게으르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을 거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실수로 다른 차원에서 온 빌런들을 돌려보내지 못하고 위험천만한 교화 작전에 돌입한다. 엉뚱하다 싶은데 호기심이 생긴다. 스파이더맨이 그들을 ‘치료’한다고 표현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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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시리즈 팬들을 위해 차린 상찬에 역대 빌런들의 등장이 에피타이저라면, 역대 스파이더맨들의 재등판은 초특급 요리다. 제작사와 감독, 캐스팅이 달라 불가능처럼 여겨졌던 일이 현실화 되었기에 놀라움을 안긴다. 개봉 전날인 12월 14일에 열린 언론시사회에서는 1대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와 2대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가 영화에 등장하자 객석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멀티버스라는 기막힌 플롯에 착 붙는 세 스파이더맨의 조우는 영화의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팀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스파이더맨으로 살면서 겪는 고충을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는 장면은 후반부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에서 펼쳐지는 협공 장면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성격, 수트, 사연까지 각 스파이더맨 캐릭터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 입맛 까다로운 관객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유머, 감동, 환호 코드를 쏘아대는 웹슈터 솜씨가 여간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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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스파이더맨뿐만 아니라 시리즈, 히어로 영화의 중요한 본보기가 될 거라는 사실이다. 20년 가까이 시리즈와 함께 성장한 팬들을 감격으로 몰아넣기가 한 번도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그 어려운 걸 몇 번이나 해낸다. 세계관과 제작 배경, 기술력보다 탄탄한 친근함은 모든 장벽을 허물만큼 강한 힘을 갖는다. 익숙함에서 새로움을 술술 뽑아내니 보는 이들은 신이 난다. 히어로의 고뇌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시간과 공간의 씨줄과 날줄로 촘촘하게 엮여 러닝타임 148분이 명작의 기운으로 팽팽하다. 여름에 개봉한 1,2편과 달리,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겨울 극장가에 도착한 스파이더맨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까지 담아 연말 기대작에도 한껏 부응한다. 내친김에 올 연말은 8편의 스파이더맨 실사 영화 연대기의 거미줄에 단단히 붙들려 보는 건 어떨까. 큰 힘을 올바르게 쓸 줄 아는 누군가가 현실의 다정한 이웃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