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상우가 연기내공 쌓은 LG아트센터, 마곡시대 연다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2021.10.20 15:54
글자크기

故구본무 LG회장 지시로 만든 국내 대표 문화예술 향유공간…22년 자리잡은 역삼동 떠나 마곡으로 이전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하며 호평 받았던 음악극 '오이디푸스'. 배우 박해수(사진)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머니투데이DB LG아트센터에서 초연하며 호평 받았던 음악극 '오이디푸스'. 배우 박해수(사진)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머니투데이DB


"LG아트센터는 배우로서의 시작점이었고,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곳이죠. 몰려오는 감동이나, 밀려오는 감흥을 온전히 느끼면서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박해수)

글로벌 신드롬을 낳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으로 스타가 된 배우 박해수는 원래 연극 '오이디푸스'로 유명하다. 선한 얼굴로 이기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그의 연기 내공은 오이디푸스로 열연했던 LG아트센터에서 다졌다. 박해수는 치열한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LG아트센터가 위치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향하는 길을 "전쟁하러 가는 길"이라고 표현한다.



내년 10월 문을 여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사진제공=LG아트센터내년 10월 문을 여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사진제공=LG아트센터
오징어게임의 여운을 만끽한 뒤 연극무대로 돌아올 박해수의 전쟁터는 역삼동이 아닌 마곡동이 될 예정이다. LG아트센터가 22년에 걸쳐 관객과 만났던 강남을 떠나 새출발을 선언하면서다. '오페라의 유령'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며 공연시장 혁신을 이끈 LG아트센터는 마곡에서 문화·과학·자연을 융복합한 종합예술을 선보인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심우섭 LG아트센터 대표는 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COVID-19)로 공연예술계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다가왔고, LG아트센터도 변곡점에 서 있다"며 "22년 동안 예술가와 관객들 모두에게 사랑을 받은 아트센터가 마곡으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뮤지컬 '하데스타운'을 끝으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센터 문을 닫고, 내년 10월 마곡동에서 재개관한다는 구상이다.

실험·혁신 역사 쓴 LG그룹 단관극장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LG아트센터 공연장. /사진제공=LG아트센터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LG아트센터 공연장. /사진제공=LG아트센터
LG아트센터는 2000년 '문화예술 창작과 교류를 통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취지로 세운 세워진 종합예술공연장이다. 삼성그룹의 리움미술관과 함께 '문화보국'을 내세운 국내 대기업이 만든 대표적인 문화향유 시설 중 하나다. IMF 외환위기 직후 기업들이 문화지원을 축소하던 1998년 구본무 당시 LG회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예술 공연을 국민들이 볼 수 있게 소개하라"고 당부하며 건립됐다.


LG아트센터는 국내 공연시장의 성장 촉진제 역할을 했다. 2000년 3월 개관한 이후 총 867편의 작품이 6300회 공연됐고, 450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연극부터 클래식·재즈·현대음악·뮤지컬·판소리·무용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실험적인 기획 공연을 선보이며 컨템포러리 공연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다. 피나 바우슈, 매슈 본, 로베르 르파주 등 세계 공연예술계를 이끄는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됐다. 장기 대관 공연을 통해 한국 공연시장 붐을 일으킨 '오페라의 유령'을 초연한 성과는 백미로 꼽힌다.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양정웅 연출의 '페르귄트'. /사진제공=LG아트센터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양정웅 연출의 '페르귄트'. /사진제공=LG아트센터
특히 공연계 고질적인 문제였던 초대권 제도를 없애 자연스럽게 예매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현정 LG아트센터 국장은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아티스트들은 더 치열하게 작품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의 영향으로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모든 산하 국공립 예술기관에 초대권 발행제도를 폐지하기도 했다.

상업성을 배제한 동시대를 살며 반드시 봐야 할 혁신작품을 선보이며 차별화를 꾀한 LG아트센터지만 1000석이 겨우 넘고, 분장실은 따로 있는 등 애매한 사이즈의 단일 공연장이란 특성은 늘 한계로 지적됐다. 2005년 LG그룹과 GS그룹의 분리로 센터가 있는 LG강남타워가 GS그룹 소유로 바뀌며 처지도 애매해졌다.

서남권 관객 발굴하고, 충성고객도 끌어온다
마곡 LG아트센터에 들어설 그랜드씨어터 공연장. /사진제공=LG아트센터마곡 LG아트센터에 들어설 그랜드씨어터 공연장. /사진제공=LG아트센터
이에 LG아트센터는 LG그룹이 마곡지구에 터전을 자리잡으면서 과감하게 이전을 결정했다. 마곡 LG사이언스파크 맞은편, 서울식물원 초입에 25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새로운 공연 공간을 마련한다. 국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 설립한 취지에 맞게 20년 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채납한다.

LG아트센터는 세계적인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아 화제를 낳기도 했다. 1335석의 그랜드 씨어터와 함께 다양한 공연이 가능한 블랙박스까지 2개의 공연장을 갖췄다. 심우섭 대표는 "서울시와 논의하며 공원에 공연장을 유치하는 방향으로 뜻을 모았고, 과학관과 시너지를 내기로 결정했다"며 "과학과 예술, 자연이 어우러지는 곳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곡 LG아트센터 로비게이트아크. /사진제공=LG아트센터마곡 LG아트센터 로비게이트아크. /사진제공=LG아트센터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던 것은 아니다. 신도시인 마곡이 아직 문화 불모지인데다, 공연예술 중심지인 강남을 바탕으로 형성된 탄탄한 충성관객을 마곡으로 이끌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공연계에서 나왔다. LG아트센터는 마곡의 교통접근성과 성장속도를 고려하면 기존 관객유입은 물론 신규 관객까지 발굴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현정 국장은 "마곡은 서울역와 강남에서 지하철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이라며 "낯선 이미지에서 오는 심리적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마케팅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우섭 대표는 "마곡은 유동인구만 30만에 달하고 1인가구가 42%나 되는 젊은 도시"라며 "잠재력에 비해 문화예술 인프라가 열악해 고민이 있었지만, 이면의 기회와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