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일본 반도체를 무너트렸나…한국은?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1.11.0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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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가 판다]바이든 행정부의 정보공개 요구, 사흘 앞으로 다가온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선택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에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워싱턴=AP/뉴시스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화상 회의에서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워싱턴=AP/뉴시스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대만반도체제조회사) 등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들에게 자국 자동차 및 IT 기업들에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을 해야한다는 이유로 고객 정보 등을 요구한 마감기한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8일 마감 시한을 앞두고 기업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 행정부가 기업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민감 정보는 빼고 산업별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의 자료제출을 요구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그나마 다행이다.



미 정부는 당초 오는 8일까지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국방물자생산법(DPA)까지 적용해 강제로 자료제출을 요구하려고 했지만 최근 분위기를 바꿔 강성 기조에서 벗어나 숨고르기를 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초강대국인 미국이 언제 또 다시 생각을 바꿀지는 모를 일이다.

호주와 프랑스가 맺었던 핵잠수함 계약을 미국이 가로챘듯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로서 '선한 관리자'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반도체 부문에서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재건을 지원했던 미국이 지나치게 커버린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한순간에 날려보냈던 기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 기업들이 절대 강국 미국의 압박을 이길 수 있을까.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견딜 방법은 쉽지 않다. 미국의 오랜 통상압박 전술은 약소국에 무자비하다. 특히 일본이나 한국, 대만 등 미국 군사력의 수혜국이라고 인식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은 왜 일본을 키웠나?...자국의 원조 부담 축소와 대중국 방어막 목적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한 날을 기념한 행사 사진. 진주만 추념일에 당시 참전 노병들이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며 그들이 잠든 진주만 바다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한 날을 기념한 행사 사진. 진주만 추념일에 당시 참전 노병들이 먼저 간 전우들을 기리며 그들이 잠든 진주만 바다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DB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 12월 미국 동부 뉴저지주 머레이힐에 위치한 AT&T의 연구소인 '벨랩'에선 향후 수십년간 세상의 변화를 이끌 반도체가 탄생했다.

미국 동부에서 발아한 반도체 산업은 서부로 이어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 인근 남부에 실리콘밸리를 형성했다. 그 반도체의 씨앗은 1950년대 패전국인 일본으로 넘어갔고, 이 때부터 1990년대까지는 일본 반도체와 전자업계의 전성기였다. 여기에는 일본 부흥의 밑거름이 된 한국전쟁이라는 자양분이 자리잡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항복 이후 미 군정은 패전국 일본의 전후 복구와 재건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늘어나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국은 일본이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랐고, 막 시작된 반도체 기술의 특허 제공 등을 통해 자립을 지원하면서 일본 전자산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미국은 특히 중국과 소련(현 러시아) 등 공산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전국인 일본의 재건이 필요했다. 이런 요소들이 패전국 일본이 전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일본의 성장이 반도체 로열티에 취해 있던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을 '잡아먹는' 상황까지 도달하면서 생겼다. 최초의 반도체 개발 기업인 AT&T의 반독점 규제에서 시작된 특허 개방은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에 이르러서는 미국 기업들에게는 달콤한 독주(毒酒)였다. 달콤한 특허 로열티의 유혹은 미국에서 일본으로의 기술유출에 가속도를 붙였다.

미 공정경쟁당국의 독점규제로 인해 1951년 AT&T의 자회사인 웨스턴 일렉트릭이 일본 기업들에게 반도체 특허를 공개한 이후 1980년대까지 일본 기업들은 급격하게 성장했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을 도입한 일본의 신생기업 소니, 샤프 등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전자계산기 등 당시로는 첨단 전자제품의 길을 열면서 신시장을 만들어냈다. 1980년대엔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하면서 미국 기업의 생존을 위협했다. NEC를 필두로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미쓰비시, 마쓰시타(파나소닉) 등은 D램 등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주름 잡았다.

미국은 왜 일본 반도체를 무너트렸나…한국은?
최초 D램 업체인 인텔은 1984년 D램 산업을 포기하고 CPU(중앙처리장치)로 사업을 전환했고, 일본에 반도체 특허를 제공하던 RCA는 1986년 문을 닫았다. 이런 위기감이 미국으로 하여금 일본 반도체 기업을 규제토록 하는 단초가 됐다.

미국은 왜 일본 반도체를 무너트렸나?...지나친 성장, 자국 산업 피해 견제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인텔 본사 전경./사진=인텔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있는 인텔 본사 전경./사진=인텔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IC인사이츠에 따르면 1990년 당시 NEC를 비롯해 도시바, 히타치, 후지쯔, 마쓰비시, 마쓰시타 등 6개 일본 기업이 D램 시장의 80%를 차지했다. 톱10 기업 중 미국 기업은 인텔과 TI, 모토로라 등 3개 기업 뿐이었다.

1947년 트랜지스터 개발 이후 1980년대 이전까지 미국 기업이 장악했던 반도체 시장은 어느 새 '일본천하'가 됐다. 1981년부터 시작된 레이건 행정부는 당시 전세계 반도체 매출 톱10 기업 중 6개가 일본기업이라는 데 크게 위기감을 느꼈다.

레이건은 일본 반도체 기업의 덤핑이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압박했고, 미국 언론은 일본 반도체 기업의 저가 공세를 '제2의 진주만 공습'으로 비유하며 미국 정부의 강공에 힘을 실어줬다.

