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 /사진=최부석 기자 my2eye@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는 25일 '삼성물산 부당합병 의혹'에 관련해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10명에 대한 23차 공판에서 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대표를 증인으로 소환해 변호인단 측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앞서 검찰은 이 사건 공소장에 "(이재용 측이) 상속세 마련 등을 위해 골드만삭스와 함께 삼성생명 지분 매각에 착수하여 인수자를 물색하던 중 워런 버핏과 논의하기로 했다"면서 "버크셔 해서웨이가 삼성전자 지분을 7~10년간 보유하며 삼성에 우호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하는 이면약정을 제안했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약정이 알려지면 금융위원회에서 삼성생명 분할 승인이 거부될 수 있어 이면 약정 사실을 비밀로 하고, 워런 버핏이 먼저 거래를 제안했다고 공표해 주기로 거래명분을 가장하는 비밀 약정도 함께 제안하였다"고 공소사실로 적시했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 나온 정 대표는 둘의 만남에서 가격 등 구체적 매각 조건이 논의되지 않았다고 검찰 공소내용과는 다소 결이 다른 취지로 답했다.
정 대표는 당시 버핏과의 매각 협의에 대해 "급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의 기초적인 방식이 전달됐으나 구체적 가격 조건은 제시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변호인단 질문에 "협상을 할 준비는 안 되어 있었다"고 답했다. 또 그는 "기업 인수합병을 하다보면 자산에 관심이 있더라도 처음에 만나서 서로 안맞으면 성사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일단 처음 만나서 하는 자리는 상견례 같은 분위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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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단의 증인신문 도중에는 당시 골드만삭스 관계자가 삼성그룹 이 부회장 측에게 버핏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과정에서 보낸 메일도 공개됐다. 버핏 회장을 '젠틀맨'이라고 칭한 이 메일에서는 "(버핏은)일대일 만남을 선호한다"며 "격식을 차리지 않는 '서로 알아가는' 대화를 진행할 것입니다.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대화이므로 협상이 진행되는 자리는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변호인단은 골드만삭스 본사의 존 S. 와인버그 부회장이 버핏 회장과 미리 접촉해 삼성생명 지분매각에 대해 언급한 뒤 얻어낸 반응을 담아낸 메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메일에는 버핏 회장 측에서 △삼성생명에 대해 익숙하고 관심이 있다 △100% 구매하길 바란다면서도 △시간을 두고 사고 싶다 △지분을 영구적으로 보유하기 바란다고 했다는 내용이 써 있었다.
"7~10년간 보유해주기로 이면 약정했다"는 검찰의 공소내용에는 들어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한편 정 대표는 이 부회장과 버핏 회장이 만남을 가졌지만, 이후 삼성생명 매각이 더 진행되는 일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좀 미스테리했다"면서 "(이 부회장과 버핏 회장의 만남 이후) 준비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나중에 관심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만남 이후 상황을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이 버핏 회장에게 지분 매각을 타진했던 이유에 대해 정 대표는 "워런 버핏이 당시 IT 관련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다. 산업 회사들에 투자를 많이 했는데, (삼성에) 투자하면 여러가지 브랜드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또 변호인단이 "상견례 정도 하고 끝나버린 내용을 (시장에)알리면 혼선을 주는 게 아니냐"고 묻자 정 대표는 "상견례 했는데 청첩장 돌리는 꼴"이라며 "보통 계약과 협상을 다 하고 이사회 결의를 할 때쯤 발표를 한다"고 답했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삼성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25/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