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연말에 전세대출 돼요? 안 되면 잔금일 당기게요"

머니투데이 양성희 기자 2021.09.14 14:03
의견 남기기

글자크기

[MT리포트]전세대출 딜레마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규제 강화를 두고 '진퇴양난'에 빠졌다. 올 들어 급증한 전세대출 증가 속도가 유난히 가팔라서다. 그러나 대표적인 서민 실수요 대출인 전세대출을 틀어막았다간 무주택 실수요자의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다. 전형적인 '딜레마' 상황이다.
전셋값 오르고 전세자금대출도 불었다/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전셋값 오르고 전세자금대출도 불었다/그래픽=김지영 디자인기자




"연말에 문제 없이 전세대출 받을 수 있을까요? 안 되면 잔금일 당겨서 미리 받으려고요."

서울 광진구 한 은행 영업점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전세자금대출을 받으려는 고객의 방문이 이어졌다. 몇몇 은행에서 전세대출 문을 아예 닫거나 금리를 올리면서 불안감을 호소하는 고객이 많았다. 그만큼 전세대출을 조인다는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셈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들어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면서 전세대출 수요도 급증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전국 평균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달 기준 3억2355만원으로 지난해 말(2억8988만원)보다 11.62% 올랐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억4345만원으로 지난 3월부터 6억원대에 진입했다. 전세대출 잔액도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달 기준 119조9670억원이다. 지난해 말(105조2127억원) 대비 14.02% 증가했다.



최근 금융권에서 전세대출 규제 여부가 화두인 이유는 다른 대출에 비해 증가율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전체 증가율은 4.28%였다. 신용대출은 5.42%, 주택담보대출은 4.14%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가계대출 연간 증가율을 5~6%선에서 맞추도록 주문했는데 전세대출만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었다. NH농협은행은 전세대출 문을 닫았고,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은 저금리 전세대출 상품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은 전세대출 금리를 올렸다.

은행이 대출을 조이는 움직임을 보이자 고객들은 초조해졌다. 서울 중구 은행 영업점 직원은 "아직 전세계약서도 쓰지 않은 고객이 추가 규제를 염려해 은행에 오거나 유선상으로 문의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심사 시스템을 미리 돌려볼 수도 없고 상품 판매 여부, 금리 변동 폭 등을 예측해서 말할 수도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잔금일을 앞당기는 식으로 미리 전세대출을 받으려 하거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신용대출을 받는 이들도 늘었다. 서울 광진구 은행 영업점 직원은 "미리 전세대출을 신청하기 위해 계약을 서둘렀다는 고객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에서는 "한 고객은 전세계약자로서 초조한 사정을 토로했는데 전세대출은 날짜가 안 맞아 우선 신용대출을 받아갔다"고 했다.

기존 거래 은행에서 전세대출이 막혀 다른 은행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농협은행은 11월까지 전세대출을 포함한 부동산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다. 국민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기존에 국민은행에서 일절 거래가 없었는데 전세대출을 위해 계좌를 만든 고객도 있었고 다른 은행에서 다세대주택 전세대출이 거절돼 넘어온 고객도 있었다"고 말했다.


추가 규제에 대한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다만 누구도 확답을 할 수 없다. 한 은행원은 "당장 다음주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연말, 내년 초를 가정한 질문에 같은 답을 내놓고 있다"며 "'규제가 시작되더라도 당장 적용하는 게 아니라 시행일을 미리 고지한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정리되지 않은 애매한 말로 시장의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반기 전세대출을 쥐어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추석 이후 가계대출 보완대책을 마련할 것인데 전세대출은 실수요자가 많아 그들이 피해 보지 않는 방법을 최대한 강구하겠다"고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전세대출을 규제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모호한 답만 내놓으면서 혼선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말했다.
나의 의견 남기기 등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