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판결뉴스'에 악플 많은 이유

머니투데이 신민영 법무법인 예현 변호사 2021.11.01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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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영 변호사신민영 변호사


내가 변호한 형사사건의 결과가 심심찮게 뉴스에 나오곤 한다. 무죄를 받은 날이면 혹시라도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나)를 칭찬하는 댓글이 있을까 싶어 열심히 찾아보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 악플이다. 대체로 '이게 왜 무죄냐'로 시작해 '이런 걸 변호한 변호사도 똑같은 일을 당해봐야 한다'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해야 한다'로 끝나곤 한다.

직관에 반하는 무죄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이 변호사로서는 꽤나 영광스러운 일이라 나를 향한 악플은 그닥 아프지 않다. 하지만 재판부를 향한 험구는 과하단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나라 형사재판의 무죄율은 대체로 5%를 밑돈다. 재판부가 호락호락하게 무죄판결을 내주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무죄판결에 인색한 재판부에 화가 날 지경이다. 재판부가 고민고민 끝에 내린 무죄판결일 텐데 무죄판결 기사의 댓글란엔 왜 분노가 넘쳐나는 걸까.



판결에 관한 뉴스는 대체로 불성실한 요약본이다. 보도가 된 내 사건들을 예로 들자면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방청한 기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재판이 끝나고 판결이 나오면 각 법원의 언론담당 판사가 그날 있었던 사건 중 '주요 판결' 몇 건을 뽑아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데 판결에 관한 보도는 아마도 이 자료에 기초한 것 같다. 어제 방영한 드라마도 사람마다 기억하는 내용이 제각각이다. 하물며 정밀한 논증이 오가는 재판을, 그것도 직접 보지도 않고 전달한다면 오차 정도는 더 크지 않겠는가. 기사를 읽어보면 재판에서 오간 공방 중 많은 부분이 빠져 있곤 했다.

기자가 사건의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해도 기사가 판결의 쟁점부분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적게는 수백 페이지, 많게는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의견서가 몇 번이나 제출된 후에야 판결이 이뤄진다. 법정에서 이뤄진 공방은 빙산의 일각일 텐데 법정에서 방청과 판결문 분석만으로 재판부가 판결한 이유가 정확히 전달 것 같지는 않다. 형사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 원칙도 고려해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의심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의심이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유죄판결이라든지, 인신구속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사법작용도 엄연히 헌법적 기능 중 하나인 터라 주권자인 국민의 불평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사법 기능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 국민 눈높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원인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할 것이다. 판결문에 판단의 근거를 충실히 반영하고 판결 이유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언어로 소통하면 불평의 상당수는 사라질 것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더 나가 대중추수주의로 향하는 건 곤란하다. 결론은 법리와 양심에 기초해서 소신 있게 내리되 이에 대한 설득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야지, 결론 자체를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최근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재판정으로 옮겨진 경우가 많고 그 결과에 대해 특정 세력의 비난이 쏟아지는 일도 잦아졌다. 비난의 면면을 지켜보자면 과연 합리성에 기반한 설득이 효과가 있긴 한 걸까란 비관이 들 때도 많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미래는 결코 비관주의자의 것이 아니다. 악플 틈에 '사법부 힘내라'는 댓글을 달아보려다 몇 번을 단념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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