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청자는 이제 의미분석 게임중

머니투데이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10.0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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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재차 설명하는 건 입아프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봤고, ‘N차’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분석 놀이가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오징어 게임’ 속 각종 상징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디테일들이 주목받는 모양새다. ‘오징어 게임’,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

#왜 456일까?



‘오징어 게임’ 속 목숨을 건 게임의 우승 상금은 456억 원이다. 하지만 ‘456’이라는 숫자는 이 때 처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찬찬히 기억을 훑어 보라.

노모의 통장에서 돈을 빼내 친구와 함께 승마를 하러 간 기훈(이정재 분). 승리마를 맞춰 그가 받은 돈은 456만 원이다. 그리고 게임 참가자의 수도 456명. 그리고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최종 우승 상금 역시 456억 원이다.



왜 황동혁 감독은 456이라는 숫자에 집착했을까? 그 해석은 징검다리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게임 시작 전 참가자들에게 순번을 정할 기회가 부여된다. 앞서 나간 이들은 중간 번호를 먼저 택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관전자들은 "역시 중간 번호가 먼저 나간다. 동물들의 본성"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황 감독은 각종 인터뷰에서 "10년 전 이 각본을 썼을 때는 1000명이 참가해 100억 원을 두고 경쟁하는 거였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100억 원이 작은 돈이 돼 상금을 올렸다. 역대 로또 당첨금 중 가장 큰 금액을 찾아보니 초창기 400억 받은 분이 가장 크더라. 누군가의 해석을 보니 1과 10의 중간이라는 분석이 나오던데, 해석해준 분의 창의성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황 감독의 말보다 시청자들의 해석이 더 설득력있게 들리는 건 왜일까? 그만큼 시청자들이 ‘오징어 게임’을 단순한 재미를 넘어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며 진심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출처=영상 캡처사진출처=영상 캡처
#왜 빨간 머리일까?

‘오징어 게임’에서 우승한 기훈은 머리칼을 빨간색으로 염색한다. 미용실에서 벽면에 붙은 포스터를 본 후 이 같은 선택을 한다. 갑작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오징어 게임’에서 빨간색은 상징적이다. 이 게임의 진행자들은 빨간 옷을 입고 있다. 일종의 권력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기훈이 지하철에서 만난 남성과 딱지치기를 할 때도 게임 설계자의 일원인 이 남성은 빨간색, 기훈은 파란색 딱지를 갖고 겨룬다. 이 장면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을 두고 선택을 권하던 장면과 비교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된 후 456억 원이라는 거액을 갖게 된 기훈이 이제는 ‘부를 가진 권력자가 됐다’는 의미로 머리색을 바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황 감독은 "내가 기훈이라면 미용실에 앉아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를 고민했을 때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행동’을 할 것 같았다"며 "그 상황에서 기훈이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이 빨간 머리로 염색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기훈의 분노가 내재돼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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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벽면에 게임이 그려져 있었을까?

‘오징어 게임’이 진행되는 내내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는 ‘다음 게임은 무엇일까?’였다. 의료 사고를 저지르고 나락에 빠진 의사는 죽은 이들의 몸에서 몰래 장기를 적출해주는 대가로 다음 게임의 종목을 미리 들었다. 그런 경우 팀원 구성 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은 시청자들은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456명의 참가자가 자는 숙소의 벽면에는 그들의 참가하게 되는 종목이 이미 그려져 있다. 게임이 거듭돼 사망자가 늘고 그들이 자던 침대가 하나 둘 빠져나가고,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벽면에 그려진 종목이 훤히 드러난다.

이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건 ‘협동을 통한 인간다움을 중시하는 것’이란 해석이다. 징검다리 게임에서 강화유리와 일반유리를 구분할 줄 아는 기술자가 등장한다. 참가자들은 왜 미리 이를 알리지 않았냐고 성토하고 이 기술자는 "내가 왜요?"라고 반문한다. 누군가 죽어야 자신이 더 많은 상금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누군가는 벽면의 게임을 보고 다음 게임을 유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공론화해 함께 난관을 헤쳐나가려는 이들은 없었다. 결국 ‘오징어 게임’은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기훈이 승자가 되고, 끝까지 이기적인 상우는 죽음을 맞는다는 결말을 통해, 인간다움을 강조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벽면의 게임의 의미를 깨달은 누군가가 이를 이야기했다면 많은 이들의 허무한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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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때우시면 됩니다."

어릴 적 게임을 하면서 어린이들을 이런 말을 자주 쓴다. "죽었다" "살았다" 단순히 게임에 졌을 뿐인데, "죽었다"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은 이에 착안해 실제로 목숨을 건 게임을 제안한다.

‘오징어 게임’은 몸을 돈으로 치환하는 상징적 장면을 수시로 보여준다. 지하철에서 만난 남자는 기훈과 딱지를 치면서 질 때는 10만 원을 주지만, 돈이 없는 기훈에게는 "몸으로 때우라"며 따귀를 때린다.

사채업자들은 어떠한가? 기훈을 찾아와 결국은 신체포기각서를 받아간다. 돈을 못 갚으면 몸이라도 내놓으라는 아찔한 경고다. 게임의 진행자 몇몇은 부패한 의사와 손잡고 시체의 장기를 내다 판다.

결국 ‘오징어 게임’은 물질 만능주의, 배금주의 앞에서 땅에 떨어진 인간의 존엄성을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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