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 전각인(篆刻人)

머니투데이 유연수 에디터 2021.11.23 15:10
글자크기
전각가 김정민의 세계
사물은 비일상적인 세계에서 그 본질이 드러난다. 그 비일상성이 예술의 조건이다. 사물은 그것이 지닌 기능보다 그것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글(훈민정음)을 늘상 쓰고, 그리고, 말하고 있을 때는 그것이 한글이라는 사실이 특별할 게 없다. 그러나 그것이 갤러리로 나와 벽에 걸리면 특별해진다. 한글이라는 사물이 일상의 쓰임새를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우리의 의식에 '한글'이 등장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일상에서 드러나지 않는 사물의 본질을 보여준다.

불과 몇 십 년 전 까지만 해도 일상 속에 공기처럼 존재하던 수 많은 전통 문화들이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것들의 형체 일부는 우리 무의식 속에서 우리와 호흡을 주고받으며 이어져있다. 아래 사진은 고대의 상형문자인 전자(篆字)가 현대사회에서 우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일본 국립천문대가 2018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한 천문학 전용 슈퍼컴퓨터 '아테루이II'. 수천억 개 별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연산능력을 갖고 있다. 외장케이스를  전자(篆字)로 디자인하여 138억 년 전의 우주를 소환하고, 미래를 구현하는 슈퍼컴퓨터 '아테루이II'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사진=NAOJ일본 국립천문대가 2018년부터 운용하기 시작한 천문학 전용 슈퍼컴퓨터 '아테루이II'. 수천억 개 별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연산능력을 갖고 있다. 외장케이스를 전자(篆字)로 디자인하여 138억 년 전의 우주를 소환하고, 미래를 구현하는 슈퍼컴퓨터 '아테루이II'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사진=NAOJ


전승(傳承)-2020 146×96cm 한지 및 혼합재료 2020. 한글은 전자(篆字)를 본뜬 것이다.  세종이 1443년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했을 때 '세종실록'은 이렇게 기록했다. "임금이 친히 언문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본뜬 것으로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가 됐다. 무릇 문자(한문)나 이어(俚語·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다. 글자는 간단한데도 쓰임이 무궁하니 훈민정음이라 불렀다." 작품 '전승'에 대해 작가 김정민은 전각을 '방촌(方寸)의 세계에 우주를 새기는 것'이라 정의한다. 수직, 수평, 원, 모, 각이 모두 들어가서 입체가 되고, 우주가 된다는 것이다. 전승(傳承)-2020 146×96cm 한지 및 혼합재료 2020. 한글은 전자(篆字)를 본뜬 것이다. 세종이 1443년 훈민정음 28자를 창제했을 때 '세종실록'은 이렇게 기록했다. "임금이 친히 언문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본뜬 것으로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가 됐다. 무릇 문자(한문)나 이어(俚語·우리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다. 글자는 간단한데도 쓰임이 무궁하니 훈민정음이라 불렀다." 작품 '전승'에 대해 작가 김정민은 전각을 '방촌(方寸)의 세계에 우주를 새기는 것'이라 정의한다. 수직, 수평, 원, 모, 각이 모두 들어가서 입체가 되고, 우주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천문과학자들과 전각가 김정민이 전자(篆子)로서 우주를 상징하려 한 까닭은 전자체(篆字體)가 갖는 추상성인 듯하다. 전서(篆書)는 추상적인 개념을 부호로 표현한 조형미와 함께 자연과 사물의 형태를 본뜬 상형성으로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서체이면서도, 위엄과 경건한 느낌을 갖게 하는 힘이 있어, 예로부터 제왕의 문자였으며, 제례나 제사와 같은 국가적 행사나 생과 사를 나누는 경계의 의식에서 사용되어 왔다.



