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재미동포, 전두환 지시로 100만"…韓 황당 외교통계

머니투데이 김지훈 기자 2021.09.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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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외교 잠금해제] 전두환 입맛대로 외교통계 조작 정황…지금도 그대로

[단독]"재미동포, 전두환 지시로 100만"…韓 황당 외교통계


1985년 외교부가 전두환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재미동포 통계와 관련, "100만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시를 받고 집계치를 부풀리는 '고무줄 통계' 작성에 돌입했던 정황이 포착됐다. 실제 대통령 지시 이듬해인 1986년 재미동포 규모는 돌연 1983년(1984·85년은 통계 없음) 대비 38% 급증했다는 통계가 작성됐으며 해당 통계는 오늘날에도 정부 홈페이지에서 그대로 소개되고 있다. 국내외 기업 국민 뿐 아니라 해외 정부도 활용할 수 있는 공식 정부 지표의 공신력에 의문이 제기된다.

16일 머니투데이 더 300(the300)이 외교부의 2급 비밀 해제 문건인 1985년5월3일자 '각하 지시사항 이행방안 수립'과 외교부 통계를 비교한 결과 이같은 '통계 조작' 정황이 포착됐다. 외교부 문건상 전 전 대통령은 북미지역 공관장과의 조찬시 "현재 미국 내 재미교포 수가 74만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으나 그 통계조사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며 '100만명'이 좋다고 했다.



연도별 재외동포현황. /사진=e-나라지표 캡처연도별 재외동포현황. /사진=e-나라지표 캡처
실제 통계를 열람하면 외교부가 문건 제목 그대로 '이행방안'을 실현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외교부의 재외동포현황 통계상 1986년 재미동포 규모는 대통령의 '100만 지시' 이후 102만6000명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시 직전 최신 통계였던 1983년 미국지역 재외동포 규모도 대통령 지시에 언급됐던 내용처럼 74만3000명이었다.

다만 전 대통령이 언급했던 '교포'는 실생활에서 흔히 혼동돼 쓰이는 '동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동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을 뜻하며 교포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자국민'을 뜻하는 보다 좁은 범위의 표현이다.



전 대통령의 지시는 옛 외교관들 사이에선 사실상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져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외교부 고위 관료는 본지에 "'그날'(대통령 지시) 이후로 하루 아침에 100만이 됐는데 대통령 지시가 공관들에 파다하게 알려졌다. 미국에 있는 불법 체류자가 얼만지 모르니 추정컨데 가령 '몇%가 불법 체류자일거다'라는 식으로 통계를 부풀린 것"이라고 말했다.

'마초적 황당 지시' 배경…美에 韓 '영향력 과시' 포석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경축만찬취임연설1(1980)제11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경축만찬취임연설1(1980)
해당 전직 관료는 대통령 지시 동기와 관련해선, "(전 대통령이 관료들에게) '마초적인 리더십'을 과시하려는 측면이 있었고 (미국 정계에 대해서도) 교포가 적은 것보다 많은 것이 규모라거나 영향력 측면에서 적게 잡는 것보다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기업들의 해외진출 시 기초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외교부가 작성하는 자료지만 군사정권의 입맛에 따라 과거에 조작됐던 부분이 유지돼 왔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가 국정모니터링 지표를 공개하는 'e-나라지표' 사이트에선 "아주지역의 1990년에서 1991년의 급격한 통계 변화는 중국과의 수교로 조선족이 통계에 포함한 것"이라는 등 일부 국가의 통계 변동 배경이 소개돼 있을 뿐 '대통령 지시발 재미동포 38% 증가' 관련한 이슈는 언급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전 재외공관(대사관·총영사관·분관 또는 출장소)에서 작성·보고한 공관별 재외동포현황을 취합·정리한 재외동포현황 통계는 통계주기가 1995년 이전엔 '부정기', 그 이후는 '격년'이었다. 주재국의 인구 관련 통계자료·한인회 등 동포단체 조사자료·재외국민등록부 등 공관 민원 처리기록·직접조사 등을 근거로 산출한 추산·추정치에 해당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통계 조작 의혹과 관련, "오래전 일이라 구체적 경위 확인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현시대에 집계된 재미동포 통계와 관련, "요즘같이 통계가 발달하고 인터넷이 있는 상황에서는 지표 신뢰성도 더 높을 것"이라고 했다.

재외동포현황 지표해석. /사진=e-나라지표 홈페이지 캡처 재외동포현황 지표해석. /사진=e-나라지표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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