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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l 각자도생의 기쁨과 슬픔 ②

머니투데이 김수정(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1.09.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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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사진제공=넷플릭스




당신은 지금 벼랑 끝에 섰다. 다니던 회사에선 하루아침에 잘렸고, 야심 차게 치킨집을 차렸지만 망했다. 급기야 사채까지 끌어당겨 썼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악착같이 모은 돈을 들고 경마에 탕진하기 일쑤다. 대책 없이 허황된 꿈만 꾸지만 현실은 그저 동네 백수다. 이 놈의 인생, 대체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죽기 전에 사람 구실 좀 할 수 있을까. 자, 당신은 게임에 참가해 살아남으면 456억 원을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받는다. 참가하시겠습니까?

넷플릭스 9부작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은 주인공 기훈(이정재)이 위와 같은 제안을 받으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게임에 참가하고, 참가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오징어게임’은 이 게임에 참가한 이들이 어떻게 살아남으려 분투하는지. 어떻게 서로를 믿고 속이는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얼마큼 추악해지는지에 밑줄 긋는다.

‘오징어게임’의 세상은 단순하지만 잔혹하다. 총 6개의 게임을 통과해 끝까지 살아남은 우승자에게는 무려 456억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을 뜻한다. 참가자는 456명. 내 옆의 동료 한 명이 죽을 때마다 누적 상금액은 1억 원씩 늘어난다. 그렇게 455명을 죽이고 내가 살아남아야 최종 상금 456억 원을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잔인한 게임이지만 게임 방법은 단순하고 친근하기까지 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등 우리가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즐겁게 했던 게임 6개가 등장한다.



사진제공=넷플릭스사진제공=넷플릭스
‘오징어게임’에서 신선했던 것은 알록달록한 프로덕션도, 한국 드라마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살육게임이라는 설정도 아니었다. 6개 스테이지 각각의 게임 방법이었다. 최약체일 거로 생각했던 동료가 지혜를 발휘하는 순간, 가장 믿을 만한 동료의 목숨줄을 끊어야 하는 순간, 떨어지는 땀방울에서 힌트를 얻는 순간까지. 영화 ‘큐브’처럼 수학적으로 복잡하게 설계된 게임은 아니지만, 단순하기에 오히려 더 드라마틱했다. 목숨을 다해 이 순진무구한 게임에 뛰어드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쟤가 죽어야 내가 살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한번 질문. 당신은 죽지 않기 위해, 456억 원을 얻기 위해 동료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까? 손을 건넬 수 있습니까?

‘오징어게임’은 인생이 과연 각자도생해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기훈과 상우(박해수)의 대비는 그래서 중요하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사이지만 기훈과 상우의 인생은 180도 다르다. 공고를 졸업해 공장에 취업했지만 그마저도 잘리고 도박 인생을 사는 기훈. 서울대를 졸업하고 증권사에 다니며 성공 가도를 달리지만 고객의 돈을 불법으로 투자했다가 빚더미에 앉은 상우. 얼핏 기훈은 실패한 인생, 상우는 성공한 인생 같아 보이지만 삶의 태도는 정반대다. 기훈은 옳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다. 가방끈은 짧지만, 무엇이 염치 있는 삶인지 그렇지 않은 삶인지를 안다. 남의 것을 거짓으로 빼앗아 내가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기훈의 선택지에는 없다. 상우는 그런 기훈을 보며 약지 못해 실패한 인생이라 말한다. 이러한 두 사람의 극명한 태도는 서바이벌 게임 안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이를 보며 우리는 스스로 묻는다. 나는 기훈인지, 상우인지를. 무한 경쟁과 혐오가 극심해지고 바이러스로 고립된 삶을 사는 지금, ‘오징어게임’이 던진 메시지는 우리 스스로가 한 번쯤은 깊게 되돌아봐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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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메시지와는 별개로 작품 자체 재미와 완성도는 기대치에 못 미친다. 앞서 언급한 ‘큐브’나 ‘헝거게임’, ‘배틀로얄’, ‘신이 말하는 대로’ 등 비슷한 다른 작품과의 유사성은 사실 서바이벌 살육 게임이라는 소재를 가져온 이상 피해갈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오징어게임’을 채우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둘러싼 드라마가 진부했다. 주인공 기훈과 상우의 이야기는 작품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 외의 주변 인물 구축은 분명 아쉬웠다. 더 섬세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기능적으로 소모된 새터민, 외국인 노동자 캐릭터를 대중은 더는 그러려니 하며 넘기지 않는다. 특히나 한미녀(김주령)와 덕수(허성태) 스토리는 과연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정말 필요한 캐릭터였는지 묻고 싶다.

사설이지만, ‘오징어게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미쟝센은 9화 속 이정재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다른 그 어떤 복잡한 설정이나 세트보다도 바로 그 장면에서 ‘오징어게임’ 속편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저 범상치 않은(?) 머리를 한 기훈이라면 분명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감. 1편보다 한발 더 나아간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인 기대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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