전서(篆書)는 연이어 흘려 쓸 수 없는 대신, 획을 좁고 길게 늘이거나, 짧고 납작하게 만드는 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 전서(篆書)를 금석에 새겨서 찍는 전각(篆刻)이 예술로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예로부터 전각자는 서예의 기본은 물론, 다양한 서법과 서체에 대해 조예가 깊어야 하고, 거꾸로 쓴 문자(反書)의 형태를 간파할 수 있는 뛰어난 감각과, 돌을 다루는 조각기술 등을 모두 갖추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다. 전각작가들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시간여행자와 닮았다.

현대의 많은 전각작가들은 전통적인 전각기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디지털 시대에도 전각이 살아남을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현 시대의 시대성과 삶의 의식이 그대로 담보가 되는 내면적 표현에 뛰어난 이가 <사진2>의 작가 설초(雪艸) 김정민이다.
설초(雪艸) 김정민/사진=예술사업부 김경아 디자이너설초(雪艸) 김정민/사진=예술사업부 김경아 디자이너
김정민은 전각을 '문자로서 자신의 의상(意想)을 새기는 것'이라며, '기존 전통 전각예술의 인식은 방촌(方寸)의 세계에 작가의 우주관을 새긴다고 했다. 현대적 의미도 크게 다를 바는 아니지만 표현 방법이 다양해지고 폭넓어지면서 그 인식에도 변화가 있어 보인다. 기존의 방촌의 세계에서부터 현대 전각으로의 시각적 확대, 입체적 조형, 다른 미술 장르와의 융합 등은 그 의미의 확대도 같이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최근 자신의 생각을 응축하여 한지와 브론즈, 그 밖의 혼합재료들로 시경(詩經) 소아(小雅)편 녹명지십(鹿鳴之什) 제6편 '천보(天保)'시편을 입체조형 작품화하였다.

전각이 품고 있는 우주의 모습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김정민의 예술세계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묻고 감상을 나누었다. 2019년 한국미술문화상을 수상한바 있는 김정민 작가는 현재 수원대학교 특임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Q. 작가님의 전각에 대한 철학과 작품 <천보>를 소개해 주세요.
저는 "전각은 문자로서 자신의 의상(意想)을 새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 시대의 시대성과 삶의 의식이 그대로 담보가 되는 내면적 표현이 지금 전각창작의 산물입니다.
천명등(天命燈) 1  브론즈 및 혼합재료 50x50cm 2021천명등(天命燈) 1 브론즈 및 혼합재료 50x50cm 2021
이번에 제작한 '천명(天命)'과 '천명등(天命燈)'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실려 있는 녹명지십(鹿鳴之什)의 제6편인 '천보(天保)' 시의 내용을 작품화한 것입니다. '천보' 시는 천명사상과 인간자각의 내면화가 형성되던 서주시기에 소호(召虎)가 창작한 것입니다.


3년 전부터 관심을 갖게 된 '천보'시의 생명력의 원천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는, 결국 인간 삶의 존재와 가치는 주어진 천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의 산물이 이번의 '천명'과 '천명등'이 된 것입니다. '천보' 시를 내용으로 하고, 한 대 (漢代) 길상와당(吉祥瓦當)을 모티브로 하여 전각기법을 활용한 입체조형입니다.

'천보' 시에 내재된 하늘과 자연의 현상, 물상의 불변성, 영속성, 순환성의 이치를 담아 이 시대적 天命을 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전체 내용을 원형으로 구성하여 낮에는 해로써 밤에는 달로써 그 의미를 상징한 것입니다. 새김의 전각표현기법을 활용하고 탁본기법을 사용한 색채표현을 통해 전각의 구성미와 뜻, 전각의 고졸한 미감, 탁본의 미묘한 손맛 그리고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창출하고자 하였습니다.

