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윳돈 있어도 전세대출 받아 그돈으로…" 규제 가능성 나온 이유

머니투데이 박광범 기자, 김남이 기자 2021.09.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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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전세대출 딜레마(上)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규제 강화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올 들어 급증한 전세대출 증가 속도가 유난히 가팔라서다. 그러나 대표적인 서민 실수요 대출인 전세대출을 틀어막았다간 무주택 실수요자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다. 전형적인 '딜레마' 상황이다.

전세대출 조일까, 말까…금융당국 '진퇴양난'
"여윳돈 있어도 전세대출 받아 그돈으로…" 규제 가능성 나온 이유


전세대출 규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금융당국은 당장 추석 이후 발표할 가계대출 추가 보완책 파격적인 전세대출 규제를 넣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가계대출 총량관리 차원에서 은행의 전세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거나 한도를 일부 줄이는 수준이 현재로선 유력하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8월 말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119조9670억원으로 지난해 말 105조2127억원보다 약 14%(14조7543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 약 4.1%(473조7849억원→493조4148억원)보다 3.4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전세대출 증가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은행권의 월별 전세대출 증가액은 1조원 수준이었다. 2018년 들어 월별 증가액이 2조원을 넘는 경우가 생기더니, 2019년부터는 매월 2조원을 웃돌았다. 2020년부터는 3조원을 넘는 달도 나타났다. 지난달만 해도 은행에서 나간 전세대출이 2조8000억원에 달한다. 전세대출이 늘어나는 건 무엇보다도 전셋값이 급등해서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 평균 전세가격은 2020년 말보다 9.88% 올랐다. 아파트만 보면 상승률이 11.62%로 더 높다.

최근 전세대출 규제 가능성이 거론되는 건 일각에서 전세대출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까지 대출창구로 몰리는 문제를 제기해서다. 과거에는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끌어모은 뒤 부족한 금액만큼 전세대출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여윳돈이 있어도 일단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는 한 최대한도로 대출을 받아 보증금을 낸 뒤 남는 돈으로 주식 등 자산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초저금리 기조 아래 전세대출 금리가 2%대로, 신용대출보다 싼 영향이라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지난 7월부터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 중인 개인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에 전세자금대출 일부를 포함시키는 식으로 전세대출 한도를 줄이는 방안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이미 시중은행들은 대략 100% 내외의 DSR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실상 100% 보증부 대출인 전세대출은 DSR 도입 취지와도 배치된다. 금융당국이 지난 4월 개인별 DSR 확대 도입 계획을 발표하며 소득 이외 상환재원이 있는 전세대출은 개인별 DSR 규제 적용대상에서 제외한 까닭이다. 나아가 전세대출을 받아놓고 여윳돈으로 투자하려는 사람만 골라 '핀셋규제'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돈에 '꼬리표'가 달린 게 아니어서다.

무엇보다 전세대출은 '실수요자 대출' 성격이 강해 규제를 강화했다간 심각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전세대출은 신용대출 등과 달리 비교적 용도가 뚜렷하고, 실거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규제를 강화하면 실수요자가 불편을 겪는다. 특히 집값 급등으로 '내 집 마련' 대신 세를 살 수밖에 없는 신혼부부 등 청년세대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전세대출을 많이 받는 바람에 전셋값과 집값이 올랐다'며 부동산정책 실패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내년 7월 전세계약갱신 청구권을 행사했던 사람들의 갱신 만료일이 돌아오면서 전세가격은 더욱 오를 것이 뻔한데 대출규제를 조이면 이들을 거리로 내모는 격이 된다.

금융당국이 2018년 전세대출 보증은 서민을 위한 것이라고 소득기준을 강화하려다 역풍을 맞았던 '트라우마'도 있다. 당시 정부는 전세대출을 활용한 부동산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연소득 7000만원이 넘으면 무주택자라도 전세보증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서민 실수요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정책을 철회했다.


이런 까닭에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관련 초강력 규제를 내놓는 대신 은행을 통해 전세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대출자의 체감 문턱을 높이는 선의 대책을 내놓는 수순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대표적 실수요 대출이기 때문에 투자수요 대출만을 발라낼 방법이 사실상 없다"며 "전세대출 급증은 저금리에 기인한 문제이기 때문에 향후 추가 금리인상을 통해 투자 목적 대출 증가를 억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미 조일대로 조인 '전세대출'…수도권선 갭투자 어렵다
"여윳돈 있어도 전세대출 받아 그돈으로…" 규제 가능성 나온 이유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억제 카드'를 고민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규제는 이미 촘촘하고 충분하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전세대출을 이용한 '갭투자'는 서울·수도권에서는 불가능하다.

시중은행에서 운영하는 전세대출은 거의 100%가 한국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HUG)·서울보증보험(SGI) 등의 보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주금공·HUG·SGI 모두 전세보증금의 80%까지가 보증한도다.보증기관별 최대 보증한도는 무주택자 기준 △주금공 2억원 △HUG 4억원 △서울보증 5억원이다. 주금공과 HUG는 수도권의 경우 전세보증금이 최대 5억원인 주택에만 보증해준다.

본인이 집을 갖고 있고, 다른 집에서 전세를 살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면 조건은 크게 까다로워진다. 2주택자는 대출이 사실상 어렵다. 1주택자의 경우도 보유 주택가가 9억원이 넘으면 대출을 받기 힘들다. 9억원 이하의 집을 갖고 있어도 유주택자는 대출 한도가 HUG는 2억원, 서울보증은 3억원으로 준다. 주금공과 HUG는 차주 부부의 합산 연 소득이 1억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수도권에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구매했다면 전세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 6월17일에 발표한 부동산 대책으로 지난해 7월10일 이후 투기·투기과열 지구에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매입하면 전세대출 보증이 제한된다. 투기·투기과열 지구에 3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면 전세대출을 곧바로 갚아야 한다. 전세대출을 받아 서울·수도권에 갭투자하는 길이 막힌 것이다.

"여윳돈 있어도 전세대출 받아 그돈으로…" 규제 가능성 나온 이유
이전에 구매했더라도 매매가가 9억원을 넘어도 전세대출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지역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7734만원이다. 수도권으로 넓히면 7억4063만원이다. 수도권 주요 지역의 아파트값은 9억원이 넘는다. 모든 규제를 피해 전세대출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유주택자는 최대 3억원이 한계다.

최근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6억4345만원, 수도권은 4억4156만원이다. 서울서는 대출을 받아도 최소 3억원 이상의 추가자금 필요하다. 수도권에 갭투자하고, 전세대출을 받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서울아파트의 전세가율이 8년 만에 최저인 55.3%로 떨어진 것도 전세대출로 갭투자를 하는 어렵게 하는 이유다. 세를 끼고 전세를 받아도 아파트 매매가의 45%를 조달해야 한다. 집을 구매할 때 필요한 자금이 늘었고 전세대출은 못 받거나 적게 받으므로 전세대출로 갭투자를 할 수 없다.

최대 3억원(무주택자 5억원)의 전세대출을 모두 받기도 쉽지 않다. SGI 보증대출의 경우 DTI 40%(총부채상환비율)를 적용하는 은행이 많다. 또 일부 은행에서는 자체적으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적용한다. 대출총량관리를 위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스스로 DSR을 70~100%를 적용하는 경우도 있고 신용등급과 소득 등 살펴서 대출을 한다"며 "서울·수도권에서 전세대출로 갭투자를 한다는 것은 현장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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