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넷플릭스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인 아버지가 눈앞에서 무참히 살해당했다. CCTV에 범인의 형체가 찍혔지만,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경찰은 수사를 진척시킬 의지조차 없다. 결국 범인을 찾아내 아버지의 복수를 직접 하겠다는 일념으로 범죄조직에 들어가고, 새로운 신분으로 위장해 경찰 내부에 잠입한다.
넷플릭스 8부작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네임'을 관통하는 스토리다. 쉽게 정리하자면 언더커버를 소재로 한 복수극. 진부한 클리셰가 나열되지만, '마이네임'이 여느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영역은 아주 명쾌하다. 주인공인 지우(한소희)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유사 장르에서 늘 수동적 존재로 소비되던 여성 캐릭터를 극의 한가운데로 옮겨온 시도는 분명 주효했다. 여성 중심의 서사로도 이만한 작품을 군더더기 없이 완성시킨 것과 함께 그 중심에 배우 한소희가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다. 한소희는 지난해 JTBC '부부의 세계'의 조연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8부작이라는 긴 회차의 러닝타임을 대부분 이끌며 무한한 가능성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특히 대역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상당한 양의 액션신을 직접 소화한 것과, 이같이 강렬한 장면들을 소화하기 위해서 운동을 통해 체중을 10kg을 증량한 사실 등은 크게 주목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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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도(안보현)가 지우를 향한 믿음을 갖거나 거두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이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오혜진'이 거짓 신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교감을 나눴다고 생각한 시간이 모두 거짓으로 귀결돼 분노와 배신감이 몰려오는 것은 자명했다. 전필도가 "네 진짜 이름이 뭐냐?"라고 사무쳐 묻는 장면이 거듭해 강조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해당 장면은 이 작품이 이름으로 대변되는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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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를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초현실적인 악몽의 미장센도 인상적이다. 지우의 거의 유일한 웃음이 깃든 아버지와의 추억 속 바닷가조차 꿈속에선 한낱 절망의 공간으로 돌변한다. 아버지 살해를 목격한 그날의 집, 동천파에 들어가 끔찍한 일을 당할 뻔한 체육관과 자신이 살해한 이의 환영이 한데 뒤엉켜 지우의 내면을 끔찍하게 뒤흔든다. 고작 고등학생의 나이에 부친의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는, 오기로 단련된 강인한 외면과 달리 끔찍하게 훼손된 상처 가득한 내면을 투영한다. 복수를 위해 치닫는 지우가 시간이 갈수록 상실하는 인간성은 바로 이것에 근거한다.
'D.P.'와 '오징어 게임'에 이어 선보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시리즈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적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된 작품이 '마이네임'이라서 다행이다. 리얼한 액션과 섬세한 심리 묘사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멋진 여성 서사가 한소희라는 배우를 만나 빛을 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마이네임'은 한소희라는 이름 석 자를 전 세계 시청자에게 또렷하게 각인시킨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