Q. 한국에서 전각이 예술이 될 수 있었던 때는 언제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창의(創意) 3- 61x62.5cm 한지와 나무 및 혼합재료 2021창의(創意) 3- 61x62.5cm 한지와 나무 및 혼합재료 2021
인장은 관인과 사인으로 구분되며, 그 사용목적에 따라 실용성과 예술성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중국 고대로부터 실용에서 신표의 상징으로 사용되다가 장식용및 주술용으로 변화하면서 독자적 예술영역인 전각예술로 변천되어 왔습니다. 즉 폭넓은 의미의 인장에서 독립적인 예술적 의미의 전각은 중국 명대 문팽과 하진에 이르러 전각예술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한국역사에서 인장의 최초 기원은 고려 일연의 삼국유사 '단군고사'의 '수천부삼인개(授天符印三個)'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기록은 있지만 현존하는 인장의 흔적이 없고, 이후 낙랑설 또한 발굴된 봉니가 있으나 역사적 고증에 맞지 않아 논란이 많습니다. 고려시대는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에 인해 인장 사용의 예가 있고, 특히 사인을 사용했던 인장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실용적 차원을 넘어 독자적으로 하나의 예술 분야를 이루는 '전각'으로 뚜렷하게 인식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명대로부터 유입된 인장과 자료의 영향에 의해 전각의 전환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641년 중국 청나라에 압송되었던 김상헌이 4여년 만에 귀국하여 남양주에 '군옥소(群玉所)'라는 석실을 차린 계기로 전각을 새기고 완상하는 본격적인 전각예술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즉 17세기에 이르러 문인들을 중심으로 전각이 문화로서 수용되면서 전각의 표현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 상고(尙古)정신의 회복이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전각예술의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중국 인보(印譜)의 유입과 함께 조선의 다양한 전각가들이 출현하고 문인들의 전각이 확산되었습니다.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로부터 본격적인 전각예술로서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전각표현에 있어 다양한 자법 활용과 변화를 추구하는 도법, 사구인의 유행 등 및 다양한 인보가 만들어졌으며, 19세기의 본격적인 전각예술 발전의 충분한 이론과 기법상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한글인장의 경우, 실생활에서 사용된 구체적 시기는 1945년 8·15광복으로 한글이 국문으로서의 위상을 회복한 뒤, 1962년 4월로, 이때 관인의 한글전용화가 공식적으로 시행되었다. 1963년부터 한글 관인이 국새로 규정되고,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자체로 바뀌는 과정을 거쳤지만 관인의 구성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된 것은 2010년부터이다.

Q. 현대의 한중일 전각문화의 특징을 비교한다면?
현대의 한중일 전각문화는 같으면서도 다른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한중일의 현대 전각예술은 전통 문화의 함의를 담고 전통적인 방법의 형식과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이 시대에 맞는 독창적인 형태와 이미지, 구도 등을 통해 전각예술의 현대적인 미적 감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채롭고 풍부한 전각예술의 방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전각은 서예와 전각을 상호보완의 관계로 인식하며, 법고창신(法古昌新)을 목표로 하여 현 시대의 전통을 구축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즉 진ㆍ한대(秦 ,漢代)인장문화의 전통 계승과 이를 확장하는 문제에 대해 정신과 대상을 과거에만 두지 말고 현 시대,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서 그 정신과 대상이 활용되는 전각예술의 현대적 전통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의 전각문화는 크게 항주를 중심으로 한 전통 고수의 법고(法古)와 북경을 중심으로 한 창신(昌新)구현이 있습니다. 이들의 풍격은 중국 전통예술정신과 고전 자료에 대한 해석 및 인식의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현대에 이르러 그 표현기법은 인장에 한하지 않고 형상, 형태, 구도, 정신 등은 확대하여 펼쳐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중국 문화혁명(1966~1976) 이후 중국에서 서예와 전각 및 문자학에 대한 수많은 자료를 유입하면서 중국보다 더 많은 순수기초 자료를 풍부하게 갖추게 되었습니다. 잘 갖춰진 풍부한 자료는 일본의 서예와 전각의 발전에 탄탄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출판된 서예와 전각의 자료는 한국에도 많이 보급되어 전각발전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현대 일본의 전각문화는 기본적으로 쿄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와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관동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들의 풍격은 중국의 전통을 고수하는 방향과 일본 전통의 칼맛을 추구하는 방향로 구분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한국과 같이 서예와 전각이 다소 침체되는 현상이 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서예와 전각에서 21세기 전통문화의 개념으로 보존과 계승, 발전을 통한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노력과 전통문화를 상품화하고 축제화하는 등의 마케팅전략으로 효율적인 개선방향을 찾아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현대 전각은 20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독립된 전각예술로서 위치를 구축하여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조선시대 후기에 전각예술이 어느 정도 펼쳐졌지만 그에 대한 전각자료가 제대로 집대성되지 않아 명맥을 구체적으로 밝히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조선후기 전각의 흐름이 한인(漢印)과 소전(小篆)을 바탕으로 한 형태를 갖추었고, 조선만의 소박한 자법(字法)과 도법(刀法)이 존재하였습니다.

