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이'에 급발진…"민주당이 5.18 전세냈나" 비판 나오는 이유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1.11.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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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읽어주는 기자]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를 찾아 방명록을 작성했다. (공동취재사진) 2021.11.10. photo@newsis.com[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0일 오후 광주 북구 5·18 민주묘지를 찾아 방명록을 작성했다. (공동취재사진) 2021.11.10.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진 홍영표 의원이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참배에 앞서 방명록에 "5월의 빛나는 정신과 역사를 받들어 개혁을 완성하고, 민주주의를 반듯이 지키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2021.04.15. hgryu77@newsis.com[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도전장을 던진 홍영표 의원이 1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참배에 앞서 방명록에 "5월의 빛나는 정신과 역사를 받들어 개혁을 완성하고, 민주주의를 반듯이 지키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2021.04.15. [email protected]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0일 광주 5.18민주묘지 방명록에 남긴 글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뒤집어졌다. 이재명 대선후보까지 나서서 "오월 정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의미로 오월 정신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후보는 자신의 "전두환도 정치를 잘했다" 발언에 사과하기 위해서 광주를 찾았다. 사과의 메시지와 방식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사과가 '말'에 그칠지 아니면 추후 '행동'으로 보여줄지 여부에 따라 윤 후보와 국민의힘의 진정성이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똥이 '방명록'의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는 대목에 튄 것은 이해가 안 가는 측면이 있다. 말 그대로 5.18이 남긴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반듯하게 세우겠다는 게 문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5.18 정신이 반듯하지 않다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5.18 정신이 반듯하게 서 있지 않다고 지적해온 것은 민주당이었다. 국민의힘에서 나왔던 5.18 비하발언들을 최전선에서 공격해왔다. 그 국민의힘의 대선후보가 자신의 '전두환 발언'을 사과하며 오월 정신을 "반듯하게 세우겠다"고 했는데 여기에 급발진을 한 격이다.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11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서 "우리 당이 그 전에 5.18에 대한 망언도 있고 그렇지 않나"라며 "오월 정신을 반듯이 세우겠다는 것은 똑바로 계승하겠다라는 다짐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을 향해 "오월 정신에 대한 인식이 비뚤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오월 정신 자체가 호남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온 여당에 의해 훼손됐으므로, 야당의 윤 후보가 "반듯이 세우겠다"고 말하는 게 적절하다는 평가도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날 '한판승부'에서 "5.18 정신이 90도 직각으로 서 있다는 얘기인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공정과 상식을 세우는 것이 5.18 정신"이라고 했다.

진 전 교수는 "표창장 위조해서 공정을 파괴한 게 5.18 정신인가. 아니면 지자체장이 권력을 이용해 줄줄이 성추행한 게 5.18 정신인가. 그리고 그 짓을 한 사람들을 당적 차원에서 옹호하는 게 5.18 정신인가"라며 "이걸 지금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급발진'의 이유는 '짜증'이다. 여권이 윤 후보의 '광주행'에 짜증섞인 반응을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도 하다. 윤 후보는 지난 7월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눈물을 보이며 박관현 열사와 김태홍 전 의원의 묘비를 닦고, 추모했다. 그러자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비석이 더럽혀졌다"며 5.18 민주묘지를 직접 방문해 박 열사와 김 전 의원의 묘비를 손수건으로 다시 닦았다.
(광주=뉴스1) 황희규 기자 =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김두관 의원이 19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마친 뒤 박관현 열사 묘비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지난 17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참배 후 박관현·김태홍 열사를 추모하며 묘비를 닦았다. 이에 김 의원은 이날 두 열사의 묘비를 손수건으로 닦은 뒤 (광주=뉴스1) 황희규 기자 = 더불어민주당 대권주자인 김두관 의원이 19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마친 뒤 박관현 열사 묘비를 손수건으로 닦고 있다. 지난 17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참배 후 박관현·김태홍 열사를 추모하며 묘비를 닦았다. 이에 김 의원은 이날 두 열사의 묘비를 손수건으로 닦은 뒤
지난 5.18 기념일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5.18 추모 메시지를 낸 윤 후보를 향해 여당 인사들은 "검찰개혁이 5.18 정신"이라는 말까지 내놓으며 "윤석열은 5·18 정신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가 5.18 참회로 광주를 향해 다가가는 것에 여권이 짜증을 내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호남의 오랜 '고립'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민주당이 차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지난 7월 김두관 의원의 '비석닦이' 직후 페이스북에 "5.18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독점하려는 모습에서 오만과 배타로 가득한 심성을 읽게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날 CBS라디오에서 진중권 전 교수는 "5. 18에 전세 낸 게 민주당이다. 민주당이 5.18 정신을 배반했다"고 비판했다. 김근식 위원장은 "국민들이나 다른 보수진영이나 다른 후보가 오월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을 모독이라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오월 정신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이라며 "오월 정신을 마치 특정 세력, 특정 정당, 특정 정파, 특정 단체가 독점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는 말을 민주당 인사가 썼어도 여권은 과연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 아니었을 것 같다. '친문 핵심'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광주 5.18민주묘지 방명록에 ″5월의 빛나는 정신과 역사를 받들어 개혁을 완성하고, 민주주의를 반듯이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던 바 있다. 그 어디에서도 홍 의원을 향해 "민주주의가 반듯하지 않다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던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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