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에 제가 빠지면 영 섭섭하쥬"

머니투데이 세종=최우영 기자 2021.09.1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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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바다이야기, 어록(魚錄)⑭] 대한민국 관혼상제의 단골손님 '조기'

편집자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우리나라 물고기,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추석 차례상에 제가 빠지면 영 섭섭하쥬"


추석 차례상을 차릴 때의 원칙 중 하나는 '어동육서'다. 생선은 동쪽으로, 육고기는 서쪽으로 놓으라는 뜻이다. 때로는 감성돔이나 참돔 같은 도미류를 올리는 집도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특이하게 상어나 문어를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전국 공통으로 올라가는 몸이 있다. 유려한 빛깔과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조기'다.



넙치(광어)만큼 횟집에서 인기 있는 종도 아니고, 도미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생선도 아니다. 하지만 조기는 우리나라 사람 누구에게나 가장 친숙한 어종이다. 연예인으로 따진다면 신동엽이나 유재석만큼 하늘을 찌르는 인기는 아니지만, 국민 누구나 오랫동안 알고 지내 친숙한 이미지를 지닌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다.

'소금에 절여 먹는' 대표 생선
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굴비 등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뉴스1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굴비 등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사진=뉴스1
조기를 먹는 대표적인 방법은 '굴비'다. 굴비는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을 뜻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자린고비'(절인 굴비)가 나왔다. 구두쇠가 반찬값을 아끼기 위해 천장에 매달아놓은 굴비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는 옛 이야기다. 옛날에는 조기를 굴비로 만들 때 지푸라기를 이용해 엮어 서까래 등에 매달았다. 이 때문에 '굴비 두름 엮듯이 한다'는 표현도 생겼다.



이 같은 식습관은 조기가 잡히는 시기와 관련돼 있다. 조기는 주로 한여름인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어획된다. 겨울철에 제주 남쪽에서 지내다 봄이 되면 북상해 서해 연안까지 오는 어종으로, 가을이 되면 다시 남하한다. 옛 사람들은 매년 4월이면 어김없이 북상하는 조기를 빗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에 대해 '조기만도 못한 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주 어장인 서해, 서남해에서는 주로 고온다습한 시기에 조기를 잡을 수밖에 없다. 이 떄문에 부패하지 않도록 소금을 이용해 염장하고 해풍에 건조시키는 가공법이 발달해 굴비가 된 것이다.

어민들은 조기가 한 상자에 몇줄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7석(7줄), 8석(8줄) 등으로 구분하거나 마릿수에 따라 100미, 120미 등으로 구분한다. 많은 수가 들어갈수록 씨알이 작고 상품성이 낮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 상자에 160마리씩 들어가는 작은 조기는 '깡치'라 부르며 하품으로 취급 한다.


이자겸의 후회 "내가 왜 개경에 살았을까"
전남 영광군 법성면 가림씨푸드 굴비 가공공장.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전남 영광군 법성면 가림씨푸드 굴비 가공공장.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조기가 우리나라에서 널리 이용된 것은 오래 됐다. '서해의 조기, 동해의 명태'라고 할만 하다. 고려 인종 4년(1126년) 반란을 일으켰던 척신 이자겸은 척준경에게 진압돼 정주(현 전남 영광)으로 유배됐다. 이자겸은 이때 굴비를 처음 먹어보고는 "이 맛을 모르고 개경에 살았던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요즘도 인기 절정인 '영광 굴비'의 저력이 이미 고려시대부터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굴비'라는 이름을 이때 이자겸이 붙였다는 설도 있다. 유배지인 정주에서 말린 조기를 먹은 뒤 이를 임금에게 진상하면서 정주굴비(屈非)라는 문구를 동봉했다는 것. 비록 반란에는 실패했지만 자신의 뜻을 아니(非) 굽히겠다(屈)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떄부터 말린 조기를 굴비라고 불렀다는 '믿거나 말거나'.

조선 후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조기를 '석수어'(石首魚)라고 표현한다. 정약전은 "양과 맛이 민어를 닮았으나 민어보다 몸은 작으며, 알은 젓을 담는 데 좋다"며 조금 큰 놈을 보구치, 조금 작은 것을 반애(盤厓), 가장 작은 것을 황석어(黃石漁)라고 구분했다. 조기는 민어와 마찬가지로 농어목 민어과에 속한다.

짐승도 아닌 것이 잡으면 울어댄다
보구치는 물 밖으로 나와서 내는 특유의 '벅벅' 울음소리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사진=최우영 기자보구치는 물 밖으로 나와서 내는 특유의 '벅벅' 울음소리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사진=최우영 기자
이시진의 본초강목(1596년)에서는 조기에 대해 "물에서 나오면 울음소리를 낸다"고 기록했다. 이는 산란기 조기의 특징이다. 조기는 부레를 이용해 '꾸르르'하는 소리를 낸다. 민어과 어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특히 조기의 일종인 보구치(백조기)의 경우 '벅벅'하며 우는 소리가 다른 조기보다 크게 느껴지는 경우가 잦다. 이 때문에 이름이 '보구치'가 됐다는 말도 있다. 보구치는 이 소리를 이용해 무리와 소통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연안에 사는 조기 5형제
우리나라에서 주로 잡히는 조기는 참조기, 부세, 보구치, 수조기, 흑조기가 있다. 이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참조기다. 죄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다.