1970년대 서예단체가 형성되고 인보가 제작되는 등 서단 전반에 전각이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전각재료와 용구에 대한 것은 물론 전각자료에 대한 것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이후 일본에서의 서적과 재료의 유입, 홍콩과 대만으로부터의 자료 유입, 한ㆍ중 수료를 통한 재료 및 자료 유입 등에 의해 전각은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전각의 방향, 문자구성과 도법 및 장법의 방향 등으로 전각예술을 구축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전각은 다소 침체된 현상이며, 방향은 전통전각을 통한 개성의 표현과 전각을 활용한 현대미술로의 표현 등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Q. 전각을 가르치고 배우는데 필요한 기준, 커리큘럼 같은 것들은 무엇이 있으며 그 기준은 누가 정하나요?
김정민 작가의 천명등(天命燈) 재료/사진=예술사업부 김경아 디자이너김정민 작가의 천명등(天命燈) 재료/사진=예술사업부 김경아 디자이너
전각학(篆刻學)은 전각 전반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인장의 출현으로부터 제도 및 역할과 기능, 종류와 형식, 실용성과 예술성 등의 전반에 대한 연구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전각학의 표준은 기존의 전각학의 연구들을 토대로 현대의 시대성과 심미의식, 전각 창작과 표현, 재료와 용구, 감상과 비평 등을 폭넓게 고찰할 때 학문적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중국 및 일본 등에서 전각에 대한 저술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연구 논문들이 발표되는 가운데 전각학의 표준은 어느 정도 정립되어 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두 나라보다는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전각의 이론과 실기를 위한 이론서가 번역과 편집 등으로 계속 출간되고 있고 한국인장의 역사와 변천에 대한 연구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전각 역사에 대한 연구의 기반이 아직 탄탄히 다져있지 않고 또한 한국만의 특색 있는 전각미학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 이에 대한 연구와 노력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전각의 지도는 일반적인으로 전각 전반에 대한 이론과 실기를 겸비하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전문가를 기준으로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각 내용 전체를 이해하고 프로그램화하여 교수-학습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각의 학습과 커리큘럼의 기준은 대체로 고전 자료와 인장의 변천과정을 통해 나타난 표현기법들을 통해 마련되었습니다. 인장으로부터 독립된 전각예술의 창작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시대성이 반영된 정신과 심미의식, 전각 표현의 3법인 자법(字法), 장법(章法), 도법(刀法)을 활용하여 표현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전각지도를 위해서는 이러한 전각 전반의 흐름을 아우르는 전각의 학습의 커리큘럼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Q.전각이 처음인 기성세대, 시각문화에 익숙한 신세대를 전각예술의 세계에 안내해줄 길라잡이 같은 시도들, 전통과 현대문명의 조화를 만들어주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인장의 史的 변천을 살펴보면, 전각의 인식과 예술적 변화의 계기에는 각 시대마다의 시대성을 바탕으로 문자, 재료, 용구 변화가 주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전각이란 명칭과 사용은 중국 명대 문팽(文彭,1498-1573)을 기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문팽 전각의 계기로 기존의 금속재료 등과 같은 인장 재료에서 석인재(石印材) 활용과 함께 심미적 표현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를 전제로 할 때, 현대의 전각예술은 현대에서 사용하는 문자와 재료 및 용구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현대인들의 심미의식이 적용되는 방향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인터넷이나 인사동 등에서 그러한 시도들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시도들이 전각이 처음인 기성세대, 시각문화에 익숙한 신세대를 전각예술의 세계로 안내해주고자 한다면 역문화적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시각문화에 익숙한 그들에게 먼저 현대적 전각예술로부터 접근하여 전통과 현대문명의 조화를 이해하는 과정과 공감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문화적 이해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현재는 과거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는 이미 다양한 문화에서 체험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시도로 연결될 것입니다.

