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스는 올 시즌 28경기 167이닝, 11승 5패 234탈삼진, 평균자책점 2.43을 찍었다. 내셔널리그 탈삼진 3위, 다승 15위, 이닝 19위다. 다승과 이닝에서 '압도적'이라 하기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도 승자는 번스였다. 번스는 1위표 12장, 2위표 14장, 3위표 3장, 4위표 1장을 얻어 총 151점을 기록했다. 휠러는 1위표 12장은 같았으나 2위표 9장, 3위표 4장, 4위표 4장, 5위표 1장으로 총점 141점이었다. 딱 10점 차이. 역대 네 번째로 적은 점수차로 승패가 갈렸다.

극단적으로 말해 '클래식 기록의 종말'이라 할 수 있다. 과거라면 11승에 167이닝으로 사이영상 수상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다승은 최소한 15승을 해야 했고, 20승을 넘으면 '안정권' 소리가 나왔다.
여기에 이닝은 '무조건' 200이닝을 넘겨야 했고, 평균자책점은 '당연히' 2점대 이하여야 했다. 올 시즌으로 봤을 때 207⅔이닝, 16승 4패 212탈삼진, 평균자책점 2.47을 올린 워커 뷸러가 수상자가 됐을지도 모른다(올해 투표 결과는 4위).
21세기 이후로 보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15승 미만으로 사이영상을 받은 선수는 딱 2명이다. 2003년 내셔널리그 에릭 가니에(다저스)와 2010년 아메리칸리그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 가니에는 마무리 투수였기에 논외다. 에르난데스의 경우 249⅔이닝과 232탈삼진이라는 훈장이 있었다. 잘 던지고도 패전이 많은(12패) 부분도 감안됐다.
200이닝으로 보면, 역시나 가니에를 제외하면 딱 1명 있다. 클레이튼 커쇼(다저스)다. 2014년 198⅓이닝으로 사이영상을 품었다. 대신 이 시즌 21승 3패 239탈삼진이라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특히나 '21승'이 결정적이었다.

2018년 블레이크 스넬(탬파베이)은 180⅔이닝, 21승 5패 221탈삼진, 평균자책점 1.89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품었다. 저스틴 벌렌더(휴스턴)가 214이닝, 16승 9패 290탈삼진, 평균자책점 2.52를 만들고 졌다. 180⅔이닝은 선발투수 기준으로 1994년 수상자 데이비드 콘(캔자스시티)이 기록했던 171⅔이닝 이후 가장 적은 이닝이었다.
'200이닝이 아니어도 된다'는 새로운 기준이 생긴 모양새. 같은 해 내셔널리그 수상자는 제이콥 디그롬(메츠)이었는데 디그롬은 단 10승에 그쳤다. 시즌 기록 217이닝, 10승 9패 269탈삼진, 평균자책점 1.70이었다. '다승 빼고' 완벽한 시즌이었고, 최고의 투수가 됐다. '다승의 가치'가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디그롬은 2019년 11승으로 사이영상 2연패에 성공했다.
이제 WAR,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오로지 투수의 책임만 있는 홈런·볼넷·삼진으로 측정한 자책점), ERA+(조정 평균자책점) 등 세이버 스탯들이 더 중요해진 모습이다. 전통적인 기록들이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상태다. 이런 추세는 점점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클래식보다 세이버에 더 많은 비중이 쏠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