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사진=LG에너지솔루션
김 사장이 LG에너지솔루션을 떠난다. 연이은 발화와 이에 따른 전기차 리콜사태의 책임을 지고 전격 용퇴했다. 그럼에도 그가 LG배터리 중흥기의 문을 연 인물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이끌어온 동안 LG에너지솔루션은 기술력이나 수주잔고, 보유고객 면면 등을 감안할 때 명실상부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여전히 점유율 면에서 앞서고 있는 중국 국영 배터리기업 CATL과 본격 세계대전을 치러야 한다. 배터리 양산 채비를 갖추고 있는 모빌리티 최강자 토요타 및 폭스바겐, 또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경쟁자들과의 주도권 싸움도 이제부터 제대로 벌어진다. 큰 대결을 앞두고 내부 정비를 먼저 단행한 셈이다.
김 사장은 1984년 LG생활건강으로 그룹에 들었다. 2001년 LG화학에 합류해 각종 전략부서와 사업부를 돌다가 2009년 소형전지사업부장(전무)을 맡았다. 폭스바겐 등 굵직한 바이어들과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LG배터리의 토대를 다졌다.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엔 전지사업본부장 사장으로 올라서며 배터리 부문을 총지휘하기에 이른다.
K배터리의 초기 철학 구축에도 기여했다. 김 사장은 2019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인류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전기차로 대전환에 대해 미리 확신을 갖고 사업을 추진해 왔다는 의미다. LG 배터리사업에 R&D(연구개발) 중심 경영의 틀을 짜 넣는 작업도 주도했다. SK이노베이션과의 영업비밀 침해 분쟁 과정에서도 마무리국면에 큰 역할을 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김 사장은 적들에게는 미움과 함께 인정을, 아군에게는 사랑을 받는 경영인이었다. 경쟁기업들은 김 사장의 치밀한 경영을 부담스러워했고,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은 통찰과 판단력을 지닌 김 사장을 신뢰했다. 안팎의 평가에 힘입어 김 사장은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의 첫 대표이사에 이르렀다.
김 사장과 배터리 사업은 물론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까지 치열하게 부딪혀 온 지동섭 SK온(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 대표는 김 사장에 대해 "오늘날 우리나라 배터리산업과 생태계가 이만큼 발전해 오기까지 함께 하며, 산업을 함께 성장시켜 온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송사를 남겼다.
김 사장은 물러났지만 LG에너지솔루션 첫 대표로 그가 그려온 LG배터리의 청사진은 LG배터리의 밑바탕에 오래 남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