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넷플릭스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제작 싸이런픽쳐스)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 게임에 도전하는이야기를 그린 작품.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황동혁 감독이 2008년 때 구상하고 이듬해 대본을 완성했던 이 위험천만한 게임은 13년이 지난 지금에야 대중 앞에 정체를 드러내게 됐다.
‘오징어 게임’ 역시 이 공식을 철저히 따라간다. 하여 동류의 콘텐츠와 비슷한 설정들이 여럿 보인다. 압도적인 빚에 떠밀려 게임에 참가하는 것은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밤마다 펼쳐지는 살육전은 ‘배틀로얄’을, 팀을 맺어 게임에 임하는 것은 같은 넷플릭스 플랫폼의 ‘아리스 인 보더랜드’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작품 속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일본 만화이자 영화 ‘신이 말하는 대로’의 첫 번째 게임 ‘다루마상가코론다(달마 씨가 넘어졌다)’와 겹치면서 표절 이야기까지 고개를 들었다. 물론 이에 대해 황 감독은 우연의 산물이며, 굳이 따지자면 본인이 원조라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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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신선한 설정의 힘은 어린아이들의 놀이를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생결단으로 치환한 것까지다. 무엇보다 미션에 있어 별다른 변주가 없어 아쉽다. 딱히 놀이의 스케일을 키운 것도 아니고, 방식에 독특한 규칙을 첨가한 것도 아니다. ‘패배하면 죽는다’는 벌칙을 부가됐을 뿐, 70~80년대 유행했던 놀이들이 그 모습 그대로 펼쳐진다. 현재 40~50대가 어린 시절 해봤을 게임의 재미가 20~30대에게 어느 정도 공감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어린아이들도 할 수 있는 놀이이니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 출신이자 쌍문동의 자랑이라는 조상우(박해수)의 대단한 지략이 빛날 일이 없다. 파워 대결도 싱겁다. 조폭 출신 장덕수(허성태)를 중심으로 뭉친 양아치 집단이 모두를 제압한다. 적어도 나름의 정의감이 남아있는 운동선수 출신 참가자가 대립각이라도 세웠다면 보다 긴장감이 맴돌지 않았을까? 데스매치물의 재미는 결국 미션이 9할을 차지하는데, 전반적으로 이를 살려내는데 실패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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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회를 향한 메시지는 나름 힘을 갖췄다. 황금만능주의와 불공평한 사회구조, 이른바 수저론을 겨냥하는 칼날은 시각적인 연출부터 중심인물의 대사를 통해 가감 없이 이빨을 세운다. 술래의 눈을 피해 결승선을 통과하려는 참가자들의 안간힘은 오늘도 일터로 발길을 향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생존을 위해서라지만 타인을 밟고 일어서는 모습은 물질 앞에 훼손되고 있는 우리의 인간성을 대변한다. “우리가 빚을 졌지, 죄를 진 건 아니잖아”라는 외침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과 함께 공허한 메아리처럼 사그라든다.
나아가 주최 측에도 계급은 존재하고, 부패가 진행된다. 참가자들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주장하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실 게임이 시작됐을 때부터 각 인물들 간의 직업도, 가진 능력도 모두 달랐다. 이미 사회화를 끝낸 성인인 이상 각자 들고 있었던 수저의 색깔은 다른 셈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엔 여타 데스매치물에서 보기 힘든 아주 매력적인 계약 조항이 하나 있다. 바로 과반수가 동의하면 그 자리에서 게임을 멈출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도전자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상금과 목숨값을 저울질한다. “현실이 더 지옥 같다”는 전제 아래 치킨 게임을 하는 셈이다. 게임 속 사회가 실제 사회의 거울이라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경쟁을 펼치고 있는지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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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실종된 형을 찾기 위해 게임에 잠입한 황준호(위하준)의 존재감이 매우 희박하다. 주최 측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월드 클래스의 배우까지 배치했지만 그저 반전의 임팩트만 있을 뿐, 뿌려놓은 떡밥을 다 회수하지 못한 채 허무한 발버둥에 그치고 만다. 시즌 2를 위한 복안일 수도 있겠으나 공감하기 힘든 엔딩과 맞물려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물음표만 남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빈약한 설정이 발목을 잡았을 뿐, 낮선 장르를 향한 도전은 박수받을 만하다. 가능성도 충분히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 번 결제로 언제든지 접근 가능한 OTT 콘텐츠이니 꼭 한 번의 시청을 권하고 싶다. 연출과 영상은 흠잡을 곳이 없고, 이정재의 변신과 연기력은 작품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정호연, 이유미 등 평소 자주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나아가 ‘기생충’, ‘옥자’의 지휘봉을 잡았던 정재일의 음악 연출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OST를 발매하는 것엔 분명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