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통신] "처음부터 일본인이 쓴 것처럼"..K웹툰 흥행비법 알고보니

머니투데이 이동우 기자 2021.11.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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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혁신을 이끄는 '네카라쿠배' 등 IT기업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취업 꿀팁부터 서비스 출시에 얽힌 뒷얘기를 솔직·담백하게 전합니다.

이여진 카카오엔터 로컬라이즈센터장 /사진제공=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여진 카카오엔터 로컬라이즈센터장 /사진제공=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강백호, 서태웅… 그리고 채치수'

1990년대 인기 만화 '슬램덩크' 주인공들의 이름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그런데 '사쿠라기 하나미치'(강백호), '루카와 카에데'(서태웅) 같은 일본 캐릭터명이 그대로 쓰였다면 그 정도의 인기가 가능했을까. 어색함없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 슬램덩크의 번역은 지금도 최고로 꼽힌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 만화를 수입해 보던 한국은 이제 일본에 수출한다. 세계 최대 만화 소비국 일본에서 K-웹툰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픽코마의 만화 앱 '픽코마'는 지난해 7월부터 일본 매출 1위에 올라 있다. 픽코마는 일본 현지의 만화를 웹툰화 하는 타사 플랫폼과 달리 국산 IP(지식재산권)를 적극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로컬라이즈'(Localize·현지화)가 성공의 필수 요소다. 자칫 원작의 세계관과 캐릭터 특징, 대화의 맥락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면 재미는 반감된다. 이에 K-웹툰의 글로벌 공략에 한창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자체 로컬라이즈센터를 두고 7개 언어로 현지화에 힘을 쏟는다.



이와관련 이여진 카카오엔터 로컬라이즈센터장은 "정확하면서도 원작을 감성을 살리는 것"이 로컬라이즈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센터장은 의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사업을 계기로 일본어를 익힌 뒤 NHN코미코에서 웹툰 업무를 시작했다.

의상디자인 전공했지만, 웹툰 번역의 길로…로컬라이즈란?
갓오브블랙필드, 사내맞선, 보스인스쿨 /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갓오브블랙필드, 사내맞선, 보스인스쿨 / 사진=카카오엔터테인먼트
-어떻게 웹툰 로컬라이즈를 맡게됐나?



▶대학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취직 했는데 거래처가 일본인이었다. 그가 잡지책을 들고 와서 이런 저런 것을 해달라고 했는데, 소통에 답답함을 느껴서 1년 정도 일본 유학을 가기로했다.그러다 일본어에 재미를 붙여 통역 전문학교도 다니고 7년 정도 공부를 했다. NHN에서 일본에 한게임을 내놓으면서 통번역 인력을 뽑아 합류했다. 한참 뒤에 NHN이 일본에 처음 웹툰 형식으로 '코미코'라는 서비스를 했는데 그때 조직장을 맡게 됐다.

-로컬라이즈란 정확히 어떤 업무인가?

▶크게 번역과 편집이다. 번역은 말 그대로 작품을 현지 언어로 바꿔주는 것, 편집은 작품의 세계관과 현지 문화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읽는 순서가 반대니까 말풍선이나 작은 요소의 위치도 다 바꿔야 한다. 작품을 받으면 편집과 번역의 난이도를 확인하고 작품배경을 한국으로 할지 아니면 현지, 제3의 국가 등으로 펼쳐질지를 정한다.


-예를 들자면.

▶픽코마 시작 단계만 해도 될 수 있으면 국가색 없이 갔으면 좋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은 머리에 동양 배경이면 일본으로 설정을 하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꿨다.

처음부터 일본어로 쓰여진 것처럼…독자들 반응에 '희비'
픽코마 / 사진=홈페이지 캡처픽코마 / 사진=홈페이지 캡처
-일본 독자들의 특징은?

▶일본 독자뿐만 아니라 오역이나 설정의 모순이 없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마치 처음부터 일본어로 쓰인 것 같아야 한다. 독자들은 읽어보면 다 안다. 특히 일본어에는 혼네와 다테마에(속마음과 겉마음)라고 해서 약간 온도차가 있다. 한국 사람이 화내는 강도가 100이라면 일본 사람에게는 50 정도의 강도다. 한국어 그대로 번역하면 일본 사람에게는 과도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픽코마의 현지화에대한 독자의 반응은?

▶일본에 커뮤니티에 2CH(2채널)라는 곳이 있다. 거기에 적나라하게 올라온다.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거나 간결하지 않은 로컬라이즈에 대해 독자들이 토론을 한다. 그래도 칭찬이 많은 편이다. 효과음 번역이 특히 어렵다. '콰쾅' 천둥·번개 같은 일반적인 것은 가능한데, 트렌드한 표현인 '...', '헐', 뜨악' 이런 것들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만화의 분위기에 따라 표현을 한다. 일명 (의역을 넘어선) '초월번역'도 적재적소에 구현해야 한다.

- 기억에 남는 사례가?

▶성공적인 로컬라이즈는 원작의 재미를 배가해준다. 실제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잘 된 것도 있다. 가령 '보스 인 스쿨'이라는 작품은 번역이 일본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됐다. 주인공이 중국에 놀러 갔을 때 주변 사람이 중국말로 대화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개그맨이 한국어로 가짜 중국어를 하는 것처럼 일본식 중국어로 번역했다. 2CH에서 재미있다고 엄청나게 화제가 됐었다.

상상력 자극하는 웹툰의 매력, 로컬라이즈에 진심인 카카오
이여진 카카오엔터 로컬라이즈센터장 /사진제공=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여진 카카오엔터 로컬라이즈센터장 /사진제공=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 로컬라이즈가 다른 영화나 드라마와 차이는?
▶결국 2D의 매력으로 대변할 수 있다. 웹툰은 정적이어서 보는 번역이 사람의 상상력을 확장시켜 주고 흐름에 방해되지 말아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시각적인 강렬함 때문에 번역의 효과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 같다. 픽코마 웹툰에서는 멈춰있는 글자가 마치 어떤 효과를 넣은 것처럼 번역된다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어떤 분들이 웹툰 로컬라이즈를 할 수 있나?
▶언어 실력은 기본이다. 거기에 더해 만화, 웹툰 덕후(매니아)들이 좋다. 철저하게 채용 위주로 테스트를 하는데, 실제 웹툰을 주고 번역으로 해오라고 과제를 내주는 식이다. 일본어를 좀 한다고 하는 분들은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경쟁도 심하고 평가도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번역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그걸 내부적으로 세미나를 거쳐서 검토한다. 과정을 통과하는 분들에게 제안한다.

-카카오엔터가 로컬라이즈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로컬라이즈 조직의 존재 자체가 글로벌 사업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국내 웹툰이 외국에 진출했을 때 현지 독자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사실 다 외주로 운영해도 된다. 결국 로컬라이즈에 얼마나 의식이 있느냐가 작품의 퀄리티와 매출, 현지 독자의 마음을 얻는데 일조를 한다고 본다. 특히 만화 종주국인 일본에서 500원, 600원짜리 웹툰이 이렇게 큰 매출을 내고, 많은 독자가 사랑한다는 것은 로컬라이즈의 방향성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방증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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