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8월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은행 가계대출이 전월 대비 6조2000억원 늘어나며 증가세를 이어갔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5조9000억원으로 역대 4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가계대출 중에는 전세대출 등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의 증가세가 두드러진 모습이다. 올해 주택 관련 대출은 42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중의 절반 이상인 21조3000억원이 전세대출이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8일 서울 시내의 한 시중은행 외벽에 전세자금대출 관련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2021.9.8/뉴스1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들어 1~8월 은행권 주택 관련 대출 증가액(42조3000억원)의 절반인 21조3000억원이 전세자금 대출이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지난 8월 말 현재 전세대출 잔액(119조9670억원)도 전년 말보다 14.02% 늘어 같은 기간 가계대출(4.28%) 증가율을 3배 이상 상회했다.
전세대출 증가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집값 상승이다. 전세대출 증가세가 가팔라진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정부가 집값 상승 억제를 위해 규제를 내놓자 전세 수요가 늘었고 전셋값 상승과 전세대출 증가로 이어졌다. 특히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부터 전세대출 증가세는 다시 불이 붙었다.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월별 증가액은 지난해 2~4월 2조~3조원대로 불었다가 5~6월 1조원대로 떨어졌으나 7~10월 4개월 연속으로 2조원을 웃돌았다. 전세품귀 현상에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최대 한도로 전세대출을 받은 뒤 남은 자금을 주식이나 가상화폐 등에 투자하는 사례도 있다고 본다. 무주택자가 전세대출을 활용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이른바 '갭투자'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보기도 한다. 지난 상반기 전세를 끼고 집을 산 갭투자자 3명 중 2명(64.7%)이 무주택자였다는 점이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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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선 '빚투'(빚 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늘어난 전세대출을 부동산 과열의 주범으로 모는 논리엔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7월부터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3억원 초과 아파트를 살 경우 전세대출을 곧바로 갚아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에선 이런 갭투자를 할 수 없다. 전세대출 규제가 이미 촘촘한 것이다.
따라서 '공급부족→매매가와 전월세 상승→전세대출 증가->갭투기'에서 공급부족이란 근원적 원인을 빼고 전세대출 증가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면서 규제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집값은 치솟는데 담보대출 한도는 줄고, 전세가율이 올라가니 무주택자들이 전세를 끼고라도 집을 사려는 것"이라며 "사실상 실수요"라고 말했다. 전세대출이 갭투기에 이용된다 해도 강력한 대출규제로 서울· 수도권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집값 상승 원인을 전세대출에서 찾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전세대출은 내년에 증가폭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7월 임대차 3법 시행 2년이 도래하면 계약갱신 만료로 신규 전세계약이 쏟아진다. 이들 갱신 물량의 전세가격은 더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전세대출을 옥죄면 무주택 서민들이 더 싼 전세를 찾아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반전세·월세로 내몰리는 부작용이 현실화할 수 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연구센터장은 "전세 가격이 올라 실수요인 전세대출이 늘어난 것"이라며 "급격한 전세 대출 규제는 서민들의 주거 불안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므로 규제를 검토하더라도 정책적인 기간을 충분히 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