Q. 현대의 전각 애호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성남아트페어 전시 전경성남아트페어 전시 전경
결론부터 말한다면, 전각적 취향이 있거나 석인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전각 애호가라고 생각합니다. 전각예술의 가치는 예술적 작품을 전제로 하여, 印文의 예술적 표현과 석인재의 가치에 따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전각적 취향이 있는 애호가들에게는 예술적 가치는 물론 소장의 가치 및 투자의 목적도 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누가 새겼는가에 지극히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지금의 전각 애호가들은 전각작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위와 같이 전각석 자체를 수집하여 전각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즐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각예술 자체를 즐겨 감상하는 애호가들도 많습니다. 물론 누가 새겼는가도 큰 몫을 합니다. 인문 내용과 함께 새겨진 금석 맛, 문자들의 조화로운 어우러짐이 나타내는 묘미는 전각적 취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찬 예술 감상이 됩니다.

Q. 한글전각은 어떤 위치에 있나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한지 및 석인재, 120x70cm, 2018<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한지 및 석인재, 120x70cm, 2018
한글인장은 한글의 독창적인 조형성을 갖춘 한국 문화예술 중의 한 분야입니다. 기본구성은 음각과 양각으로 표현되고 일반적으로 官印과 私印으로 구분됩니다. 실용적 목적과 예술적 창작에 따라 표현양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한글 자체의 변천과정에서 형성된 다양한 자형을 활용해 작가의 개성에 따라 印文의 조형성이 다채롭게 표현됩니다.