조기류의 대표격인 참조기. /사진=국립수산과학원조기류의 대표격인 참조기.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참조기(Larimichthys polyactis)는 이마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유상돌기가 있다. 가장 비슷한 부세보다는 개체 크기가 작은 편으로, 최대 40㎝ 가량까지 자란다. 다만 양식 참조기의 경우 이마의 돌기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부세. /사진=국립수산과학원중국인들이 사랑하는 부세. /사진=국립수산과학원
부세(Larimichthys crocea)는 최대 75㎝까지도 자란다. 참조기와 달리 머리가 전체적으로 둥글고 매끈하며 돌기가 없다. 국내에서는 참조기보다 인기가 많지 않았으나 황금색 외양 때문에 중국인들이 즐겨 찾으며 가격이 올라갔다. 이 때문에 중국 불법조업 어선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아가미 뚜껑 위의 검은 반점이 특징인 보구치. /사진=국립수산과학원아가미 뚜껑 위의 검은 반점이 특징인 보구치. /사진=국립수산과학원
보구치(Pennahia argentata)는 백조기로 많이 불린다. 아가미 뚜껑 위쪽으로 큰 흑색 반점이 있으며 입 안은 흰 색이다. 등쪽은 연한 회색, 그 밖의 부분은 은백색을 띤다.

수조기. 간혹 경남 통영 등지에서는 이를 부세라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엄연히 다른 종이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수조기. 간혹 경남 통영 등지에서는 이를 부세라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엄연히 다른 종이다.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수조기(Nibea albiflora)는 지역 방언으로 반어나 부세라고도 부르지만 진짜 부세와는 다른 종이다. 몸 등쪽은 황색 바탕에 흑색 띠가 있으며 몸통에 흑색 반점이 나타난다. 많이 잡히는 고기는 아니다.

흑조기. /사진=국립수산과학원흑조기. /사진=국립수산과학원
흑조기(trobucca nibe)의 몸은 약간 길고 측편하며 눈이 크다. 주둥이는 둥글고 입안과 배지느러미 막이 검은색이다. 수조기와 마찬가지로 많이 잡히는 편은 아니다.

보리굴비부터 조기매운탕까지 다양한 조리법
푸짐한 조기회 한상 차림. /사진=국립수산과학원푸짐한 조기회 한상 차림.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조기를 즐긴 역사가 오래 돼다보니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요리법이 있다. 가장 친숙한 굴비가 대표적이다. 특히 조기를 통보리 속에 넣어 서너달 숙성시킨 보리굴비는 녹찻물에 밥을 말아 얹어먹는 한정식집 고급 메뉴다. 조기매운탕은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이 밖에도 조기 회, 조기젓갈, 고추장굴비, 조기살어묵, 조기찜, 조기조림 등도 맛있다. 최근에는 참조기를 이용한 편의점 도시락도 출시됐다.

조기 전문가인 김정현 국립수산과학원 해양수산연구사는 "생물 알배기 조기를 구워서 드셔보시는 것을 추천한다"며 "굴비와는 다른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줄어드는 조기, 15㎝이하 잡으면 과태료 80만원
이처럼 굴비 20마리를 엮은 것을 한 '두름'이라고 한다. /사진=수협쇼핑이처럼 굴비 20마리를 엮은 것을 한 '두름'이라고 한다. /사진=수협쇼핑
조선시대에 조기 자원이 풍부할 당시 뱃노래로 '돈 실로 가자 돈 실로 가자, 칠산 바다로 돈 실로 가자'는 노래까지 있었다. 그만큼 조기가 많이 잡혀 돈이 됐다는 뜻이다. 또 전라도에서는 조기가 동해의 명태만큼 많이 잡힌다고 해서 '전라도 명태'라는 별명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남획으로 조기 자원이 감소하는 추세다.

김정현 연구사는 "동해의 명태처럼 자원이 고갈되는 일이 없도록 금어기와 금지체장 등 법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참조기의 금지체장은 15㎝로, 이를 어기면 8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참조기의 금어기는 7월1~31일이다. 근해 유자망 어선은 4월 22일~8월 10일까지 참조기 조업에 나서면 안된다.

맛있는 굴비와 조기요리 마련, 대한민국 수산대전
/사진=해양수산부/사진=해양수산부
맛있는 조기와 굴비가 당신을 기다리는 곳이 있다. 해양수산부가 올해 1년 내내 여는 '대한민국 수산대전'이다.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과 어민들을 위한 수산물 할인행사다. 대한민국 수산대전 홈페이지(www.fsale.kr)에서 현재 진행중인 할인행사와 이벤트, 제철 수산물 정보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수산대전에는 전통시장부터 오프라인 마트, 온라인 쇼핑몰, 생활협동조합, 수산유통 스타트업 등 수산물 주요 판매처가 대부분 참여한다.

대형마트 8개사(이마트, 홈플러스, 농협하나로유통, 롯데마트, GS리테일, 메가마트, 서원유통, 수협마트), 온라인 쇼핑몰 15개사(11번가, 컬리, 쿠팡, 한국우편사업진흥원, 이베이코리아, 수협쇼핑, 위메프, 오아시스, SSG.com, CJ ENM, 더파이러츠, GS홈쇼핑, 롯데온, 인터파크, 꽃피는아침마을), 생협 4개사(한살림, 아이쿱, 두레, 행복중심 생협), 수산 창업기업 4개사(얌테이블, 삼삼해물, 풍어영어조합법인, 바다드림)에서 사시사철 할인 쿠폰을 뿌린다.

행사기간에 맞춰 생선을 주문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20% 할인에 참여업체 자체 할인을 더해 반값에도 구입할 수 있다. 제로페이앱을 쓰면 전통시장에서 쓸 수 있는 모바일 수산물 상품권을 3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추석 차례상에서 조상님 모시는 것도 좋지만, 우리 가족도 고소하고 짭조롬한 조기 한 점 뜯어서 흰 쌀밥 위에 올려놓고 먹어보는 호사를 누려보면 어떨까.
손질된 참조기. /사진=수협쇼핑손질된 참조기. /사진=수협쇼핑
감수: 김정현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해양수산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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