인텔이 D램 사업을 포기한 직후인 1985년 6월 14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무역대표부(USTR)에 일본 정부가 민간 기업을 지원한 반도체산업정책이 불공정하다며 제소했다. 이어 6월 24일에는 미국 D램 업체인 마이크론이 일본 NEC,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을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반도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레이건 정부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과 함께 서방 5개국 재무장관(G5)회의를 열고,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의 고평가와 미 달러 저평가가 이뤄지도록 환율조작을 압박했다. 미국의 힘에 의해 이뤄진 이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기업의 반도체 가격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됐다.

여기에 더해 1986년 미국 정부와 일본 반도체 기업간의 협정(이른바 서스펜션 협정)과 미 정부와 일 정부간의 협정(미합중국정부와 일본정부간의 반도체 무역에 관한 협정)이 진행됐다. 이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업체는 미국에 생산 원가공개와 자국 내 미국 반도체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높이기로 했다. 이 협정은 이후 5년간 유지됐으며, 이를 1차 미·일반도체협정이라고 한다.

미국은 일본정부가 미일 반도체협정을 지키지 않는다며 1987년엔 슈퍼301조(통상법 301조)를 통해 무역보복을 실시했고, 이어 1996년까지 이어지는 제2차 미일반도체협정을 맺었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0년간 미국의 환율 정책과 무역보복 등으로 일본 반도체는 결국 무릎을 꿇고 만다.

그 결과 1997년 인텔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되찾았고, 그 이후 현재까지 왕좌를 지키고 있다. 당시 인텔의 뒤를 이어 모토로라, TI 등 미국 기업들이 상위권에 올랐고, 삼성전자도 그해 반도체 매출 7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현재 전세계 반도체 매출 톱10 기업에서 일본 기업들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에서 이름을 바꾼 키옥시아가 12위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일본 기업들의 자리에는 인텔을 비롯해 마이크론, 퀄컴, 브로드컴, 엔비디아, TI 등 6개 미국 기업이 앉았다. 1980년대에 순위표에 보이지 않던 삼성전자 (77,600원 ▼2,000 -2.51%)SK하이닉스 (173,300원 ▼9,000 -4.94%) 등 한국 기업과 TSMC가 40년 후 신흥 강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미국 극복이 과제, 민관 머리 맞대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캠퍼스 2라인 전경/사진제공=삼성전자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캠퍼스 2라인 전경/사진제공=삼성전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1960년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후공정을 맡았던 시기부터 출발한다. 페어차일드와 모토로라의 후공정 생산라인에서 시작해 1974년 모토로라반도체 출신인 강기동 박사가 경기도 부천에 설립한 최초의 전공정 회사인 한국반도체로부터 싹이 텄다.

1983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가 D램 사업에 진출했고, 3년 후인 1986년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협정이 맺어지면서 일본의 위축을 틈타 우리 기업들이 기회를 잡은 측면이 있다. 이는 준비된 자에 주어진 기회였다.

일본 기업들이 미국 정부가 싸우는 데 신경을 쓰는 동안 심한 견제를 받지 않고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이후 한국의 성장은 파죽지세였고, 현재는 삼성전자가 세계 반도체 1, 2위를 인텔과 다투고 있고, SK하이닉스가 3, 4위권을 오가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이어 우방인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업의 고삐를 죄는 이유는 두가지다. 미국의 유일한 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면서, 자국의 자동차와 IT 산업의 안정적인 시스템 유지를 위해 '반도체 헤게모니'는 반드시 쥐어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인류는 지구를 가득 메운 질소와 산소를 호흡하며 생존하지만, 진화하기 위해선 실리콘(Si: 반도체 소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또 힘의 근원은 '아는 것'이고 현 시대는 그 '앎'의 근원이 반도체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안다.

미국이 우방들의 통신망을 장악해 가는 중국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을 막음으로써 세력 확장을 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화웨이가 5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전세계 통신업체들에게 공급하게 된다는 것은 미국에겐 큰 위협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우방들이 구매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한편, 매년 화웨이 장비를 쓰는 기업들에게는 "언제까지 쓸거냐?"는 등 압박을 가하는 것도 이런 위협감 때문이다.

또 미국이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에게 중국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압박함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은 것도 반도체가 국가전략산업이어서다. 중국이 반도체까지 장악할 경우 미국의 경쟁상태로서 힘이 더욱 커져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인식한다. 결국 중국의 칭화유니가 파산에 접어든 것도 미국의 압박과 무관하지 않다.

대만 TSMC 본사/사진=머니투데이 DB대만 TSMC 본사/사진=머니투데이 DB
이런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과 대만에 미국 내 생산공장 건설 요구와 기업정보 제공이라는 청구서를 내민 이유는 두 나라의 안보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대가를 요구한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는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대한 것이고, 대만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안정을 유지토록 하는 데 대한 청구서다.

미국은 코로나19 직후 미국 산업의 근간인 자동차 산업에 안정적으로 차량용 반도체가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후 반도체 군기잡기에 나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벌어진 자동차용 반도체의 수급불균형은 일시적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쯤이면 공급망이 안정화되고 앞으로는 이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한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이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자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인텔이나 마이크론, TI, 퀄컴, 엔비디아(Nvdia) 등등이 TSMC나 삼성전자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완결성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TSMC 등이 자국 기업처럼 움직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국 내에 생산시설을 두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자국 중심적인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또 우리 정부나 기업들이 이를 무시하거나 넘어설 수 있는 길도 요원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미국의 압박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 것'이다. 일본은 1950년대 섬유무역분쟁에서 섬유수출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조건으로 미군 점령지인 '오키나와'를 받았다.

미국의 청구서에 대한 우리의 지불은 1953년 남북분단 이후 근 70년간 동북아의 완충지로서 충분히 치렀다. 기업들의 반도체 경쟁력을 무기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을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 정부와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매일 만나서 논의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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