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근 교수
시청자가 이 드라마에 기대를 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의 출연이 첫 번째다. 전지현과 주지훈이 최고의 레인저 서이강과 미스테리한 신입 레인저 강현조 역을 맡았다. 탄탄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리라는 기대도 컸다. '시그널' '킹덤' 같은 드라마로 이름을 날린 김은희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믿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극의 완성도를 높여줄 연출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이응복 피디는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을 맡아 호평받은 연출가다.
tvN 창설 15주년을 기념해 300억원 넘는 제작비를 들였다는 야심작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간혹 우리를 배신한다. 캐나다 출신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는 '피터의 법칙'을 주장했다. 조직 내부의 승진 대상자는 승진 이후 업무에 대한 능력보다 현재 직무수행역량을 근거로 평가받는다. 그러므로 대상자는 결국 더이상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직위까지 올라간다. 그의 논리는 상위 직책에 앉아 있는 사람의 무능이 드러나는 경우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관점으로 활용된다.
'지리산'의 실패는 콘텐츠의 기본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콘텐츠는 결국 그림과 소리,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영상 기반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림이다. 구도와 색채의 균형을 맞추고 피사체의 크기와 수량, 밀도, 위치, 방향을 구조화하는 작업을 통해 아름다운 영상이 창조된다. 조화로운 음성과 음악, 음향효과를 알맞은 자리에 적당한 길이로 배치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런 과정은 콘텐츠 제작과정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오징어게임'은 빨강과 파랑, 검정과 하양을 대비하는 원색의 배치와 과거의 향수를 배치하는 공간 구성을 통해 어린 시절 놀이의 세계를 재현했다고 호평받았다. 세계인이 우리 콘텐츠를 사랑한다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콘텐츠의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탁월한 이들의 조합결과가 항상 탁월한 것도 아니다. 모든 콘텐츠의 결과가 다 좋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지리산'은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크다. 우리 콘텐츠가 자만하지 않고 기본을 지켜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