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날선 공정위…IT업계 "잠식당한 10년, 바뀐다는 기대"

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2021.09.15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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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14일 구글에 20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국내 IT(정보기술) 업계에 화색이 감돈다. 구글 중심 생태계에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한다기보다는 국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업계 성장을 저해해 온 구글의 방해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생겼다는 점 때문이다.

OS 강제해 앱 생태계까지 독점한 구글…'공정한 경쟁 환경' 의의
공정위 발표에 따르면, 구글은 삼성전자·LG전자 등 스마트 기기 제조업체에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하도록 강제해 경쟁 OS(포크 OS) 개발을 막았다. 또 안드로이드 외 다른 OS를 탑재한 스마트시계·TV 등을 출시할 수 없도록 하는 파편화금지계약(AFA)을 강제한 혐의도 받는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OS를 제공할 때 △최신 버전 안드로이드 소스코드에 대한 사전접근권 계약 △플레이스토어·구글 검색·유튜브 등 구글 기본 앱 라이선스 계약을 필수 체결하는데, AFA 체결을 선결 조건으로 내걸어 사실상 강요했다.



공정위는 구글이 포크OS용 앱 개발도구(SDK) 배포까지 금지해 새로운 앱 생태계의 출현 가능성을 차단했다고도 지적했다. 이로 인해 포크OS를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신형 기기나 앱을 출시하려던 LG전자와 삼성전자, 이들의 협력사 등 국내 기업들이 피해를 봤다고 봤다.

업계에서는 구글을 대하는 공정위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구글이 제조업체들에 안드로이드 OS 사용을 강제하면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다는 주장은 2013년에도 제기됐다. 특히 네이버와 다음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구글 검색이 기본 탑재돼 국내 검색 서비스들이 배제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는 구글 검색이 선탑재돼도 국내 앱의 선택권이 침해되지 않는다며 무혐의 판단했다.



반면 이번에는 국내 소비자가 다른 OS 기반으로 개발된 혁신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를 구글이 침해했다는 게 공정위의 해석이다. 한 모바일 업계 관계자는 "인앱 결제 강제 등 구글이 앱마켓을 기반으로 개발사들에게 가해 온 횡포가 만연했던 것은 애초에 스마트폰 OS 시장이 구글과 애플로 양분돼 있었기 때문"이라며 "10여년에 걸쳐 구글에 잠식 당한 시장이 당장 정상화되진 않겠지만 앞으로 다양한 경쟁이 나타날 여지가 생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경쟁 OS 진입 및 신규기기 개발 막은 구글에 2074억원(잠정) 과징금 부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 등 기기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 변형 OS 탑재 기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쟁 OS의 시장 진입을 방해햔 구글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14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경쟁 OS 진입 및 신규기기 개발 막은 구글에 2074억원(잠정) 과징금 부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삼성전자 등 기기제조사에게 안드로이드 변형 OS 탑재 기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경쟁 OS의 시장 진입을 방해햔 구글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구글에 날카로워진 공정위…왜 달라졌나
공정위는 구글의 국내 기업과 소비자들에 대한 권리 침해 사례까지 제시하며 이번 결정을 부연했는데, 관련 업계에선 공정위의 '의지'가 드러나는 이 대목을 눈여겨보고 있다. 특히 공정위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OS 탑재 강요뿐만 아니라 경쟁 앱 마켓 방해 행위도 조사해 왔다. 국내 게임사들에 구글 앱 마켓인 플레이스토어에서 독점적으로 앱을 출시하라고 강요했다는 혐의인데,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조만간 구글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팽배하다. 그동안 구글 등 글로벌 업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를 인정하고 제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구체적인 피해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꼽혀 왔는데, 최근 조사로 공정위가 국내 피해 사례를 여러 건 축적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국내외의 구글과 애플 등 플랫폼 기업에 대한 '견제' 분위기도 공정위의 부담을 덜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는 이날부터 이른바 '구글갑질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이 시행돼 특정 앱마켓 사업자가 인앱결제를 강요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구글과 애플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법원이 애플의 인앱결제 금지 명령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고, 구글을 겨냥한 반독점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이대호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그 동안 글로벌 기업 제재 과정에선 통상 압박에 대한 우려 등이 주로 거론됐던 반면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미국 내부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있다"며 "공정위의 이번 결정도 이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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