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경항모 5억원 예산 유감

머니투데이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1.11.19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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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교 교수구민교 교수


동아시아의 바다가 뜨겁다. 해양물리학적으로는 지구온난화 때문이지만 지정학적으로는 미중 간 신해양패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군력이 집중된 지역이다. 최근 이뤄진 미중 간 화상 정상회의로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대만문제와 군사기지화 된 남중국해 인공도서는 화약고다. 일본도 해상 방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과 해상 연합훈련을 거듭하는 러시아도 예사롭지 않다. 동남아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인구 600만명이 채 안 되는 싱가포르도 항모 건조를 고려하고 있고, 오세아니아에서 아시아 국가로의 변신을 모색하는 호주는 미국으로부터 원자력추진잠수함 개발을 약속받았다.

그동안 모호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해양영역인식(maritime domain awareness: MDA)을 한 점으로 모으는 계기를 제공한 국가는 중국이다. 북한의 위협이 더 절박한 한국을 제외하고 모든 동아시아 국가에 '방 안의 코끼리'(the elephant in the room), 즉 가장 큰 안보위협이 뭐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중국이라 할 것이다. 모두의 관심과 걱정이 한곳에 쏠리면 물리법칙에 따라 중력이 발생한다. 그렇게 형성된 중력은 더 많은 사물을 끌어들여 더 큰 중력을 만든다. 국가 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군비경쟁으로 치닫는다. 그 끝에 평화가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편승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안보 딜레마'라고 한다.



다만 국제무대에서 군비경쟁이 무한대로 수렴하지 않는 이유는 각국이 처한 예산상의 제약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어떤 나라도 국방예산을 무한대로 늘릴 수는 없다. 경제성장률보다 군사비 지출이 더 많다면 상식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엄청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천문학적 군사비 투자를 하는 중국이 예외이긴 하다. 이 지역에서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따라가기가 버겁다. 따라서 대개의 국가에서는 국내적으로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두고 또 다른 군비경쟁이 벌어진다. 특히 여러 안보위협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상황에서는 육·해·공군 예산배분 문제가 정치적 이슈로 비화된다. 대학에서도 예산배분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자 그것을 담아내는 과정이라고 가르친다.

지난 16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당초 국방부가 요구한 경항모 설계예산 72억원이 5억원으로 삭감됐다. 첫째 해에 1억원, 둘째 해에 5억원 예산을 받고도 추진된 대규모 방위력 증강 및 개선사업을 찾아보기 힘든 만큼 사실상 경항모 사업은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추진한 해군 관계자들에게 국회에서 "극소수 과대망상증 환자"라는 독설이 나오기도 했다. "모든 군대가 갖고 싶은 장비를 업그레이드시키면 국방비를 아무리 쏟아넣어도 우리는 왜 안전하지 않은가라는 국민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한 의원의 말에 일응 수긍한다. 동시에 '징비록'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임진왜란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조총으로 "장비 업그레이드"를 주장한 류성룡에게 신립 장군은 "조총이 있다고 한들 어떻게 모두 적중시키겠습니까?"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어느 평야에서 활과 말로 무장한 신립의 군대는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에 전멸했다.



항모 투자에 앞서 냉철한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한다는 말은 맞다. 다만 그러한 '초당적' 합의가 국제무대에서 전개되고 있는 상위정치에 대한 고려보다는 국내무대에서의 각군 간 경쟁과 균형이라는 하위정치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길 바란다. 항공모함 운용은 고도의 군사적 행위이자 동시에 정치적·외교적 행위다. 해군의 계획대로라면 2033년까지 투입돼야 할 항모 건조비용과 전투기 도입예산이 큰 것은 맞지만, 사업을 탄탄하게 기획하고 집행해나가면 지금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항모의 편익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의 증가함수다.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동아시아의 바다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회 예산 심의에 앞서 각군 이름을 떼고 '블라인드 심의'라도 해야 하려나? "물을 그저 서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바다를 건널 수는 없다." 인도 시인 타고르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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