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퇴직연금 ETF '머니무브'에 속수무책…신탁으로 살길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2021.09.16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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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업권별 점유율/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퇴직연금 업권별 점유율/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시중은행 퇴직연금 상품군에 ETF(상장지수펀드)가 신탁 방식으로 포함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으로 증권사에서만 ETF 실시간 거래가 가능한데, 은행은 아쉬운 대로 시차를 두고서라도 상품을 운용하려 한다. 증권사로 돈이 넘어가는 '머니무브'의 주범으로 ETF가 꼽혀서다. 퇴직연금 사업자 사이 업권별 형평성 문제는 여전한 논란거리로 남았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대형 시중은행은 퇴직연금 상품군에 ETF를 신탁 방식으로 편입하기로 했다. 교보생명 등 일부 생명보험사도 같은 방식으로 상품 운용을 검토한다. 신한은행이 첫 발을 뗄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은 당초 ETF 실시간 매매 시스템 구축 작업을 완료했는데 금융위가 '은행은 ETF 실시간 거래를 할 수 없다'고 법령해석을 내려 선보이지 못했다. 기존에 해 오던 작업을 일부 변경해 진행하고 있는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실시간 매매는 아니지만 ETF 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증권사로 향하는 '머니무브' 움직임이 다소 잦아들지 주목된다. ETF는 코로나19(COVID-19) 시대에 급부상한 상품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 열풍이 분 영향이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은행은 시간 차를 감수하면서까지 ETF를 취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중은행 퇴직연금사업 담당자는 "지난해 ETF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었는데 고객의 수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ETF 상품군을 갖추려 한다"며 "실시간으로 매매할 수 없지만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로 향하는 퇴직연금 '머니무브'는 코로나19 시대 가속화했고 그 중심엔 ETF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퇴직연금 트렌드가 회사 일임의 확정급여형(DB)에서 근로자 스스로 관리하는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IRP의 경우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 증권사가 올 들어 '수수료 면제' 카드를 잇따라 꺼내들면서 '머니무브' 행렬이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은 금융투자업권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그 폭이 더 커질 전망이다. 지난해 연간 증가율은 금융투자 18.5%, 은행 15.9%, 생명보험 14.1% 등으로 각각 나타났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은행의 ETF 실시간 거래를 둘러싼 논쟁은 금융위의 유권해석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형평성 논란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금융위는 은행이 증권사처럼 실시간으로 ETF를 운용하는 건 상장증권의 '위탁매매' 업무라며 은행에 허용된 투자중개업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두고 퇴직연금사업자를 '위탁매매업자'가 아닌 '신탁업자'로 봐야 한다는 이견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퇴직연금사업자는 신탁계약, 또는 보험계약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은행이 ETF를 실시간으로 운용하더라도 가입자 지시에 따라 투자중개업자가 아닌 신탁업자 지위에서 은행 명의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초 은행권, 보험권이 ETF 실시간 거래를 할 수 있다고 본 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과 퇴직연금 감독규정에서 ETF도 운용상품으로 포함하고 있어서다. 이를 근거로 업권별 차별을 두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점유율 면에서 은행이 51%, 생명보험사가 22.3%로 증권사(20.2%)보다 높다는 이유에서 고객의 선택권이 제한된다는 지적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사업자에 허용된 ETF 운용과 관련해 사업자별로 차별을 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관련 법과 감독규정에서는 신탁계약, 보험계약 등 계약형태별로 운용에 대한 규제사항을 정하고 있을 뿐이지 업권별 규제는 따로 정한 바가 없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는 "고령화 사회에 연금시장이 더 발전해야 하는데 ETF의 경우 선택권이 제한됨으로써 결국 피해를 보는 건 고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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