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은 왜 자꾸 한국전쟁으로 '국뽕 영화'를 만들까? [차이나는 중국]

머니투데이 김재현 전문위원 2021.10.1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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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장진호' 영화포스터/사진=중국 인터넷'장진호' 영화포스터/사진=중국 인터넷


중국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현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다. '장진호'는 상영 7일 만에 박스오피스 매출 30억 위안(약 5400억원)을 돌파했으며 중국 영화 사상 14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패왕별희'의 천카이거, 쉬커, 린차오센 등 스타감독 3명이 함께 메가폰을 잡았다.

'장진호'는 1950년 11월 개마고원 장진호 부근까지 진격한 미국 해병대 1사단(1만5000명)이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사단(12만명)에 포위된 가운데 17일간 벌어진 전투를 다뤘다. 당시 미 해병대 1사단은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혹한 속에서 극적으로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약 1만7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중공군 사상자는 이보다 많은 4만8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중공군은 동상으로 인한 사상자가 3만명에 육박할 만큼 혹한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 중공군의 피해가 더 컸음에도 중국은 장진호 전투가 한국전쟁의 방향을 전환한 결정적인 전투였다고 선전하고 있다.

'장진호' 평점/사진=도우반 홈페이지 캡처 '장진호' 평점/사진=도우반 홈페이지 캡처
러닝타임이 176분에 이르는 '장진호'는 중국 리뷰전문사이트인 '도우반'에서 평점 7.6을 기록했다. 일부 기사에서 말하는 영화 평점 9.5는 부풀려진 것으로 그 정도로 영화가 극찬받는 건 아니다. 영화 종영 후 거수경례를 하는 관객도 일부 있지만, 중국 관객들이 전부 '국뽕'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우반의 한 네티즌은 천카이거, 쉬커 및 린차오센 등 3명의 감독이 헐리우드 대표 감독인 마이클 베이를 흉내냈지만, 액션신은 수준미달이고 감정 묘사가 약하다는 평을 내놨다. 이처럼 상당수 중국 관객들이 '장진호'를 정치영화로 인식하고 있지만, 많은 중국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감동할 만큼 대히트를 친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항일전쟁 드라마와 르번구이즈(日本鬼子)
'장진호' 열풍을 보면서 떠오른 건 중국만의 독특한 드라마 장르인 '항일전쟁(중일전쟁) 드라마'다. 중국에 있을 때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항상 마오쩌둥이 팔로군(八路軍)을 이끌고 항일전쟁을 하는 드라마가 나왔다.

처음에는 가끔 이런 것도 하나보다 하고 봤는데, 가끔이 아니었다. 아무 때나 채널을 돌려봐도 중국중앙(CC)TV 혹은 지방방송 채널 몇 개에서 항상 항일전쟁 드라마가 방영중이었다. 항일 드라마에서 중국인들은 일본군을 르번구이즈(日本鬼子·일본귀신)라고 불렀는데, 구이즈는 침략자를 비하하는 호칭이다.


그제서야 일본이 패망한 지 60~70년이 지난 후에도 방영 중인 항일드라마가 중국공산당의 선전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항일드라마를 통해 1949년 '신'중국 건국이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을 통해 가능했다는 점을 줄곧 선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가상의 주적(主敵)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한 일본을 외부의 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영화에서 미국을 적으로 다루지 않던 중국이 미국을 주적(主敵)으로 등장시키기 시작했다. 지난 9월 30일 개봉한 '장진호', 그리고 지난해 10월 개봉 후 최근 국내 수입허가로 논란이 된 영화 '1953 금성 대전투'(원제 '금강천')가 대표적인 사례다.

'1953 금성 대전투'는 휴전 협정을 앞둔 1953년 7월 금강천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지켜야 하는 중공군과 이를 공습으로 파괴하려는 미군과의 대결을 다룬 영화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한국전쟁을 다뤘지만, 국군(한국군)과 북한군은 나오지 않으며 중공군과 미군의 대결이 주요 내용이라는 점이다.

시기를 따져보면 2018년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후 중국이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애국주의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걸 알 수 있다. 지난 4일 바이든 행정부가 공개한 대중 무역정책도 트럼프 전 행정부와 다르지 않은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등 미중 경쟁은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왜 중국은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전쟁'이라 부르나?
중국 정부는 향후 장기간 미중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중국은 미중 경쟁에서 중국이 이길 수 있다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과거 사례가 바로 한국전쟁이다. 중국이 실전에서 미국과 교전한 전쟁은 한국전쟁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국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통해 한국전쟁 때 미국을 물리쳤으며 현재 진행형인 미중 경쟁에서도 미국을 꺾을 것이라는 걸 선전 또는 세뇌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하고 조선을 돕는다) 전쟁이라고 부를까? 한국전쟁이 중국에게 가지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이걸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북한을 돕는 '원조'가 아니라 미국에 대항하는 '항미'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내고 1949년 10월 1일 텐안문 광장에서 신중국 설립을 선언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 마오쩌둥은 병력을 정비하며 대만해협을 넘는 대만진공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부패와 무능으로 인해 중국 대륙을 공산당에게 넘겨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이 발표한 미국의 극동방위선(애치슨 라인)에서도 대만은 제외됐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 TV가 공개한 마오쩌둥의 참전결정 문건/사진=중국중앙(CC)TV 캡처중국 TV가 공개한 마오쩌둥의 참전결정 문건/사진=중국중앙(CC)TV 캡처
그런데 한국전쟁 발발 이틀 후인 6월 27일 미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 제83호를 이끌어 내며 유엔군 파병을 성사시켰고 미 해군 최대 전력인 제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보내 중국의 대만공격을 사전에 차단했다. 중국 입장에서는 내전을 종식시키고 통일할 수 있었던 기회가 사라진 셈이다.

당시 갓 출범한 신생국가인 중국에게 미국은 넘지 못할 거대한 산이었다. 항일전쟁에서 천신만고 끝에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겨우 승리했는데, 그런 일본을 굴복시킨 나라는 미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GDP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달할 정도로 미국 국력은 막강했다.

중국은 당시 항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거치면서 경제가 완전히 거덜난 자국이 경제규모가 수십 배 큰 미국을 상대로 한 한국전쟁에서 애를 먹인 것만 해도 승리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장진호'에는 마오쩌둥이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를 언급하며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한을 자유진영의 맹주인 미국과의 직접 대치를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중국의 지정학적 '완충지대론'도 중국의 참전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나타낸다.

변했다가 다시 변한 미중관계
中은 왜 자꾸 한국전쟁으로 '국뽕 영화'를 만들까? [차이나는 중국]
미중 관계를 살펴볼 때, 흥미로운 사실은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우호적인 관계로 전환됐던 미중 관계가 다시 대결국면으로 진입했다는 점이다. 미소대립이 격렬했던 70년대초 닉슨 대통령과 안보보좌관인 키신저는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중·소 분쟁을 겪고 있던 중국 역시 모스크바에 대항하기 위해 통일전선을 구축하고자 했기 때문에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1979년 미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인 개혁개방에 나섰던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위협할 만큼 강해지면서 양국 관계는 또다시 대결관계로 전환됐다. 1989년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1%에 불과했으나 미중 무역전쟁이 일어난 2018년 미국의 67.5%까지 증가했다.

현 상황에서 볼 때 미중 경쟁은 구조적인 문제이며 한동안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미중 경쟁이 지속되는 한 중국은 또다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애국주의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영화의 목적은 70여년 전 미국을 꺾었으며 현재 진행형인 미중 경쟁에서도 '중국이 승리할 것'이라는 선전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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