한글전각의 대중화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무엇보다 공모전 등에 전각분야가 생기면서 독립적인 창작예술로서의 기반이 제대로 마련되었습니다. 현재 한글전각은 독립된 장르로 표현되기도 하고 타 장르와의 연계에서 창작되기도 하면서 폭넓게 창작세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글전각에 대한 인식은 한문전각에 비해 자형이 단순하고 단조롭다는 이유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를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 자체로 한글이 지닌 자형적 특징을 활용해 구성의 묘미를 추구한다면 한글전각이 가지는 예술적 성취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글은 다양한 조형적 특징을 가진 서체가 많이 보존되어 있음에도 서체에 대한 연구와 발굴이 활발히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글서체의 조형성을 활용한 전각표현의 활성화 및 한글전각의 올바른 창작활동을 위한 발전방안의 모색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따라서 어떤 방법적 접근이든 전각을 배워보고자 할 때 어느 정도 기초지식을 갖추고 시도한다면 각각 선택한 방향에 따라 효율적인 학습을 통해 효과적인 창작활동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Q. 한글서예와 전각을 배우게 된 동기와 과정을 말씀해주세요.
한글서예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1988년 7월 31일 서예학원에 강사로 추천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모암 윤양희 선생님이 제작한 한글교본으로 한글서예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계명대학교 서예과에 입학하기 위해 다시 꽃뜰 이미경 선생님의 궁서체를 더하면서 한글서예의 판본과 궁체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1994년 계명대학교 입학했을 때, 마침 서예과에 새로 부임해 오신 모암 윤양희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서예와 전각을 좀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익혔습니다. 교수님의 조언으로 조지겸의 전각을 모각하고 한글 전각도 함께 배웠습니다. 한글전각은 용비어천가의 자형을 중심으로 공부하였는데, 이는 자형의 조형적 특징이 정형화된 다른 판본 서체에 비해 길이의 대소와 태세의 변화, 수평ㆍ수직의 비정형 등 자법과 장법을 구성하는데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한글전각이 크게 유행하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1997년 가을 한국청년작가전 선발 휘호에 참여하여 새겼던 한글전각은 한국청년작가전에 선정되는 행복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 계기로 한글전각을 현재까지 꾸준히 작업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法古創新>, 한지 및 혼합재료, 65x66cm, 1997, 한국서예청년작가전 출품<法古創新>, 한지 및 혼합재료, 65x66cm, 1997, 한국서예청년작가전 출품
한글서예에 더욱 집중하여 서체를 연구하고 표현하게 된 것은 중국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행초서를 배우고자 중국의 서예학원에 방문했을 때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학생이 눈앞에서 행서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글서예에 대한 애정을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했습니다.
<文字香書卷氣>, 한지 및 혼합재료, 158×118cm, 2000, 한국서예 청년작가전 출품<文字香書卷氣>, 한지 및 혼합재료, 158×118cm, 2000, 한국서예 청년작가전 출품
그때를 계기로 이후 중국에 머무는 동안 교포 초등학생들에게 한글서예를 2년 가까이 가르치면서 한글서예의 아름다움을 공유하였습니다. 한문서예와는 또 다른 매력적인 한글서예를 함께 공유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진행된 휘호대회에도 직접 참여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도 갖게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산동성에서는 처음으로 산동대학교 미술관에서 한글 개인전 및 교포 초등학생들의 한글서예 전시회도 펼쳐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귀국 후 2014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글서예와 한글 전각을 연구하고 창작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통의 정신과 현대의 심미의식을 아우르는 융합된 창작의 기반을 갖추기 위해 이론적인 연구는 물론 문자와 재료와 용구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신과 마음도 놓치지 않으려 이 시대 속에서 끊임없이 호흡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전각을 직접 해보려 하는 이들을 위해 기초지식, 배움 안내서, 감상방법 등 조언 부탁드립니다.
김정민 작가의 천명등(天命燈) 재료/사진=예술사업부 김경아 디자이너김정민 작가의 천명등(天命燈) 재료/사진=예술사업부 김경아 디자이너
현대의 예술문화는 복합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기존의 표현방법들을 고수하는 방향과 융합적인 표현방법으로 창작하는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교수-학습의 방법과 방향이 달라질 것입니다.

현대의 전각은 실용적 방향과 예술적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전각을 배우는 목적이 실용적 방향이라면 이는 단기간의 목적에 맞춰 창작할 수 있는 기술적인 배움에 맞는 프로그램을 통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방향은 그것이 취미냐 전문적이냐 따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가짐부터 세우고 접근해야한다고 봅니다. 취미는 좀더 수월한 표현방법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적 접근이라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문화적 취향이 맞는지, 미적 기질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기초지식부터 차분히 준비하여 접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경우 배움의 기간은 정할 수 없고 배우는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기간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각예술은 인문적 사고와 시각적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 훨씬 예술적 감응력이 빨리 전파될 수 있는 분야입니다. 그리고 작업공간이 타 미술 분야와 달리 공간적 제약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작업의 크기도 작게는 1cm에도 표현할 수 있는 색다른 표현세계입니다. 또한 이러한 배움이 바탕이 된 이후에는 전각예술에 대한 감상도 훨씬 폭넓게 이뤄질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