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조 점거중인데, 노조도 파업권 확보…'설상가상' 현대제철

머니투데이 김도현 기자 2021.10.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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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점거한 후 직고용 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모습.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점거한 후 직고용 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선 모습.


현대제철 노조가 쟁의권을 확보했다. 현대제철은 철강업계에서 유일하게 임단협을 체결하지 못했다. 비정규직지회의 당진제철소 불법점거가 장시간 이어지는 상황에서 자사 노조와의 갈등이라는 또 다른 리스크를 안게 됐다.



13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 노사를 둘러싼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이 중지됐다. 중노위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지난 12일 협상에서도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최종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앞서 현대제철 노조는 6일부터 8일까지 조합원들의 파업 의사를 묻는 찬반투표를 5개 사업장별로 실시했다. 금속노조 산하 현대제철 사업장 지회별로 회사와 개별 협상을 벌이기 때문이다. 가장 규모가 큰 충남지부 현대제철지회는 전체 조합원(4130명) 중 71.2%(2940명)가 찬성표를 던졌다. 인천(93.8%)·포항(93.5%) 등 전 사업장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했다.



현대제철 노조는 조합원 투표 결과와 중노위의 조정중지 결정이 나옴에 따라 파업을 실시할 수 있는 쟁의권을 확보하게 됐다. 현대제철 노조 각 지회는 이날부터 '쟁의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다. 쟁의권을 확보했다고 곧바로 파업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쟁의권 확보는 금년도 임단협 협상 중 언제든 파업에 나설 수 있는 법적 권리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업계도 현대제철 노조가 즉각적인 파업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한 관계자는 "현대자동차그룹은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고수한다"면서 "자칫 임금 인상분보다 더 큰 손실이 노동자들에 가해질 수 있어, 노조도 쉽사리 파업에 나서긴 힘들 것이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노조가 쟁의권을 쥔 만큼 임단협 협상에서 회사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임단협을 올 4월에야 체결했다. 지난 7월 현대제철 노사가 △통상시급 32.7% 인상 △4조 2교대 전환 등이 골자인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노조 투표에서 부결됐다. 현재 노조는 만큼 기본급 9만9000원 인상, 생활안정지원금 300%, 노동지원격려금 700만원 등을 요구 중이다. 현대제철은 실적이 개선되고 있지만, 원자재가 급등 등 불확실성이 여전히 잔존한 만큼 대대적인 임금인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대제철 노사의 임단협이 난항을 겪으면서 연말 혹은 작년과 같이 해를 넘길 것이 유력시 되는 실정이다.


현대제철은 협력업체 근무자들의 불법점거도 이어지고 있다. 자회사를 설립해 하청업체 직원들을 고용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으나, 일부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현대제철의 직고용과 정직원 수준의 처우를 요구하며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점거 중이다. 이들의 점거는 8월 23일 시작됐으며, 지난달 24일 법원이 퇴거명령에도 점거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점거는 민주노총 총파업이 예고된 오는 20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지도부는 각 지회·지청에 전체 사업장에서 2시간 이상의 총파업을 실시하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로 모이라는 내용의 지침을 하달했다.

현대제철이 경찰에 사태 해결을 요청했으나, 현재까지 경찰은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충남경찰청 측은 "법원의 퇴거 명령이 나옴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열고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 중이다"면서도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와 협력사 대표단의 교섭이 당국의 중재아래 이뤄지고 있는 만큼 자율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현대제철은 자사 노조와는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이견을 좁힐 수 있지만, 비정규직지회와는 대화에 나설 수 없다. 점거한 노동자들이 현대제철 자회사 입사를 거부해 여전히 협력업체 소속인 까닭에 교섭권이 없는 상태로 대화에 나섰다가 고용관계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불법 파견 논란에 휘말릴 수 있어 현대제철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길 지양하고 있다.

현대제철 노조와 비정규직지회 간 노노 갈등 가능성도 확대된다. 양측 모두 금속노조 소속이지만, 현대제철 노조 내부에서는 비정규직지회의 정직원 수준의 처우 요구를 못마땅해 한다는 후문이다. 이들의 점거사태가 원만히 해결돼도 당진 사업장 내에서 함께 근무해야 하는 이들 사이의 내색하기 힘든 '잠재적 갈등 관계'가 작업장 내 갈등의 도화선이 되거나, 작업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편, 현대제철을 제외한 주요 철강사들은 금년도 임단협을 마쳤다. 모두 잡음 없는 '무분규 타결'을 이뤄냈다. 4월 동국제강이 주요 철강사 중 처음으로 임단협을 체결했으며, 7월에는 세아제강이 임단협 협상을 타결했다. KG그룹에 합류한 뒤 처음으로 실시된 KG동부제철 임단협은 8월에 마무리됐다. 포스코는 지난달 무교섭 타결 조인식을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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