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년간 미국과 유럽의 대형 항공사들은 M&A를 통해 몸집을 키워왔다.
미국에선 2000년대 초반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9·11테러 등으로 여객 수요가 급감했고 항공사 실적이 악화하면서 규모의 경제를 위한 항공사 통폐합이 활발해졌다.
아메리칸항공은 2013년 US항공을 합병하면서 2008년 델타항공에게 내줬던 최대 항공사 타이틀을 다시 가져왔다. 합병으로 재탄생한 아메리칸항공그룹은 당시 50여개국, 330개 이상 도시에 매일 6500여편 이상의 운항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계 최대 항공사가 됐으며, 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 좌석공급량 기준 글로벌 1위 자리를 지켜왔다.
특히 아메리칸항공은 US항공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일부 공항의 노선 슬롯을 타 항공사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기업결합을 승인받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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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항공의 에어버스 A321-200 기종/사진=로이터통신
아메리칸항공과 US항공의 취항 노선 중 기업결합 이후 독·과점이 심화돼 '경쟁 제한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준'을 초과하는 노선이 1007개로 많다는 판단에서다. 두 항공사는 다수의 노선에서 서로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었으므로, 기업결합을 통해 경쟁구도가 없어지면 결과적으로 운임 및 부가서비스 요금 인상, 항공편수 감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송 제기 3개월이 지난 2013년 11월 12일 법무부와 아메리칸항공-US항공은 일부 공항의 노선 슬롯을 타 항공사에 매각(divestiture)하는 조건으로 이 사건을 화해종결했다. 이들 항공사들의 슬롯 점유율이 높은 워싱턴DC 로널드 레이건 공항에서 104개, 뉴욕의 라과디아공항에서 34개 슬롯을 LCC에 매각 처분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LA), 시카고, 댈러스, 보스턴, 마이애미 등 5개 도시 공항의 경우 이들 항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탑승 게이트(각 공항별 2개) 및 지상시설을 매각하도록 했다.
유럽연합(EU)은 항공사 간 기업결합을 두 차례 막는 등 독점 문제에 깐깐하게 대응해왔다.
EU는 2011년 그리스 1·2위 항공사(에게항공, 올림픽항공)의 통합을 두고 합병 시 그리스 항공시장의 90%를 점유하는 회사가 나타난다며 불승인했다. 그리스발 국제노선에는 시장 경쟁제한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그리스 국내 노선에서는 독점이 발생,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양사는 이후에도 합병을 재차 추진해 결국 기업결합을 승인받았다. EU 경쟁당국은 에게항공이 인수하지 않으면 올림픽항공이 빠른 시일 안에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며, 에게항공 외에는 올림픽항공을 인수할 사업자가 없다는 이유로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이른바 '회생 가능성' 고려인데 이는 아시아나항공 사례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항공업체가 합병을 추진하다 스스로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4월 에어캐나다는 EU의 기업결합심사 과정에서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요구한 시정방안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에어트랜젯 합병을 자진 포기했다.
에어캐나다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6월 에어트랜젯 인수합병을 발표했다. 항공 산업이 호황기였던 시기에 인수를 추진한 것이다. 이후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EU의 기업결합심사 관련 시정방안 요구를 통합 무산의 '명분'으로 삼은 것으로 항공업계는 보고 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협상 부결로 에어캐나다는 에어트랜젯에 1250만 캐나다달러(약 112억원)를 위약금으로 지급했는데 해당 위약금이 EU 설득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비용보다 낮은 것으로 봤다"면서 "에어캐나다의 에어트랜젯 인수 포기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포기나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 등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