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가평石' 찾은 文대통령 "위대한 유산"...왜?

머니투데이 시드니(호주)=정진우 기자 2021.12.15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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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호주 국빈방문 리뷰]⑤한국전쟁 참전용사 직접 챙긴 文대통령

[캔버라=뉴시스] 전진환 기자 =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3일 호주 캔버라 전쟁기념관에서 앤 베니 전쟁기념관장 대리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21.12.13.[캔버라=뉴시스] 전진환 기자 =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3일 호주 캔버라 전쟁기념관에서 앤 베니 전쟁기념관장 대리의 설명을 듣고 있다. 2021.12.13.


# 문재인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 일정 중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지난 13일(현지시간)캔버라에 있는 전쟁기념관 방문이었다. 호주는 자국 영토에서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한번도 하지 않은 나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전쟁기념관이 있었다. 호주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주요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을 기리는 곳이다. 전쟁기념관 내부엔 전쟁이 일어난 나라별로 전사자 명단이 적혀 있었다. 그곳엔 'KOREA'도 있었다.

문 대통령의 이번 국빈방문은 한-호주 수교 60주년이 계기로 이뤄졌는데 두 국가는 사실 수교 10년 전 혈맹을 맺은 형제의 나라다. 호주는 1950년 6·25전쟁 당시 22개 참전국 중 5번째(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순)로 많은 인원(1만7164명)을 파병했고 육군과 해군, 공군 모두 참전했다. 참전용사 중 340명이 전사했고 1216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6·25 전쟁은 호주가 유엔에 가입한 이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처음 참전했던 전쟁이다.



특히 올해는 호주군이 활약했던 가평전투 70주년을 맞는 해다. 가평전투는 1951년 4월23~25일에 감행된 중공군의 공세로 중공군 제20군이 가평 방면으로 돌파구를 확대하고 있을 때 영연방 제27여단이 가평천 일대에서 5배나 많은 중공군을 필사적으로 막아낸 전투를 말한다. 이때 중공군이 북한강을 넘어서지 못하게 함으로써 국군과 유엔군이 새로운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얻게 됐다.

가평전투 당시 호주 제3대대는 중공군 남진을 죽둔리 일대에서 저지하며 가평-청평 도로를 장악하여 경춘도로를 차단하려는 적의 기도를 저지했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대대는 전사 31명, 부상 58명, 포로 3명의 병력 손실이 발생했다. 한국과 호주는 지난 70여년간 가평전투에서 헌신한 참전용사들을 기리고 가평전투를 미래세대에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전쟁기념관 방문도 이를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와 함께 이날 오후 전쟁기념관을 찾아 무명용사묘에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전몰장병 명단을 벽에 새긴 복도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전 전몰장병 명단이 적힌 부분에서 멈추고 명단을 천천히 들여다보다 다시 한번 헌화했다.
[캔버라=뉴시스] 전진환 기자 =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3일 호주 캔버라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스미스 기획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2021.12.13.[캔버라=뉴시스] 전진환 기자 =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3일 호주 캔버라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스미스 기획단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2021.12.13.
문 대통령 부부는 이어 인근의 한국전 참전기념비로 이동해 헌화한 뒤 관계자로부터 기념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념비 내부를 살폈다. 참전비 내부는 '평화'라는 한글 글귀와 호주 한국전 참전사가 기록돼 있으며 호주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싸운 가평전투를 기념해 가평군에서 가져온 '가평석'이 놓여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저녁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 참전용사 및 유가족들을 캔버라 시내 한 호텔로 초청해 만찬을 하면서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은 호주와 한국 모두의 위대한 유산이다. 대한민국은 해외 참전용사들을 끝까지 예우할 것"이라며 "보훈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제정된 '유엔참전용사법'을 통해 참전용사에 대한 지속적인 예우와 명예선양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며 "한국 정부는 '참전용사와 가족의 한국 방문', '현지 감사 행사' 등 다양한 국제 보훈사업에 더욱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마흔두 분의 호주 참전용사들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2019년 양국은 '유해발굴 MOU'를 체결하고 공동 조사와 발굴, 신원확인을 위해 협력해 왔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에도 2만여 명의 한국군 장병들이 동원돼 비무장지대에서 미수습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한 콜린 니콜라스 칸 장군을 비롯해 생존 참전용사 5명을 직접 모시고 이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여식에는 건강 상의 이유로 칸 장군 대신 조카손녀가 대리 수상했다.
[캔버라=뉴시스] 전진환 기자 =  호주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호주 캔버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및 유가족 초청 만찬에 참석해 이안 크로포드 제독과 대화하고 있다.  2021.12.13.[캔버라=뉴시스] 전진환 기자 = 호주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호주 캔버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용사 및 유가족 초청 만찬에 참석해 이안 크로포드 제독과 대화하고 있다. 2021.12.13.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다섯 분의 영웅과 1만7000여 참전용사들께 경의를 표한다. 영웅들의 용기와 헌신을 간직하고 기려온 유족들께도 깊은 위로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며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한 참전용사들의 인류애와 헌신은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번 만찬은 올해 한-호 수교 60주년, 가평전투 70주년을 맞아 호주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유가족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앞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 10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계기로 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문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며 문 대통령의 호주 방문을 거듭 요청한 바 있다.

이날 만찬에는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비롯해 피터 더튼(Peter Dutton) 국방장관, 앤드류 지(Andrew Gee) 보훈장관 등 호주 연방정부 관계자와 5명의 생존 참전용사와 유가족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We Heroes, 우리 영웅들'이란 주제 아래 △호주 군악대의 식전공연 △국민의례 △감사영상 시청 △대통령 말씀 △호주 국방장관 답사 △참전용사 건배제의 및 만찬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감사영상은 이날 만찬에 참석한 5명의 생존 참전용사들의 참전 소회가 담겨 의미를 더했다. 콜린 니콜라스 칸(Colin Nicholas Khan) 전 장군은 영상을 통해 "오늘날 한국이라는 나라를 만든 훌륭한 재건 과정에서 저는 작은 역할만 했을 뿐"이라며 "제가 한국의 성장에 작게나마 기여한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안 맥클린 크로포드(Ian Mclean Crawford) 전 제독은 건배제의에서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렇게 우리를 알아봐 주는 게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며 "한국전은 더 이상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캔버라를 비롯해 시드니, 골드코스트 등 호주 여러 도시에 한국전 참전비 건립을 위한 '가평석'을 지원하고 있다. 호주는 마을길과 공원, 다리 이름에 '가평' 지명을 붙이는 방식으로 한국전과 한국을 알리고 있고 주한 호주대사관은 매년 가평 중·고등학교에 1300여 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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