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만든 빈틈, 'CPTPP'에 中이 지원서 냈다…"일본 자세히 따질 것"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2021.09.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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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AFP지난 3월 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AFP


중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정식 신청하면서 국제 정세가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CPTPP의 전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추진한 아시아 회귀 전략 '피봇투아시아(Pivot to Asia)'의 일환으로, 아시아·태평양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면서 일본에 힘을 실어주는 성격이 강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손해와 제조업 손실을 명분으로 취임 직후 TPP를 탈퇴해버렸고, 흔들리던 중심을 잡아 이듬해 CPTPP 발효를 주도한 건 일본이었다.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영국도 올해 2월 공식 가입 신청을 해둔 상황이다.



결국 중국의 이번 CPTPP 가입 신청은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 흔들기라는 관측이 나온다.

美 복귀 전에 영향력 키우자? 마음바꾼 중국
블룸버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16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왕원타오 상무부장이 CPTPP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는 뉴질랜드의 데미언 오코너 무역장관에게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왕 부장과 오코너 장관은 전화 회담을 갖고 중국의 가입 신청 이후 절차에 관해서도 논의했다.



중국의 CPTPP 가입 신청과 관련, 워싱턴 소재 '중국-미국 연구소'의 소우랍 굽타 선임연구원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무역자유화를 위해 어디로 갈지 행동 방향을 정해야 하는 미국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과거 미국이 주도했던 TPP를 자국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여겨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CPTPP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태도를 바꿔 CPTPP 가입을 적극 추진해 왔다.

중국이 처음 CPTPP 가입 의사를 밝힌 건 작년 11월 화상으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주도의 아태 무역 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최종 타결을 환영하면서 CPTPP 가입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당사국 장관들이 2018년 3월 칠레에 모여 회담한 이후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사진=AF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당사국 장관들이 2018년 3월 칠레에 모여 회담한 이후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사진=AFP
"일본 반대 만만치 않을 것"…호주·베트남과도 '껄끄러운 관계"
RCEP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와 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중국 주도의 자유무역협정으로 세계 총생산(GDP)의 약 30%, 무역규모 28.7%를 차지한다. 협상을 함께 해온 인도는 결국 불참했다.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각 회원국 비준이 남은 상황이다.

CPTPP는 뉴질랜드와 일본, 호주를 비롯해 북미 캐니다와 멕시코, 남미 페루와 칠레, 동남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11개국이 포함된다. 세계총생산 13%, 무역규모 15%를 차지해 RCEP보다 규모가 작다.

하지만 실제 중국이 CPTTP에 가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회원국의 만장일치 찬성이 필요해서다.

무엇보다 신규 회원국 가입 등 CPTPP 의사결정기구 의장국을 맡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럽다. 일본 공영 NHK에 따르면 일본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이 CPTPP의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판별해 나갈 것"이라며 심사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무역에서 주도권을 잡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가입을 위한 벽은 높다"고 전했다.

CPTPP 회원국은 11개국으로 영국도 가입 신청을 한 상태다. 신청을 수락하는 데는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데, 중국과 통상 마찰을 빚고 있는 호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대립하고 있는 베트남이 CPTPP 회원국에 속해 있다.

RCEP보다 CPTPP의 기준은 까다롭다
닛케이는 "중국 내에서 제도 개혁을 먼저 해야할 것"이라면서 "CPTPP는 정부가 국유기업을 보조금 정책으로 우대해 불공정 경쟁을 만드는 것을 금지한다. 중국 당국이 국유기업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는 CPTPP 협상이 처음부터 꼬일 수 있다"고 전했다.

또 중국은 지난 6월부터 기업의 데이터 수집·저장·사용을 규제하는 '데이터 보안법'을 통해 데이터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데, 데이터의 국외 반출 금지 등이 기존 회원국들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닛케이는 또 "중국의 지방 당국이 외국계 기업에 (사업) 인허가 취득을 위해 첨단기술 공개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가입의 걸림돌로 지적했다. 매체는 정부 주도 사업 수주전에서 중국 국유기업과 외국계 기업을 차별하는 중국 당국의 조치도 문제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홍콩 SCMP는 RCEP 타결에 이은 중국의 CPTPP 가입 신청이 "중국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RCEP가 주로 관세 철폐와 비관세 장벽 축소에 국한된 반면, CPTPP는 이보다 훨씬 포괄적인 합의를 담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CPTPP는 노동 기준과 환경 보호, 국영기업의 시장 왜곡 방지, 지적재산권 규정 등을 포괄해 중국이 넘을 관문이 많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단 관망하고 있다. 젠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그대로의 TPP엔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왔다"고 말했다. 중국의 가입 문제에 대해선 "참가국들이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물론 바이든 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광범위한 옵션을 염두에 두고 있다. 단지 무역만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우리나라도 CPTPP에 가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 경제계에서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8일 열린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CPTPP 가입을 계속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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