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르윈스키가 지난달 미국 드라마 TV시리즈 '탄핵' 공동 연출자로 홍보 행사게 모습을 드러냈다./사진=AFP
'클린턴의 그녀'였던 모니카 르윈스키(당시 25세) 역시 이 사건으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언론의 관심이 쏟아져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백악관 불륜녀'로 전 세계에 얼굴이 알려져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백악관에 입성한 22세 인턴, 4개월만에…
모니카 르윈스키 인턴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을 당시 모습/사진=AFP
르윈스키는 백악관 입성 4개월 만인 1995년 11월 대통령과 비밀스러운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당시 클린턴의 나이 49세, 르윈스키는 22세였다. 클린턴 비서실 간부들은 특별한 용무도 없이 대통령 집무실 주변을 맴도는 르윈스키가 영 못마땅했다. 1996년 4월 르윈스키를 국방부로 보냈지만 둘의 밀회는 1997년 3월까지 약 17개월간 이어졌다.
르윈스키는 백악관에 입성한 지 4개월만에 클린턴과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사진=로이터
르윈스키와 클린턴의 관계가 시작된 1995년 11월 15일 이틀 뒤에 찍은 사진/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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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윈스키 본인과 트립이 흘리고 다닌 염문은 워싱턴 정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당시 클린턴을 상대로 성희롱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전 아칸소 주정부 직원 폴라 존스의 변호인단에 포착됐다. 존스의 변호인단은 클린턴의 여성 편력 사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르윈스키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법원에 요청하기도 했다.
르윈스키가 변호인단과 함께 법원을 오가고 있다./사진=AFP
클린턴은 언론 보도와 특검 수사 등에서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인하는 등 거짓말을 하면서 변호사 자격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하원에서 탄핵된 역대 두 번째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탄핵안이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소속 정당인 민주당은 텍사스·아칸소 등에서 지지세력을 잃었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앨 고어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에게 패한 것은 클린턴에 대한 유권자들의 혐오감이 빚어낸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이는 직장 내 성희롱으로 당사자 뿐 아니라 조직 이미지까지 실추되는 현상을 '르윈스키 효과'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책 출간·방송 출연, 다이어트 모델에 가방사업까지
르윈스키가 1999년 발간한 자서전 '모니카 이야기'와 서점에서 이 책을 구입하고 사인을 받으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사진=AFP
책 출간과 방송 출연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유명세로 취직 등 일상 생활이 불가능했다. 지퍼게이트 당시 법정에 불려 다니며 쓴 변호사 비용을 감당하는 것 조차 힘들었다.
(사진 위)르윈스키가 다이어트 스토리로 래리킹 토크쇼에 출연하고 있다. (사진 아래 왼쪽) 체중이 불어 은둔생활을 하던 시절, (오른쪽) 가방 사업가로 활동하던 모습/사진=AFP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르윈스키는 2000년 가방 디자이너로 변신해 자체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2000년대 초반엔 지큐·맨즈헬스 등 남성 잡지 행사의 단골 초대손님으로 불려 다니기도 했다. 클린턴 퇴임 이후 르윈스키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점점 약해졌다. 그는 2004년 영국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석사과정을 밟았다.
"22세에 실수 안 한 사람 있나요?"…평생 꼬리표 달고 당당한 '셀럽' 행보
지난 2014년 미 경제지 포브스지가 주최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르윈스키/사진=로이터
지퍼게이트 스캔들 이후 16년만인 지난 2014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주최한 행사 연설자로 대중 앞에 선 르윈스키는 "22세에 실수 한번 안 해 본 사람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포문을 연 뒤 "나는 22세에 상사였던 대통령과 사랑에 빠졌으며 지금은 많은 이유로 그 일을 깊이 후회한다"고 말했다.
르윈스키는 연예·미디어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셀러브리티(유명인)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사이버 폭력 첫 희생자 였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2020년 연예 정보 월간지 베니티 페어가 주최한 오스카 에프터 파티에 참석한 르윈스키/사진=AFP
세상의 반응은 달라졌다. 과거 그를 조롱했던 방송인들의 공식 사과가 잇따르고 있으며, 젊은 여성들은 르윈스키에게 지지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가 출연한 행사가 끝나면 '셀카'를 찍자고 달려가고 소셜미디어(SNS)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르윈스키는 '클린턴의 그녀'라는 평생 떨어지지 않는 꼬리표를 가슴에 달고 2021년을 살고 있다.
르윈스키는 각종 행사에 초청돼 강연자로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사진=AF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