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예비신부 6000만원 빚 고백에 잠수탄 남자…'파혼' 책임은 누가될까

머니투데이 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2021.11.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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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예비신부입니다. A씨에게는 남은 학자금 대출 4000만원과 차 할부금 2000만원의 빚이 있는데요. 결혼 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최근 이 사실을 남자친구 B씨에게 고백했습니다. A씨의 얘기를 들은 B씨는 "왜 이제서야 말하냐"며 화를 내더니 급기야 잠수를 타버렸습니다. 결혼 준비만 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B씨와 아예 연락이 안 되니 A씨는 답답하고 속상하기만 합니다.

◇빚 숨기고 그대로 결혼했다면?



만약 A씨가 끝까지 빚을 숨기고 결혼했다 B씨가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이미 한 결혼을 취소할 수 있을까요? 혼인취소란 결혼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혼인의 효력을 소멸시키는 제도입니다. 유효한 혼인관계를 중단하는 이혼과 달리 혼인취소를 하면 가족관계등록부에 이혼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혼인취소를 청구하려면 반드시 법이 규정하는 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근친혼 △중혼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 사유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경우 등입니다. (민법 제816조)



법원은 통상 경제적 능력이나 학업, 집안 사정은 혼인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와 같은 사항을 속였다도 해도 혼인취소는 어렵습니다. 다만 기망의 정도가 심해 배우자의 동일성까지 의심할 정도라면 거짓말을 적법한 사유로 인정합니다. (서울가법 2004. 1. 16. 선고 2002드단69092)

지방대 출신이며 재산이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배우자에게 자신은 유명 사립대 출신이며 상당한 재력가라고 거짓말을 한 사례에서 법원은 혼인취소가 정당하다고 봤습니다. 억대의 빚을 져 신용불량자 상태였던데다 주민등록까지 말소된 상태에서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다"라는 말로 배우자를 속여 결혼까지 진행한 케이스 또한 사기에 의한 혼인취소가 인정됐습니다.

즉 A씨가 빚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혼인취소에 해당한다고 보긴 힘듭니다. 다만 B씨가 먼저 채무 여부를 물어봤는데도 빚이 전혀 없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거나, A씨가 평소 B씨에게 고가의 선물을 자주 하는 등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로운 척을 한 경우에는 혼인취소 청구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사기로 인한 혼인취소는 사기를 안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청구하지 못합니다. 혼인취소를 희망한다면 법적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야 합니다. (민법 제823조) 아울러 배우자가 자신을 적극적으로 기망한 사실을 입증할 만한 서류, 녹음본, 메신저 대화 내용 등의 물리적 증거도 필요합니다.

◇예비신랑이 이대로 '잠수' 탄다면...



A씨는 B씨가 이대로 평생 나타나지 않을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B씨의 연락두절 상태가 길어진다면 두 사람의 결혼은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A씨와 B씨는 현재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민법상 약혼 상태입니다. 이혼과 달리 파혼은 양 당사자 중 한쪽의 의사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귀책사유가 있는 쪽에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법원은 일반적으로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날짜를 잡은 후 예식장을 예약했다면 약혼 성립을 인정합니다. A씨와 B씨처럼 결혼 준비를 대부분 마치고 결혼식만 남기고 있었다면 결혼에 대한 강한 의사가 있었음이 증명되므로 재판에서 또한 약혼 상태로 인정될 확률이 높습니다.



약혼 후 1년 이상 생사(生死)가 불명한 경우 약혼 해제가 가능합니다. (민법 제804조) 어떤 이유에서든 B씨가 1년 넘게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A씨는 적법하게 파혼할 수 있습니다. B씨가 완전히 실종되거나 사망한 게 아닌 이상 가족들에게는 거주지나 연락처를 알릴 텐데요.

이때 이를 알고도 묵인한 직계존속에게도 위자료 청구가 가능합니다. 다만 B씨의 '잠수'가 A씨의 뒤늦은 채무 공개에 따른 결과라는 점이 위자료 산정에 반영될 수는 있습니다.

파혼으로 인한 위자료 청구 소송 때까지 B씨가 나타나지 않으면 서류는 일단 법원이 보관하고 그 사정을 법원게시판이나 신문 등에 알리는 공시송달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A씨가 승소해 위자료를 받게 되면 공시송달 후 강제집행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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